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판단이 옳치 않는 순간, 자살.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강렬한 제목에 끌려 실화 사건만을 읽길 바란다면, 아쉽게도 주소를 잘못 찾았다.
물론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긴 한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사건을 파헤친다거나, 영화처럼 자극적인 소재로 구성하지 않는다. 예상보다 실제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짧게 다루고, 생명에 대한 정의와 죽음에 관한 철학적 고민을 길게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 자살 행위를 하는 자살자들에게는 공통된 생각 하나가 있다. 바로 많은 경우 자살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나만 없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실제로도 자살자의 유서를 분석해보면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자살이라는 그 위험한 상상.
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회피의 생각을 하게 된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가를 내려갈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저 사람과 화해할 것인가, 아니면 무시로 일관할 것인가.
나 스스로도 자살에 대한 생각을 인생에서 하게 될 줄 몰랐다. 그만큼 당시의 나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했으며,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답은 없었다. 나의 자존심은 그 사람들과 화해를 원하지 않았고, 그들의 생각 또한 화해는 있을 수 없었다.
영화관 일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아니, 점장이 되고 더 힘들어졌다. 속속들이 새로 지어지는 영화관들 사이에, 10년이 넘은 영화관으로 과반의 점유율을 차지하라는 회사의 지시는 무리였다. 지시는 있으나, 지원은 없었다. 협박은 있으나, 협의는 없었다. 점유율이 점점 떨어질 때마다, 회사는 종종 전임자와 날 비교하곤 했다. 그때완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됨에도, 회사는 나의 능력 부족으로 몰아갔다. 대표적인 게 다른 영화관에 개봉을 막고, 우리 상영을 늘리라는 거였다. 필름 영화 시대에서나 가능한 말이었다. 지금은 그때처럼 안된다, 라고 했지만 나의 설명은 회사에 전혀 닿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나는 더 혼자였고, 더 벼랑 끝에 있었다. 퇴근 후 집에 있으면, 무엇을 할지 모른 채 가만히 있는 시간이 늘었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스멀스멀 좋지 않은 생각이 몰려왔다. 처음엔 단지 그거였다. 내가 없으면 이 모든 게 끝날 거라는 생각. 그거 하나로 나쁜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차츰차츰 날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러다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봐, 나는 이직을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봤다, 읽고 싶던 책을 읽혀주고, 글을 쓰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