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죽도록 미워해보거나, 미움을 받아본 적도 크게 없이 무탈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분란을 싫어하고 큰 소리를 내고 화를 내며 싸움을 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며 시간 낭비, 내가 소모되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성인군자도 아니고 마냥 깨끗하게 살아낼 수 있을지도 싶고. 살면서 타인과의 의견차이가 어찌 없을 수 있을 까도 싶고.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오해들이 있다. 그 오해의 씨앗만 사라진다면 서로를 미워하는 일은 없을 텐데, 생각의 격차가 깊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에 ‘미움’이란 감정이 자리 잡게 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어도 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최소한, “적은 만들지 말아야 지.”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나이를 먹을수록 욕심부리던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법을 배워가고 있건만,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여전히 모두 내 맘 같지는 않다. 물론 남도 그럴 테 지만.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거나 진실이 아닌 말들이 오가고 험담을 하는 것이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오는 상황이 생긴다면 견뎌 내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애써 타인에게는 때론 내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최대한 친절하게, 나를 좀 내려놓더라도 타인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비치길 바랐다. 혹자는 “왜 남을 위해 사냐,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고도 말하지만 그게 내가 사는 방식이었고, 그 방법은 반대로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과 행동거지를 쓸어내리면서까지 타인을 신경 쓰는 행동들은 역시 두고두고 남아 나 자신을 심적으로 힘들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고 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내 생각이 맞다고, 타인의 말은 이유불문하고 틀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 놓고서 돌이켜보면 어느새 나도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변론하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혼자만 챙기고 살다가 가족이 생기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미움을 사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너무 미워서 혼자 마음속으로 욕을 하고 온갖 저주를 뿜어내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어떻게 나한테 감히 그런 말을 해!”
복수의 칼날을 갈며 화를 내다가도 현실은 ‘더글로리’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처절한 복수는 고사하고 대놓고 욕 한마디도 못 날리고 있는 나를 마주하고야 만다. 혼자 분풀이를 엄한 데다 하고 속 시원히 엉엉 울고 나면 조금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괴롭힐 수 있을까. 뭔가 논리적이고 타당한 방법으로 내가 힘들어지게 된 만큼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 내가 뭐가 못나서,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미움을 사!!! 미워 미워!! 되갚아줄 거야!”
머릿속으로는 이미 잔혹한 복수가 난무한 영화 한 편이 펼쳐진다. 이 장황한 스토리의 끝은 과연 누군가의 승리로 끝나려나.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복수의 끝은 행복이 아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줌을, 그 씁쓸한 결말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느껴왔으면서도. 막상 닥치면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들이 싹트고 있는 최근, 요즘 읽고있던 책 한권에서 뼈 때리게 뎅 하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과 같은 글귀를 읽었다.
“최고의 복수는 너의 대적과 똑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 명상록,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
누군가를 미워하는 행위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너무 고통스럽다. 에너지 소모가 크고 나를 병들게 만드는 것과 같았다.
누군가를 미워했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히려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사람을 안 만나고 살았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그동안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일종의 자기 암시랄까. 도 닦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 대한 ‘미운 감정’들을 걷어내어 본다.
이런 복잡한 감정들은 또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지겠지.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좀먹게 하는 ‘미움’은 적당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해야지 싶다.
결국 남는 것은 ‘나’다.
내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고 주위사람들이 웃는다.
남을 미워하는 감정들을 걷어내고 웃으며 살고 싶다. 보다 활기차게 살아야지 싶다.
이 아름다운 봄날, 내 정신을 좀먹는 우중충한 그런 시간들이 아깝다.
봄꽃들을 보며 마음의 평온을 가져야지 싶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