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골목 한 귀퉁이 담장입니다. 어수선함을 사이에 두고 고요가 숨시는 곳, 며느리가 들어올 것만 같아 내다보다가 한 숨을 담벼락에 놓습니다.
당신이 황망히 떠나고 당신의 빈집을 찾았습니다. 당신은 없었습니다. 가는 눈의 표정도 없고 벽에 붙은 달력은 아직도 3월입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당신의 냄새도 없었습니다. 아껴두었던 깻잎절임도 신건지 지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김장준비를 월동준비를 하고 있네요.
마루에 둥그런 정구공을 쪼갠 발싸개를 끼워둔 나무의자에 앉았습니다. 이 맘 때엔 노란 참외를 손에 드셨지요. 얼굴빛이 덩달아 노랗게 물들고 "고맙구나 어서 같이 먹자" 하셨습니다.
자식 집에 오는데 무슨 가방이 이렇게나 뚱뚱한가요? 허접하고 낡은 속옷들 꿰매진 열쇠 꾸러미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 정말로 꼬깃하게도 정리해 놓으셨네요. 두고 온 미련이 보입니다. 당신의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앞 섭 자락 가득한 외로움일랑 모두 두고 오세요. 당신의 눈가의 번진 외로움은 닦고 말갛게 세수를 합시다.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제 밥상을 받아 주세요. 당신의 집은 그리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