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0일 월요일 초여름의 쾌청
친구들과 모이면 하는 얘기는 대부분 누군가의 '험담'이 십중팔구다.
시댁욕, 상사욕, 동료나 친구 심지어 가족까지.
서운했던거나 신세한탄 한다는게 결국은 '남탓' '남얘기'인거다. 별로 나랑 관계없어도 심심풀이로 할 때도 부지기수.
친한 회사 동료와는 상사 얘기를 안할수가 없는데, 그 중 하나가 '일 못하는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빙자한 조소다.
흔히 제일 어려운 사람이 '일은 못하는데 착한사람'이라고들 한다. 착해서 욕도 못하니까 말이다.
내가 있는 파트는 팀내에서 전혀 부각되지 않는다. 보이게 일하려고 애를써도 티가 안나는게 문제.
우리 조직의 장들은 백조처럼 밑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우리에게 자꾸만 일을 얹어주었다. 그것도 '남들이 하기 싫은 일'.'해도 티안나는 일'을.
아이러니한 건 힘이 약한 조직에는 힘이 없는 상사가 불시착한다는거다. 그렇게 바뀐 파트장님만 세번째. 일만 살포시 얹어 주시고는 그만 두시거나 회사에 겨우 자리보존하는 위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제는 다른 힘있는 팀에 흡수되어 내가 가장 선임이 되었다. 선임이 된지는 꽤 됐는데, 선임이 되고 보니 일을 골라서 받아올 형편이 잘 안된다는 것. 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내리치면, 일을 거둬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보니, 내가 숱하게 욕했던 그 모든 게 고스란히 내 것이 되었다. 누가 나를 욕하는지는 모르나, 과거의 내가 소리친다.
"니가 그 상사랑 다른게 뭐니?"라고.
이래서 함부로 욕하면 안된다는 건가보다. "누구처럼은 하지 말아야지"하는 비교의 덫에 스스로 걸려버렸다. 역지사지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되지 않는다는 진리도 함께 경험중이다.
일을 하도 못해서 팀을 옮겨가면서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동료가 있다. 여간해선 화내지 않는 차장님조차 이런 말을 했다.
"다른 길을 찾아보는 건 어때? 적성이 여기가 아닌거 같아"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에요 차장님~전 이 일이 참 좋아요~"
적잖은 충격이었다.
저 상황에 어떻게 저렇게 해맑을수가.
나중에 물었다. 일이 정말 좋으냐고.
그녀는 하나하나 공들여 해낸 성취감이 참 좋다고 했다.
그녀의 기준은 그녀 자신에게 있었다. 그 누구보다 잘하는게 아닌, 내가 작은 것 하나라도 해냈다는 것.
관점에 따라 그녀는 민폐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긍정만은 배우고 싶었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