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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Feb 15. 2022

손에서 인생이 보인다.

내 두 손을 바라봐요.


어릴 적부터 손가락 끝이 가늘고 긴 언니 손과 다르게 끝이 둥그스름한 내 손가락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게다가 손몸통 부분이 손가락보다 살짝 더 길어서 무지막지하게 큰 손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실 여자치고는 손이 큰 편이라 신경 쓰이기도 했다.


이런 내 손을 보고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재주가 많은 손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신기하게도 살면서 손재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다.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건데 어른들의 말씀은 묘하게 맞는 것들이 있고, 지나고 보면 버릴 것 하나 없더라.


초등, 중학교 중반까지는 미술을 좋아해 화실을 다니면서 전공을 준비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행복했고, 완성 후 성취감이 좋았다. 가끔 대회에 출품해 상을 타거나 나의 그림이 학교 복도에 걸리는 날에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미술은 취미로만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 붓을 내려놓았다. 그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기웃기웃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곤 하는데, 요즘은 바빠서 방치해 둔 유화 용품들과 캔버스를 남편은 자꾸 버렸으면 하는 눈치다. 아니야, 할 거라고!!(언제….)


초등학교 때부터 생선, 오징어, 꽃게, 양 손질까지 엄마를 도와 새로운 생물들을 손질하는 게 흥미로웠고 요리하는 재미를 알아갔다. 요리하고 난 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좋아해 주는 그 기분이 좋았다. 특히 초등학교 때 토요일 하교를 마치고 오면 엄마가 “민숙아, 떡볶이 만들까?” 하시면 나는 득달같이 부엌으로 가 요리를 시작했다. 우리 집 특유의 스팸이 들어간 보글보글 떡볶이를 만들어 언니 동생 엄마와 마주 앉아 먹었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미국에서 살다 온 아줌마 집에서 엄마는 베이킹을 배우셨다. 엄마의 레시피북이 너무나 흥미로웠고 나는 엄마의 보조역할을 하면서 함께 머핀이나 파운드 케이크를 구웠다. 엄마는 야채를 듬뿍 넣은 파운드 케이크를 주로 만드셨는데, 당근이나 양파 애호박이 들어간 시나몬 향이 은은히 퍼지던 건강한 케이크들이었다. 늘 엄마 보조만 하다가 처음으로 혼자서 믹싱을 하고 머핀을 만들어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내 손은 늘 분주했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인생을 돌고 돌아 지금의 나는 손을 쓰는 일, 베이킹이 업이 되어 있다. 수많은 취미 중 하나가 일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전혀 이 취미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나 계획하지 않았었다. 그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했고, 밤을 새도 즐거웠다. 즐기면서 꾸준히 하다 보니 기회들이 왔고 나는 그것들을 잡았을 뿐이었다.


베이킹을 13년째 하면서 얻은 손의 변화가 있다면, 손 마디마디가 굵어지고 늘 건조하며, 오른손 검지 손가락 안쪽에는 굳은살이 생겼다는 점이다. 스탠드 믹서를 쓰지 않고 핸드믹서만 잡고 미친 듯이 베이킹을 했던 초반, 손가락에는 굳은살이 생기고 물집이 잡혔다. 최근 몇 년간은 스탠드 믹서를 사용하고 강의 때만 핸드믹서를 잡으니 굳은살이 점점 연해지고는 있지만 지금도 만지면 살짝 걸리는 그 굳은 살은 베이킹 일을 하면서 얻은 영광의 흔적이다.


게다가 이 일을 하면서 손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바쁜 시즌에는 내 손에 물 마를 틈이 없어 건조해지고 늘 따갑고 피가 났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면 될 텐데 바쁠 때에는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베이킹 일을 시작하면서 그리 좋아하던 네일숍에서 손톱을 가꾸는 시간을 포기하게 되었다.


지금 내 손은 여전히 크고 마디마디가 굵고 건조하며 손톱은 늘 짧게 깎여져 있다.

사람의 손은 살아온 인생을 보여준다고 한다. 오늘 바라본 내 손에는 엊그제 베이킹을 하다가 긁힌 또 하나의 상처가 남아있다. 손목 곳곳에도 데인 상처의 흉터들도 남았지만 나는 내 손을 더욱더 사랑해 주련다. 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고, 이렇게 키보드 자판을 톡톡이며 글을 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너와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잘 부탁해 내 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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