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슈 May 09. 2022

어느 날, 어느 빵집 그리고 시선

후암동 타팡



2022년 5월 4일.


오늘은 여러 일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본의 아니게 가게 된 동네에서 발견한 동네 분위기와 사뭇 달라 보이는 새하얀 외관의 작은 베이커리에 들렀다. 간판 아래에 작게 블랑제리 파티세리라고 써져 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지.


평일 대낮, 홀로 매장을 지키고 있는 셰프복을 입은 외국인 남자분. 나도 오전 내 강의를 하며 쿠키 냄새를 담뿍 코에 담고 넘어온 지라, 셰프님의 미처 벗지 못한 셰프복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어서 오세요!

약간의 어색한 삐뚤빼뚤 한국말이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신다.


“안녕하세요~”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쇼케이스로 눈을 돌린다. 작은 홀인데 쇼케이스에는 베이커리 종류가 다양했다. 발효빵부터 쿠키 케이크까지. 예쁜 베이커리들을 보고 있자니 눈이 빙빙 돌아가며 피로한 일상 속 행복감이 밀려왔다.


 홀 내부는 넓진 않았지만 아기자기 유럽 감성이 물씬 풍겼다. 저 옆에 에펠탑 그림이 그려진 입간판이 보인다. 아, 여기 프랑스로구나! 몰랑몰랑한 샹송이 흘러나오고 기나긴 바게트 하나 베어 물고 유명 베이커리들을 투어하고 있을 어떤 날을 꿈 꾸던 그곳. 프랑스.


이곳은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이 운영하시는 프랑스 베이커리였다. 벽에는 두 분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과 기사들이 있었다. 프랑스 리옹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던 삶을 접고 이곳에 프랑스식 베이커리를 오픈한 두 부부의 이야기. 두 분이 굽는 프랑스식 베이커리들이 궁금해졌다.


늘 새로운 베이커리에 들어가면 매의 눈으로 빵들을 스캔한다. 주로 종류와 비주얼, 그리고 이름 아래 재료 설명이 있으면 꼼꼼히 빠르게 스캔하고 가격을 확인한다. 이건 가성비 괜찮아 이건 좀 너무 센데! 이건 가격은 착한데 크기가 너무 작아, 이 재료가 들어갔다면 이 가격임 땡큐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주인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실례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차, 외국인이다! 게다가 프랑스 사람. 이 분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일지 감이 안 오니까 살짝 말 수를 줄이기로 하고 신중하게 고른 빵들을 주문한다.


직원 분은 한 품목씩 재차 주문한 빵 이름을 체크해가면서 꼼꼼히 포스를 찍으시고, 결제를 한 후 뭐라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만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재차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물으니 “포인트 적립하시겠어요?”였다.


푸하하. 별 말 아니었는데 순간 내가 프랑스어를 해야 하나 영어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고, 았다. 여기는 한국인 것을.


사장님은 천천히 포장을 시작하신다.

이 분이 뒤돌아 포장을 하고 계시는 찰나, 나는 재빠르게 베이커리들을 사진 찍는다. 홀 분위기, 베이커리들, 그리고 뒤편에 살짝 보이는 깔끔한 주방 입구를 보며 이 가게의 규모를 가늠한다. 저 주방에서 매일 만들어지는 다양한 베이커리들을 상상하면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과거에 겪어본 전투적인 주방의 분위기를 잠시 잊은 채 말이다.


베이커리들을 고르다가 그동안 맛이 너무 궁금했으나 제대로 만들어 파는 곳을 못 본 ‘플랑’을 만나 반가웠다. 다음 수업 안을 짤 때 ‘플랑’을 넣어 보고 싶지만 생소한 이름이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포장을 끝낸 직원 분은 두 손에 빵 봉투를 들고 기다리고 계신다. 빵 사진 찍는 한국인 여자를 자주 보셨을 테니, 부끄러움은 넣어두고 취재하는 기자처럼 사진을 찍고 빵을 받아 나오면서 외부 간판을 한번 더 사진 찍는다. 새로운 곳에 가면 사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여서 그런지 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사진첩에 사진이 한가득이다.


문득, 이 직원분에게 보이는 빵집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상상해 본다.  저 손님은 빵집에 들어올 것 같아! 저 사람들은 지나가는 행인이네, 저기 저 길 건너에서 사진 찍는 여자는 우리 빵집에 들어올 것 같아. 라던지.


어찌 되었든 오늘도 예상치 못한 프랑스식 베이커리를 만났고, ‘플랑’을 만났다.

아들과 포크로 떠서 한 입씩! 오늘 하루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달콤한 보상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와 함께했던 밤하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