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꽃님 장편소설
아빠는 무능력했으나 인정하지 못했고, 그 무능력을 맨날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여 결혼 전 함께 사는 동안 답답했다. 능력은 없이 늘어놓는 일이 많아 늘 가족들이 뒷감당을 해줘야 했기에 딸들의 원성을 샀으나, 사는 내내 아빠는 아빠의 갈길을 갔다.
엄마는 천사인 줄 알았다. 내가 뭘 해도 다 받아주는 천사 같은 엄마. 살아보니 무신경한 엄마였을 뿐이었다. 참견하지 말았으면 좋았을 곳에 계속 잔소리를 했고, 빠져들지 말았으면 하는 태극기 부대 비슷한 정치색이 되어 결혼 후에 갈등을 빚었다.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치자 일찌감치 집을 나가 결혼한 언니는 잘 살면 누가 뭐라겠냐만은, 전쟁같이 싸우고 친정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피신하는 통에 친정이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않는 남편 덕에 이십 대에 카드빚을 돌려 막기 하다가 갚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그 돈줄은 어이없게도 내가 되었다. 욕을 한 바가지 했지만 외면할 수 없었다. 나도 대출하여 언니가 갚기로 했으나, 중간 이후부터는 내 몫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 아빠와 비슷한지, 아빠를 비슷한 남편을 만난 건지, 언니는 이혼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이십 대가 되도록 잘 살고 있다.
내 귀여운 막냇동생은 나를 거의 롤모델처럼 따라 사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나를 존경하는 건 아니고, 때때로 무시하지만, 가는 행로가 나를 따르는 모양새다. 어렸을 적엔 나의 치부를 부모님께 고자질하던 고약한 동생이었건만, 커가면서 든든한 동지가 되었다.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재능이 없었던 나는, 나보다 재능 있어 보이는 동생을 실용음악 학원에 보내고 그 일을 업으로 삼게 했다. 동생은 곧잘 그 길을 따라왔다. 지금은 짝을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엄마가 결혼식에 참여할 상황이 아니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나의 가족들 이야기다. 왜 우리는 서로를 그저 지켜봐 주고, 독려해 주고, 이해해주지 못하고, 자신의 입장에서만 얘기하려고 하는지, 왜 가족보다 친구에게 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아직도 편한지, 사는 내내 원망하고 아쉬웠다. 다른 가족들처럼 서로가 힘들 때 달려와주고, 자주 만나 울고 웃고 이해하는 끈끈한 정이 우리에겐 왜 없을까. 왜 이렇게 사는 게 팍팍할까.
넌 가족이 뭐 엄청 특별한 건 줄 알지?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
웃기지 마. 가족이니까 더 어려운 거야.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해야 하고,
네가 지금처럼 멍청한 짓을 해도 찾으러 다녀야 한다는 거야.
불만 좀 생겼다고 집부터 뛰쳐나가지 말고,
너도 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봐.
최소한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하라고. (중략)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어쩌면 가족이란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 지도 모르지. -137p
아직도 미완이지만 마흔이 되고, 내 가족이 생기고,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애쓰지 않아도 이해하는 부분이 생겼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렇구나, 하며 넘기는 여유도 제법 생겼다. 아빠의 무능함 뒤에 있는 살가움과 애정이 보였고, 그런 아빠를 지탱해주는 건 무심한 듯한 엄마의 성품 아니면 견딜 수 없었겠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커서 비로소 안정된 언니 가족은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이었고, 언니가 와서 반찬도 해주고, 아이들이랑 놀아줄 때면 힘이 되었다. 동생은 고맙게도 언제나 내 편이었고.
가족들이 나름대로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지, 내가 살아보니 그제야 깨달아졌다. 나 역시 화쟁이 엄마로, 투덜대는 아내로, 부족한 대로 애쓰며 나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가족이란 건, 참을 수 없던 것들도 인내심을 발휘하게 하는 훈련의 장인지도 모르겠다.
대체 가족이라는 건 뭐기에 이토록 밉다가도 걱정이 되는 걸까요.
왜 본체만체 관심이 없다가도 괜히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걸까요.
-222p (작가의 말)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
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217p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신이 세밀하게 나를 위해 계획하신 기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