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

by 여비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가 바람에 춤을 춘다. 서양과자의 냄새는 코와 침을 바투고 학교 운동장엔 책가방이 줄을 서있다. 매년 4월은 가정방문이 있는 달로 오늘이 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는 날이다. 여느 날과 달리 책가방을 메단 내 어깨엔 힘이 빠진다. 집에 가본들 반겨줄 나의 엄마 대신 아버지가 텃밭에 쪼그리고 계실터라서다.

공장 건너 철뚝길엔 자운영꽃이 보랏빛 고운빛으로 잔잔히 앉아있고 눈을 뒤로하면 야트막한 언덕길 위엔 진달래가 한 창이다. 들길 너머로 바지런한 손길이 지나간 논길엔 굵은 쟁기질로 엎어진 검은흙들이 드러누워 있다. 나는 내 이름 석자를 겨우 그려내고 입학을 했다. 할머니 집으로 고모집으로 유랑을 다니느라 전혀 학습할 틈이 없었다. 앞가슴에 매단 분홍 리본에 흥분도 잠시 불려지지 않는 내 이름에 애면끌면 하다가 잘못 찾은 반이란 것을 뒤늦게 알기도 했다. 운동장에서 기다리던 나는 수줍게 선생님을 맞았다. 한글을 어설피 알아 선생님의 단독 지도를 받은 나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지금 같아서는 고맙다고 표시를 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왜 그리 어설펐는지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 팔을 끼시며 웃으신다. 분 냄새가 살짝 스치고 찰랑대는 치맛단으로 내 다리를 매 만진다. 고운 손등이 겨드랑의 위아래를 보드랍게 곁을 주니 꿈에서만 보던 엄마의 손길이다. 부끄러워 길가와 먼 논둑길을 바라본다. 개망초가 흔들리고 쑥으로 뒤덮인 논 사잇길을 건너 집으로 향했다.

대문을 여니 아버지는 화단 옆에 서 나오신다. 선생님은 아버지와 마주 앉으셨다. 환경조사서를 밥상에 놓고 손으로 집어가며 이야기를 하신다. 아버지는 되지도 않는 이북 사투리로 어름 거리셨다. <거정 애미나이를 부탁하갔수다...> 하며 안경 너머로 눈을 훔치셨다. 핀잔인지 애걸인지 난 찬물을 뒤집어쓴 것만 같았다. 마루 중앙에 버티고 있는 도시바 냉장고를 거칠게 열었다. 콜라를 꺼내기 위해서다. 어젯밤에 아버지가 선생님 드린다고 사 오셨다.

영숙이는 고운 찬 압통에 양과자와 피엑스에서 받아둔 커피를 선생님께 대접했다고 젠체를 했다. 영숙이 엄마의 고운 한복과 뒤 꼭지를 한 없이 올린 머리가 보인다. 월남 가서 사온 전축으로 휘감은 마루 위에 계신 선생님을 본다.

냉장고 문을 도로 닫고 얼굴이 달아오른 나는 끝내는 마당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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