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작가 윤효재 Oct 12. 2023

엄마와 우유

 2010

 중학교 2학년 시현이는 또 입술을 뾰쭉 내민 채 집으로 들어왔다. 그래봤자 마땅히 화풀이 할 사람도 없다. 아빤 일찍 돌아가시고, 엄만 일하러 나가셔서 집에 오면 아무도 없다. 남들 다 가는 학원도 못 가고 집에서 숙제 하거나 혼자 놀기가 일쑤다.

 ‘넌 아빠가 없어서 힘들겠다.’ 반 아이들은 나쁜 의도로 물어본 게 아닌데 자꾸 환청처럼 들린다.

 ‘넌, 휴대폰이 왜 없어?’ 이 말도 역시 듣기 싫었다. 시현이만 왕따된 기분이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도 휴대폰 좀 사줘. 애들이 놀리는 것 같단 말이야!" 엄마를 본체만체 얼굴을 휙 돌렸다.

 "휴대폰은 공부하는데 전혀 도움 안돼. 나중에 사줄게." 엄마의 조용한 목소리 속엔 미안한 감도 묻어 있었다.

 "맨날 나중, 나중!" 시현인 어깨가 축 처져버렸다.


 엄만 거실에 있는 우유를 집어들었다.

 "근데 왜 이 우유 안 먹었어?" 

 "우유 살 돈으로 휴대폰 사주면 되잖아!" 대들듯이 소리쳤다.

 "휴대폰보다 이게 훨씬 영양가가 많아."

 "뭔 소리야!! 더 이상 배달 시키지마!" 시현이는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우유를 많이 먹어야 키가 큰단다." 

 키작은 영진이는 엄마가 놀리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싫어!, 휴대폰 사줄때까지 안 먹을 거야!" 방문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다.


 옅은 눈발이 흩날리던 겨울 아침, 그날도 시현이는 우유를 먹지 않고 허름한 우산을 집어 들고는 학교로 향했다. 엄만 우유를 들고 우산도 없이 뒤따라 나섰다. 시현이는 못 본 체 걸음을 재촉했다.

 "따뜻하게 데워놨어. 이거 좀 먹고 가." 우유 든 손을 내밀며 얼떨결에 따라갔다.

 "싫다니까!" 시현인 뒤가 신경쓰여 더 빨리 걸었다.

 어느새 옅은 눈발은 차가운 겨울비로 바뀌었다. 바람까지 불었다.

 엄마손은 점점 추위에 지쳐 우유도 식기 시작했다. 

 시현이는 뒤돌아서 우산을 들어올려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 질렀다.

 "안 먹는다니까 왜 자꾸 따라와! 그냥 가란 말이야!" 누가볼까봐 두리번거렸다.

 엄마 머리엔 허옇던 눈발이 겨울비에 차갑게 흘러 내렸고, 손엔 보기 싫은 우유와 그걸 꼭 쥔 차갑고 거친 손이 눈에 띄었다. 게다가 급하게 나온다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해 초췌했다.

 시현이는 미안하기보다는 혹시나 반 친구들이 볼까봐 심장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 와가자 등교하는 애들이 보였다. 애들이 볼까봐 우산을 들어올리지 않고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다리만 봐도 자기를 향해 초라하게 돌진하고 있는 모습이 훤했다.

 시현이는 신발 끄는 소리를 내며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드디어 학교 교문이 보였다. 근데 바로 뒤에서 역시 신발 끄는 소리가 시현이를 따라잡을 듯 했다.

 ‘뭔 발걸음이 저리도 빨라?’

 "시현아! 같이 가자!" 익숙한 목소리였다.

 같은 반 아영이었다. 아영이를 보는 척하며 우산을 반쯤 가리고는 뒤를 보았다. 엄마 두 다리만이 겨울비와 세찬 바람을 맞으며 걸어 오고 있었고, 상반신 두 팔은 꼭 오므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시현이 너 지금 경보 하니? 아님 화장실이 급해?" 아영인 바로 뒤에 와서는 숨을 헐떡거렸다.

 "아, 사실 화장실이 급해서 나 먼저 갈게." 바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실로 뛰어 갔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와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설마 교실까지 오면 어쩌지?’

 심장박동은 비트박스였다.

 잠시 뒤 교실문이 열렸다. 다행히 아영이었다. 

 근데 아영이 손엔 우유가 있었다.

 "이거 너희 엄마가 꼭 전해주래." 우유를 내밀었다. 

 반 애들 몇 명이 우유를 보고 있었다.

 "아, 아니. 난 차가운 우유 못 먹어. 배탈 나." 시현인 아무것도 모른척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아니. 좀 따뜻한데?"

 시현인 고개를 돌려 우유를 자세히 보았다.

 "방금 너희 엄마가 품속에서 꺼내시던데! 근데 손은 차가웠어." 아영인 손에 쥐어주듯 시현이에게 넘겨 주었다.

 시현이는 따뜻한 우유를 손에 쥐고는 고개를 뻗어 창문밖을 힐끗 보았다. 교문밖 저 멀리 겨울비에 온몸을 두팔로 감싸고 뛰듯이 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2023년 

 밖엔 그때처럼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시현이는 장례식장에서 고개를 떨구고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영진아!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지만 이제 너도 가족이 있는 엄마잖아. 이제 그만 울자. 아 참! 벌써 개명했었지." 시현이 옆으로 이모가 와서는 달래주었다.

 시현이는 엄마 영정 사진 앞에 우유를 하나 놓았다. 왠지 그때 차가운 겨울비와 따뜻한 우유가 어울려 보였다. 영정 사진을 보니 엄마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다. 자신 때문에 너무 겉늙어버린 엄마의 얼굴은 마치 쭈글쭈글해진 오이지 같았다. 그리고 우유 옆에 아빠 휴대폰도 함께 놓았다. 

옆에 있는 3살된 딸을 보며 아직 남편과 자신이 함께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사랑도 무조건입니다. 


이전 23화 아빠와 동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