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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Mar 22. 2022

꽃에 대한 기억들

꽃을 알아가던 과정



꽃을 직접 사본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40대가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 돈으로 꽃 한 단을 사 왔던 그날. 나를 위한 선물로 꽃을 사는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만큼 나이를 이만치 먹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20대 때에 꽃다발을 선물 받을 일은 다수 있었지만, 결혼 전 인연이었던 남자들에게 받았던 꽃다발들에는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특히 사랑고백을 하는 꽃다발을 받고 부담스러웠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꽃은 예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헤아리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감정을 내비쳐야 할지 모르겠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남편의 꽃다발은 달랐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꽃 선물을 종종 해주었던 그 덕분에, 꽃에 관심 없던 나는 꽃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특별한 날은 특별한 날이라고 들이밀던 꽃다발, 아무 날도 아닌데 갑자기 들고 들어오던 꽃다발, 내 생일에 장모님께 꽃다발을 선물하던  섬세한 감정을 가진 남자와 살아서 행복하다 싶었다.


그리고 그가 매년 꽃다발을 준비해주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솔직히 현실부부인지라 돈이 좀 아깝다는 생각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매년 그가 나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면, 그때 그때의 소중했던 감정들을 두고두고 간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점점 뜸해질 때쯤 한 번씩 그는 꽃을 선물해 주곤 한다.


몇 년 동안 꽃 선물이 없었고 나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12월, 생일 전날 아침, 큼지막한 꽃다발이 배달되어 왔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적잖게 당황했고, 감동받았고, 기분이 좋았다. 그가 보냈다는 꽃다발 꽃들은 종류도 골고루였고 풍성했고 그를 닮아 장미도 카네이션도 리시안셔스도 풍성, 거베라도 큼지막했다. 무심한 듯 적혀있는 ‘사랑하는’으로 시작하는 쪽지도 수줍게 그를 닮아 있었다. 괜히 가끔씩 눈물 펑펑 쏟게 만드는 그다. 그렇다. 그는 밀당을 잘하고 나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꽃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적어도 꽃 이름이라도 알게 된 것은,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 3년간 성당에서 꽃꽂이 봉사를 하면서부터였다. 꽃을 손질하고, 꽃 이름을 기억하고 꽃다발도 만들어보고, 성당 행사 때마다 제대 꽃꽂이 봉사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꽃 이름들을 익히면서 꽃을 만질 기회를 가졌다. 자매님들을 따라 꽃 시장에 따라가도 보고, 꽃 종류와 소재들을 알게 되고, 주제에 맞는 부자재들과 포장재, 화병들을 골랐다.

아름다움을 뽐낸 후 며칠 후면 시들어 버릴 꽃들이 활기차게 유통되고 있는 꽃 시장은 묘한 생동감이 있었다. 그때 또 한 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즈음에는 버터크림으로 꽃을 짜서 케이크 위에 장식하는 플라워 케이크를 배우러 다녔다. 선생님을 따라 버터크림으로 꽃을 짜 보면서, 자연스레 꽃 모양과 꽃 이름을 익히게 되었다. 예쁜 꽃들을 짜서 올린 케이크는 정성과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특별한 날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뿌듯했다.


오늘은 왠지 예쁜 꽃 바라보며 힐링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는데 어영부영 하루가 다 지나갔다. 본의 아니게 몸이 쳐지는 것은 참을 수 없이 힘들다. 하루빨리 훌훌 털고 예쁜 꽃이 가득 필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이 글을 쓰며 그동안 꽃이 나에게 주었던 감정들을 추억하는 시간들이 덧없이 좋았다.

알록달록 곧 예뻐질 봄을 맞이하기 위해 예쁜 꽃 한 단 사 와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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