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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Feb 10. 2022

동경을 애써 감춰본다.

희극과 비극




나는 어릴 적부터 이 좁은 땅덩이 밖의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기를 동경했었다. 무엇이 시작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때 애청하던 미국 방송 ‘AFKN’이나 ‘SOS해상 기동대’, ‘긴급출동 911’때문 일 수도 있겠고, 즐겨보던 외국의 10대 아이들의 소설인 말괄량이 쌍둥이, 다렐르시리즈나 꼬마 흡혈귀 시리즈 등의 책들 영향이었을 수도 있다.


학창 시절 팝송을 주로 들으며 금발머리에 파란 눈 아이돌 가수들을 덕질하고 ‘7막 7장’과 ‘나는 한국인이야’라는 책을 읽으면서 유학생의 삶과 한국인으로서 해외살이의 고충을 엿보았으며, 해외 펜팔을 하면서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했었다. 세계 각국 또래의 친구들과 10대에 겪는 고충과 꿈들을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저 바깥세상 10대들은 우리나라와 참 다르구나, 하는 점을 많이 느끼고 동경했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해외에서 이민 오는 친구, 이민 가거나 유학 가는 친구들이 많았다.

중학교 때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얼마 안 되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친구와 편지, 사진들을 주고받으면서 돈독하게 지냈는데, 입시에 찌든 교복 입은 단발머리에 촌스러운 안경을 쓴 못난이 같은 나와는 달리, 캐나다에서 10대를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은 세련된 대학생 언니처럼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었다. 아버지가 회사 주재원이셔서 여러 나라에서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 친구와 친해지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친구는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했지만 늘 겸손했다. 나도 영어를 좋아했고 즐기면서 공부를 해왔기에 친구의 유창한 영어실력이 부럽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어린 마음에, 공무원인 우리 아빠는 해외근무를 나가실 수가 없다는 사실이 속상하기도 했었다.


또한,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들이 고등학교 무렵 한국에 전학 와서 특례입학으로 명문대를 들어가는 것도 마냥 부러웠었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당시에는 친구들이나 친구들의 가족들이 해외 삶을 살면서 겪었을 고충들은 전혀 모른 채 막연히 해외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외국어를 배운 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 습득을 떠나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소통할 수 있는 준비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남편이나 내가 해외살이를 할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한 번쯤 나가 살아보고 싶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남편 회사에서 해외 주재 이야기가 나온다면 두 귀를 쫑긋 하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한두 번 기회가 날 뻔했지만 선택을 하지 않았고, 그 사이에 아들은 벌써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다. 늘 일말의 희망을 가져보려고 혹시나 나갈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때 되어 아이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어쩌지 노심초사하며 외국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이제 점점 나이를 먹고 내 일을 하고 있는 나와 아들에게 느지막이 해외에 나가는 것은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이제는 잘 모르겠다.


요즘도 가끔씩 해외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안부를 묻는다. 해외에 주재했다가 돌아온 친구들과 돌아올 친구들과 리터니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에 휩싸인다.


 이제는 막연하게 나의 동경만을 좇을 수만은 없는 게, 아이의 입시와 미래가 걸리는 문제도 있다.


친구들을 동경하지만, 그녀들의 삶을 대신 살아보진 않아서 그 속을 잘 모르니까 애써 부러움을 감추려 한다.


모두에게 삶은 다르고, 비극과 희극은 존재하는 거니까.

그냥 여행 다니면서 사는 것도 좋았은데, 요즘 같아선 코로나가 말썽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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