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떠나보내며

by 여비

햇빛의 강렬함에 눈이 시렸습니다.

저절로 한소끔 씩 잉크빛 하늘로 인사하더니 가을은 떠나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만났던 친구의 등을 멀찍이 바라봅니다.

가을은 우리네 사랑이 식어버린 작별처럼 그리 매정하지는 않습니다.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듯이 그렇게 떠납니다.


한강 둔치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길 위에 가을의 발자국이 어지러이 찍혀있네요. 내가 홀연히 떠났던 곤한 밤에도 가을은 서둘러 떠나야 할 만큼 갈 길이 먼 모양입니다. 흩어져 있는 나뭇잎으로 서로를 다독입니다. 너 먼저, 아니 나 먼저...

떠나가는 가을의 굽은 등을 바라봅니다. "어서 오소서" 환영을 하고도 눈짓의 잠을 자다가 떠나가는 자리는 휑하기만 합니다. 내게로 들어온 가을을 혼자서 또는 둘이서 길마중을 했습니다. 바람 따라 떨어지는 느팃잎은 장엄하기까지 하군요.

그들을 보내는 나는 한나절의 빛나는 햇살이 아쉽습니다. 시린 눈에 눈물이 배여 발 앞에 떨어진 가을 한 장을 집어 듭니다. 코 끝에 스치듯 생명 냄새가 품기고 한 손에 쥔 풍선이 되어 붕붕 댑니다.


잠시 벤치에 앉아봅니다. 이곳을 찾아와 지난봄과 뜨거웠던 여름과 하늘빛 맑은 가을을 넘기었던 많은 날들을 생각합니다. 좋았던 싫었던 시간들과 일상의 고단함이 춤추는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아내느라 상처 받이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을의 먼 길 끝으로 다가가나 봅니다. 이제 빈 마음으로 찬서리 내리는 자리에 앉아야겠지요. 쪽마루 한편에 앉은 맷돌호박처럼 중심을 잡고 뜨거운 온기를 간직하겠습니다.

떠나가는 가을 앞에서 다가올 인생의 겨울을 활짝 반기겠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