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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Jan 27. 2022

엄마의 인생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세 자매 중 둘째 딸이다. 게다가 연년생 언니와는 정확히 1년 하고 이틀 차이.

내가 어렸을 때에는 아니,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는 1년 이틀 차이로 두 딸을 낳아 육아했을 엄마의 몇 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조차 해보지 못했다. 외동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아이 셋 육아를 홀로 감내했을 엄마의 시간들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싶다.


엄마는 늘 부지런했고, 아빠와 세 딸들을 살뜰하게 잘 챙기셨다. 늘 주위에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열심히 운동하셨고, 다양한 활동과 공부를 하셨던 꼿꼿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셨다.


내 기억 속 엄마는 운전도 일찍부터 시작하셔서 세 딸과 아빠의 출퇴근 라이딩 비롯 지역 합창단 활동, 꾸준한 독서, 수지침 공부, 베이킹, 가끔 고스톱 점을 쳐주시기도 했고, 여행도 좋아하셨으며 주부로써 소명을 다하시면서 당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하셨다.


엄마는 젊은 시절, 공무원이셨다.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하시고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셨기에, 멋진 옷과 화려한 스카프를 하고 계신 늘씬한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들을 보면, 얼마나 꿈 많았고 열정 가득한 멋진 여성이셨겠구나 싶다.


그랬던 엄마가 결혼과 함께 아빠를 따라 서울로 오면서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친정도 멀었고,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고, 애는 셋이고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우리 엄마는.


엄마는 늘 외모가 단정하셨다. 옷을 사도 비싸고 좋은 옷을 합리적으로 구입하셔서 오래 입으셨고, 외출할 때에는 늘 코트나 블라우스에 포인트 되는 브로치나 스카프, 모자 등 소소한 액세서리 등의 매칭도 기가 막히게 잘하셨다. 아빠는 늘 엄마가 챙겨주는 그대로만 입으셨는데 어딜 가도 멋쟁이 소리를 들으시는 것은 모두 엄마의 패션 센스 덕이다. 70이 넘으신 나이에도 멋들어지게 청바지를 소화해 내시는 아빠인데 이 모든 것들이 엄마 코디네이터가 없으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사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내 일을 한답시고 엄마의 노년을 잘 들여다보지 못했다. 70이 넘으신 엄마와 밀린 속 깊은 대화들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내가 결혼하고 14년 만에 엄마 옆으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전업주부셨어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활동했던 엄마는 늘 부지런하셨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 눈에는 슈퍼우먼 같았던 우리 엄마의 속사정은 사실 조금 달랐다.


당시에는 누구나 그렇듯 시댁이라는 굴레에 의해 속상한 일도 많으셨는데, 성실하고 착한 아빠, 효자 남편을 배우자로 두셔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무원 아빠의 적은 월급으로 세 딸들을 서울에서 아등바등 키워내시는 엄마는 그야말로 알뜰살뜰 살림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초등학생 때였던가, 어느 날 우리 가족 건강을 봐주시는 한의사 선생님이 엄마의 맥을 짚으시며 말씀하시는 것을 또렷이 들었다.


“엄마는 기가 약해, 아니, 하나도 없어요. 부지런하게 사는 것도 사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겁니다. 조심해야 해요.”


그때엔 이렇게 에너지 넘치는 엄마가 설마 갑자기 어떻게 될까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족들 앞에서는 늘 부지런하고 에너지 넘치던 엄마의 모습의 이면에는 당신의 본연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한 여인의 인내심, 정신력의  승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제는 이 모든 삶을 이해할 수 있고, 같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감내하고 살아왔을 엄마의 지난 삶을 응원하고 통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과거 모습에서 지금의 나를 찾는다. 나는 엄마를 닮았구나.


여전히 딸 셋 걱정이 많은 우리 엄마. 아빠와 두 손 꼭 잡고 동네에서 다니시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사이좋은 노부부다 싶다.


나도 노년에는 엄마처럼 나이 들고 싶다.

그간 인생에서 느꼈던 아쉬움, 앙금은 떨쳐버리고 고요하게, 복작댐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평온하게 그렇게 말이다.


이렇게,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내가 엄마가 되어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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