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을 안하고 살고 싶다. 중학교 입학부터 쭉 지금 환갑까지 살면서 계속 돈 걱정을 한다.
소풍때 어린이날 그리고 크리스마스날에도 별다른 기대하지 않고 생일날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시절 방과후에 군만두와 떡볶이를 실컷 먹고 토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한것도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아버지 직업도 선생님이면 우리동네에서는 제법 괜찮은 거였고 내가 좋아하는 인수오빠 아버지는 목수였으니깐 적어도 보통은 아니었나 싶다.
할머니 말에 의하면 새엄마가 헤퍼서 우리집은 망조가 앉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내와 네째는 예쁜 세일러문 책가방과 콩나물이 그려진 세광출판사의 피아노 악보가 들어있는 노란 학원가방을 들고 다녔다. 나는 피아노치는 막내를 업고서 데려다주고 돌아올때 까지 학원 계단에 엎드려 숙제를 했다. 분개한 마음을 추스리는데는 그리 시간이 많이 들지 않았다. 샘이 많은 내가 소박한 성격이라서 참은 것은 아니었다. 동그란 원안에 둘러 앉은 한식구에 파도를 쳐서 찢어진 원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까닭모를 허전함은 혼자만의 동굴을 파고 책에 빠져 상상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만큼은 돈 걱정을 안해도 됐으니깐,
흰 카라에 갈래머리를 하고 흰운동화를 신고 여고생이 되었다. 빚더미에 앉은 집안 형편으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등교할 수가 없었다. 여섯 정거장을 걸어 **시장로타리에서 배가 터질듯한 버스를 간신히 타고 학교에 갔다. 나는 매 발걸음속에 든 돌멩이가 돈 걱정이다. 검정 스타킹을 뚫고 돋아오르는 돌멩이의 아픔은 돈걱정이라 발톱으로 발가락 사이로 스치다가 파고들고 마침내 피가 맺혔다. 운동화가 헐떡대면 더욱 돌멩이는 속에서 돌고 돌아 걱정돌기로 존재했다.
신발을 벗고 탁 털어 버리고만 싶다. 장녀인 내게 부모님의 큰소리는 그 놈의 돈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동생에게 양보한 상급학교로 정점을 찍었다. 하고 싶은 공부도 저 멀리 인수네 큰언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도 돈걱정의 산물이고 떼를 써 봄직도 한 팬시점의 만년필곽의 파이롯트의 펜촉도 모두 상상으로만 침발라 찜해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먹고 살 일로 출근을 한다. 따뜻한 이불 속의 포근함도 어제 신었던 돌멩이를 털어버리듯이, 통장속 잔고를 붙잡고 비지땀을 흘리려 버둥댄다.
내가 만약 돈 걱정을 안하고 사는 아이로 자랐다면, 지금보다 부드러운 얼굴로 남편을 대하고 생각의 틀이 넓다란 판자처럼 되었을까? 내게 너무도 많은 결함을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