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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Feb 07. 2022

나이는 먹을지 언정, 나는 오늘을 산다.

오늘 일을 내일에게.



매주 일요일에는 한 시간 거리의 쇼핑몰로 강의를 다녀온다. 혼자만의 시간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의외로 이 시간, 라디오에 집중하며 디제이의 멘트와 음악에 심취하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고 값지다. 이 시간은 바쁘게 살아가는 나에게 사유할 시간을 주는 유일한 시간이 된다.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연주곡. 박기훈 ‘오늘 일을 내일에게’.


가볍게 오늘 일을 내일에게 미뤄두고 현재를 즐겁게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듯한 연주곡이었다. 경쾌하고 가볍고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젊을 때에는 연주곡도 상당히 즐겨 듣던 나였고, 재즈도 좋아해 공연을 찾아다녔던 나인데 그랬던 나의 취향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싶고, 나이를 이렇게 먹는 건가 싶어 잠시 쓸쓸해졌다.


좋은 집과 차, 많은 재산, 우월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찾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어른으로 사는 것. 나이를 먹어가고 이 정도 살아보니 조금은 알 거 같은 것은, 그 부를 축적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하는 지도 알겠고,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그 후의 삶을 좌우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가 아등바등 열심히 현실을 살아내는 동안 우리의 아이들도 함께 성장하고 머리가 굵어진다는 것이다. 먹이고 재우는 데에서 이제는 자아가 생겨나가는 시기에 접어드는 아이들과 공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싶은데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놓치는 것도 참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아이를 잘 못 챙기는 순간이 되면 살짝 미안해지고 눈물을 짓다가 내일이 되면 또다시 전쟁터에 나가듯 나의 삶을 살아나간다.


적당한 수준의 부를 쥔 채 삶의 의미도 찾고 적당히 가족들과 삶을 즐기며 사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아들도 살아가면서, 어른이 되어서도, 삶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게 사는 삶은 쉽지 않고 ‘적당히’의 기준도 모호하다. 그저, 나이가 들어가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틀어주며 개그우면 안영미 씨가 하신 멘트가 와닿았다. 새해가 되면서 모두들 계획대로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대는 것 같다고. 주위 사람들을 보면 뭐 그리 열심히들 사는지. 오늘일 살짝 내일로 미룬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떠겠냐고. 뭐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런 편인데 미루게 된다면 엄청난 강박관념에 휩싸여 나를 채찍질하고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곧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고 나의 몸과 정신건강에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그런 스트레스들은 견딜 만 했었다. 지금보다 젊었고 체력도 되었으니까. 지금처럼 나이 들어가면서 보이는 혜안은 부족했을지 언정 체력과 패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정도까지 내 체력과 기력이 감당해 내기는 쉽지 않더라. 매일의 루틴을 살아가는 사람들. 매일의 운동, 공부, 글쓰기, 독서기록을 올리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SNS 속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안다. 보이는 것이 다 가 아니라는 것을. 행복의 의미는 각자 다 다르다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웃긴 건, 알면서도 돌아서면 또 비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3주 전쯤 종아리 근육이 아파져서 치료를 받느라 운동을 쉬었더니 또다시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렇다. 나이를 먹으면 이렇게 여러 가지에 집중을 하다 보면 생기는 부상들이 존재한다.

모든 것들을 다 잘할 수 없다. 나도 아는데 그게 참 사람인지라 그 욕심을 꺾기가 어려웠다.


언제부턴가 먼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현재에 충실하고, 오늘을 충실히 살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계획들을 해나가면서 살기로 했다. 살아보니 그 계획들은 언제든지 변동될 수 있더라. 문제는 꾸준함, 끈기였다. 그리고 최소한 시도를 했고 노력을 했으니 후회하지는 않기로 했다. 경험은 모든 삶의 재산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 오늘을 충실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욕심내지 않고 평탄하게 내 그릇만큼 그렇게 살아야지 싶다. 무엇 하나 과하면 삐끗하는 게 인생이더라.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살고, 가끔 힘들면 오늘을 내일에게 미루며 잔잔하게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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