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 어떤 매체라고 한다면 '라디오'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어느 사연이든 보낼 수 있고, 상품도 받으며, 언제든 틀어도 나오는 편안한 매체가 라디오라면, 학교에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그럴 것이다. 도서관에 오기만 해도 반겨주고, 아주 쉬운 이벤트에 참여만 해도 간식 선물을 주며, 자주 올수록 당첨될 확률도 높다는 것.
이곳에 앉아 있으면 학교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도, 공개수업이 있는지, 과학전시회가 있는지, 운동회가 열리는지, 어느 과목의 수행평가가 있는지 알 수 있다. 궁금해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려주거나, 공부하거나, 책을 찾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찾아오는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아이들 좋아하는 간식은 뭘까, 이번달은 어떤 책을 추천해 줄까, 어떤 이벤트를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어할까 궁리하고, 뭐 애들이 안 좋아해도 다음번에 다른 걸 해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도 편안하고 좋다.
회사를 그만두면 큰일이 날 줄 알았지만, 한우리 독서 선생님을 거쳐 지금의 일에 이르기까지 우연을 따라왔더니 제법 적성에 맞는 듯하다. 또 다른 흥미로운 일을 찾아 떠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어딘가를 떠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이번에 들였던 책 중에 [나는 왜 눈치가 보이고 신경이 쓰일까?]라는 청소년용 심리서를 봐보았다. 아이들의 고민이 무엇일까 궁금해서다. 친구문제, 이성문제, 가족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중 진로의 문제에 대해서 써놓은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진로선택에서 꿈을 꾸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우연을 준비하는 일이에요. (중략)
그렇기에 우연은 계획되고 준비되어야 합니다. 계획되지 않고, 준비되지 못한 우연은 그냥 스쳐 지나가서 머릿속에 남지 않는 일이 되어 버릴 거예요.
'우연을 계획한다'는 말의 뜻은 예상 못한 우연이 일어났을 때 우연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해요. 즉, 우연을 이용해 내 진로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지요. 우연을 놓치지 않고 행운으로 바꿨을 때 크롬볼츠는 이 우연을 '계획된 우연(Planned happenstance)'이라고 불렀어요. -180p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명사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자신에게 흥미가 생기는 우연을 발견했을 때 반응할 수 있는 호기심, 인내심, 유연성, 낙관성을 기르는 게 먼저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도 좀 더 유연하게, 인내심을 갖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낙관적으로 계속 나아가 봐야겠다. 뭐든 1년 차 때가 재미있던 터라, 아직은 도서관 일이 참 재미지다. 또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니, 우연을 계획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