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칠판에 Boys, be ambitious.라고 쓰셨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의 첫 문단이다. 나는 여고 3년생이다. 어제 본 모의고사에선 서울의 대학은 가당치 않고 아버지의 부릅뜬 두 눈만이 어른댄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은 영어로 적어놓은 글에 둥근 원을 그리며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 그러니 너희들은 무얼 하면 재미있는지, 설레는지 꼭 찾도록 해. 사회가 인정해 주는 일보다는 너희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 앞으로 살면서 흔들리더라도 덜 흔들릴 수 있을 거야. 모두들 용기를 내라. 알겠지?
십오육 년 전 드라마였다. '서울의 달'이다. 달동네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한석규의 절규가 생각난다. 가진 것 없이 몸뚱이가 전 재산인 제비로 웃지 못할 찍고 메들리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턴 마무리 홍식(한석규 분)의 두 팔이 찾지 못한 돈다발 위에서 허우적댄다. 고관대작 사모님은 오르지 못할 나무였나?
마주 보고 있는 골목집의 영숙(채시라 분)이 타깃이 되고 사기 치며 살아가는 제비를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란 묘한 변수인지라 울음과 바꿔도 나만의 아픈 맘은 아름다운 꽃처럼 처연하다. 받아 든 편지엔 배를 타고 떠난다는 이별통보에 떨어지는 눈물로 범벅이 된 영숙! "라스팔마스"로 간다. 나는...
싸늘한 시체가 된 홍식을 내려다보며 오열하는 영숙은 제비의 몸 선생이 아닌 마음속 선생이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터무니없는 점수로 안간힘을 써 턱걸이로 목을 넘기지 못한 비대한 내 몸뚱이가 처절했다. 교무실 옆 붙여진 벽보에 내 이름 석자를 찾아 허둥대는 우스운 꼴이라니 그만하자!! 그래.
대입을 포기했다. 나는 잘하는 것도 없고 재미있는 것도 없다. 국어 선생님의 말대로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기로 했다. 수학의 어지러운 숫자는 아니고 실험실의 흰 가운은 내겐 어울리지 않는다. 운율이 있는 시 이야기가 있는 그림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냥 내 경험들을 솔직하게 정성을 담아서 써 보자. 제대로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은 내 몫이 아니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