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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련 Sep 22. 2022

제가 시어머님 생신상 직접 차려드리고 싶은데요.

요리에는 일체 관심도 없었던 나는

결혼하고 소위 말하면 멘붕이 왔었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해놓은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됐었는데 결혼을 하고 보니

항상 집에 준비되어 있던 음식들도 당연하게 있는 게 아니었다.


결혼 전에 나는 음식을 먹는 것에 그렇게 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음식은 있는 거 먹고 내가 생활할 에너지만 얻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살림을 나눠서 같이 한다 하더라도 어쨌든 음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니

그 자체로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음식을 할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양은 어느 정도로 하고 재료는 얼마큼 사야 할지

모든 게 서툴고 어려웠다.

이렇게 음식을 하는 데에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 자체가 좋지 않았다.


처음에 음식 만들 때는, 내 성격상 실수하거나 중간에 분주해지는 게 싫어서 요리하기 전부터 레시피를 외워서 그대로 했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난 역시 요리에 소질이 없구나라고 느끼며 좌절했다.

그러나 조금씩 계속 시도하면서 큰 틀은 레시피대로 하되 내 입맛에 맞게 조금씩 양념은 가감해서 음식을 하니 내가 한 음식 맛도 좋아지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생겼다.

요리를 해보니 진짜 좋은 재료를 쓸수록, 음식을 만들 때 귀찮더라도 그 과정에서 한 번 더 수고를 할수록 음식 맛이 좋아진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댁은 가족들끼리 모일 때,

항상 어머님이 음식을 해주신다.

기본적으로 아버님 어머님이 가게를 운영하시기에 가족끼리 다 같이 밖에 나가는 것도 쉽지 않고 외식하는 걸 많이 좋아하지 않으셔서 가족끼리 모이게 되면 어머님이 음식을 집에서 직접 해주신다.

전에 어머님 생신 때는 다 같이 외식을 했다.  

외식을 하면 편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냥 한 편으로 나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시댁에 가면 어머님은 매번 음식을 직접 하시고 우리를 챙기시느라 본인 밥도 제대로 못 드실 때가 많으신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버님 생신은 가족 모두가 신경을 쓰고 며느리인 나 조차도 음식을 직접 해서 대접해드려야 하지 않나 라는 고민을 하는데

정작 어머님 생신 때는 그런 마음의 부담도 느끼지 않는 내 마음이 스스로 못내 아쉬웠다.

같은 맥락 속에 어머님을 생각하면서 엄마 생각도 났다.

이런 여러 생각들로 어느 누구도 나한테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어머님 생신상을 준비하게 되었다.


기왕 해드리기로 마음먹었으니,

어머님 아버님이 평소에 자주 드시는 것 말고 새로운 음식을 해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어머님 생신상 메뉴를 정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다.


집에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는 거 같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도 그리고 대접하는 순간도

오롯이 상대방을 생각하며 하는 일이기에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마음의 표현인지도 결혼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깨닫게 되었다.


거창하진 않아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토요일 점심에 가족들을 초대했기에

금요일 퇴근하고 저녁부터 남편과 함께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와서 밤늦게까지 재료를 준비했다.

중간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져서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나 사서 고생이구나 라는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이내 좋게 마음을 다스렸다.


다음 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준비했다.

(시댁 식구들 초대하면 집 청소도 대충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더 신경 쓸 것들이 많지 않은가..)

그래도 아침에 남편이 내가 깨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서 옆에서 먼저 준비할게 뭐가 있냐며 열심히 적극적으로 함께해줘서 중간중간 힘든 순간들을 잘 넘긴 거 같다.


시댁 식구들이 오고 남편과 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드시며 모두가 정말 고생했다고 말해주며 좋은 시간을 보내니 마음이 정말 뿌듯했다.

이래서 힘들어도 음식을 직접 해서 대접하는 구나라고 느껴졌다.


그보다 표현을 잘 못하시는 아버님이 나지막이

“엄마 챙겨줘서 고맙다. 내 생일상 챙겨주는 것보다 더 좋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마음이 뭉클해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엄마들의 희생을 알고 있고

고마워하고 있는데 표현하는데 서툴었던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 생일 때도 밥 한 번 해드려야겠다.


마음에 있는 고마운 마음들 서툴고 어색하더라도 소중한 사람에게 조금씩 표현하고 살아가자고

스스로 되뇌어본다.


결혼하고 한 해 한 해 갈수록, 느끼는 것도 깨닫는 것도 많아진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도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조금 더디더라도 이렇게 깨달으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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