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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씨 Oct 06. 2023

가을 운동회

일하고 있는 학교의 스포츠 한마당 시즌으로 도서관이 한산하다. 우리 때의 운동회를 요즘에는 '스포츠 한마당'이라고 하나보다. 반별 퍼레이드 경연으로 시간마다 연습이 한창인데, 매 년 하는 학교 전통이란다. 그러면서 공부할 시간은 없다며, 협동심은커녕 경쟁심만 부추기는 쓸데없는 전통이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도서관 친구가 있었다.


일전에 읽었던 온다리쿠의 [밤의 피크닉]이 떠올랐다. 학교 전체의 학생들이 밤새 걷는 '야간 보행제'의 전통을 소재로 청소년들의 꿈과 우정,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1학년, 2학년 때는 도대체 이런 무지막지한 행사를 하는 이유가 뭐람' 하며 투덜대지만, 3학년이 되면 다시는 이 행사를 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아쉬워한다는 '야간보행제'. 


지금 이 학교의 퍼레이드 전통이 '야간보행제'와 같겠지. 경쟁심으로 가득 찼던 그 어린 마음조차도 그리워진단 걸 아이는 아직 알 턱이 없다. 그저 마흔을 넘긴 아주메만 빙긋이 미소 지을 뿐이다. 학생 때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순수하게 무언가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없단다, 하며.


오늘은 아들의 운동회도 있었다. 라떼의 운동회를 생각하며 달리기라도 같이 할까 운동화를 신어야 하나 고민했더랬다. 하지만 요즘의 운동회는 외주 업체에서 일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시끄럽다는 주변 아파트의 민원을 받아야만 했다. 운동회를 위해 각 종목의 주자들이 매일같이 연습하고 준비하면서 실전의 날을 기대하는 마음,  응원마저도 함께 맞춰 청군 백군을 목청껏 외치는 단결심,  갈고닦은 실력을 맘껏 발휘하는 성취감이나 혹은 잘하지 못한 아쉬운 마음까지 느낄 수 있는 운동회의 백미는 느낄 수가 없었다. 


아주메 아저씨들은 라떼의 시절을 떠올리며 아쉬워할 뿐이었는데, 아이들은 그래도 좋았겠지. 아주메의 꼰대 같은 생각일 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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