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러 일들이 많았던 하루였다. 본의 아니게 가게 된 동네에서 발견한 동네 분위기와 사뭇 달라 보이는 새하얀 외관의 작은 베이커리에 들렀다. 간판 아래에 작게 블랑제리 파티세리라고 써져 있으니, 안 가볼 수가 없지.
평일 대낮, 홀로 매장을 지키고 있는 셰프복을 입은 외국인 남자분. 나도 오전 내 강의를 하며 쿠키 냄새를 담뿍 코에 담고 넘어온 지라, 셰프님의 미처 벗지 못한 셰프복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어서 오세요!”
약간의 어색한 삐뚤빼뚤 한국말이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신다.
“안녕하세요~”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쇼케이스로 눈을 돌린다. 작은 홀인데 쇼케이스에는 베이커리 종류가 다양했다. 발효빵부터 쿠키 케이크까지. 예쁜 베이커리들을 보고 있자니 눈이 빙빙 돌아가며 피로한 일상 속 행복감이 밀려왔다.
홀 내부는 넓진 않았지만 아기자기 유럽 감성이 물씬 풍겼다. 저 옆에 에펠탑 그림이 그려진 입간판이 보인다. 아, 여기 프랑스로구나! 몰랑몰랑한 샹송이 흘러나오고 기나긴 바게트 하나 베어 물고 유명 베이커리들을 투어하고 있을 어떤 날을 꿈 꾸던 그곳. 프랑스.
이곳은 한국인 아내와 프랑스인 남편이 운영하시는 프랑스 베이커리였다. 벽에는 두 분의 이야기가 담긴 사진과 기사들이 있었다. 프랑스 리옹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던 삶을 접고 이곳에 프랑스식 베이커리를 오픈한 두 부부의 이야기. 두 분이 굽는 프랑스식 베이커리들이 궁금해졌다.
늘 새로운 베이커리에 들어가면 매의 눈으로 빵들을 스캔한다. 주로 종류와 비주얼, 그리고 이름 아래 재료 설명이 있으면 꼼꼼히 빠르게 스캔하고 가격을 확인한다. 이건 가성비 괜찮아 이건 좀 너무 센데! 이건 가격은 착한데 크기가 너무 작아, 이 재료가 들어갔다면 이 가격임 땡큐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너무 오래 주인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실례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어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차, 외국인이다! 게다가 프랑스 사람. 이 분의 한국어 실력이 어느 정도 일지 감이 안 오니까 살짝 말 수를 줄이기로 하고 신중하게 고른 빵들을 주문한다.
직원 분은 한 품목씩 재차 주문한 빵 이름을 체크해가면서 꼼꼼히 포스를 찍으시고, 결제를 한 후 뭐라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만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재차 “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물으니 “포인트 적립하시겠어요?”였다.
푸하하. 별 말 아니었는데 순간 내가 프랑스어를 해야 하나 영어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고, 쫄았다. 여기는 한국인 것을.
사장님은 천천히 포장을 시작하신다.
이 분이 뒤돌아 포장을 하고 계시는 찰나, 나는 재빠르게 베이커리들을 사진 찍는다. 홀 분위기, 베이커리들, 그리고 뒤편에 살짝 보이는 깔끔한 주방 입구를 보며 이 가게의 규모를 가늠한다. 저 주방에서 매일 만들어지는 다양한 베이커리들을 상상하면 그저 기분이 좋아진다. 과거에 겪어본 전투적인 주방의 분위기를 잠시 잊은 채 말이다.
베이커리들을 고르다가 그동안 맛이 너무 궁금했으나 제대로 만들어 파는 곳을 못 본 ‘플랑’을 만나 반가웠다. 다음 수업 안을 짤 때 ‘플랑’을 넣어 보고 싶지만 생소한 이름이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포장을 끝낸 직원 분은 두 손에 빵 봉투를 들고 기다리고 계신다. 빵 사진 찍는 한국인 여자를 자주 보셨을 테니, 부끄러움은 넣어두고 취재하는 기자처럼 사진을 찍고 빵을 받아 나오면서 외부 간판을 한번 더 사진 찍는다. 새로운 곳에 가면 사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여서 그런지 늘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사진첩에 사진이 한가득이다.
문득, 이 직원분에게 보이는 빵집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상상해 본다. 저 손님은 빵집에 들어올 것 같아! 저 사람들은 지나가는 행인이네, 저기 저 길 건너에서 사진 찍는 여자는 우리 빵집에 들어올 것 같아. 라던지.
어찌 되었든 오늘도 예상치 못한 프랑스식 베이커리를 만났고, ‘플랑’을 만났다.
아들과 포크로 떠서 한 입씩! 오늘 하루 있었던 많은 일들에 대한 달콤한 보상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