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운동

by 여비

십여 년을 넘게 살던 집을 뒤로하고 목동의 한 연립주택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말만 연립이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나란하게 붙은 현관문은 열고 닫고 할 뭐도 없이 옹색해 짜증이나 10평짜리라도 좋으니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졸랐다. 남편은 아무 대꾸가 없다.

받쳐준 가게터가 있기를 하나 모아둔 종잣돈이 넉넉하여 행색 좋은 사모님 소리를 듣는 것은 꿈에라도 생각 안 했다. 이삿짐 쌓다가 망구 되겠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을라치면 단칸방에 넷, 혹은 다섯도 살았는데 뭘.. 했다. 남편은 말수가 적다. 묻는 말에 대답은커녕 무시하는듯한 뻣뻣한 표정이다. 딸애를 학원 보내는 것도 중도금 상환 날짜가 다가와도 아무런 얘기가 없다. 조금이라도 생활에 보탬이 돼보려 은행 청소원으로 일손을 놀리고 한시 반시 몸을 쉬지 않고 돌아쳤다.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 무표정에 목석처럼 되어 커다란 눈이 반쯤 작아져 버렸다. 아무 상관없는 일에 나서기도 하고 뜬금없이 화를 내고 급기야는 친구와 주먹다짐도 했다. 이런 괴이한 행동과 이해 못 할 상황들은 나를 심한 자괴감 들게 했고 마침내 남편과는 침묵의 벽이 생겼다. 더구나 불쑥 찾아오는 시동생은 나를 우울한 얼굴빛으로 덧칠하고 한숨짓게 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 그랬나 보다. 남편은 먼동이 트는 이른 아침에 운동을 나갔다. 몇 날이 되도록 아무 일 없이 속절없이 무너져 침묵의 강이 되었다. 한 공간이 휑하게 뚫려있고 아무 사이도 아닌 나처럼 무덤덤히 지냈다. 할 수만 있다면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 밖으로 나가보지만 마땅히 갈 곳도 없다.

할 일이 없는 남편은 컴퓨터를 붙잡고 눌러앉았다. 괴적스러운 얼굴로 한숨을 쉰다. 구직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도 퉁명하게 끊고 씩씩거리기만 한다. 내일도 내일모레도 아침운동을 나간다. 어스름 새벽 공기를 뚫고서 간다.

컴퓨터 책상에 끄적여 놓은 낙서엔 "나의 천사여, 사랑하는 천사여 너의 생에 환한 기쁨이 되고 싶다"라고 쓰여 있었다.

달 여후에 남편은 취직을 했다. 하던 일이 아닌 전혀 생소한 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하며 쓸쓸히 웃는다. 내가 거창한 양옥집에 홈드레스를 입고 오렌지 물빛의 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는 영자를 상상했나?... 아니면 오케스트라 단원의 세레나데 독주곡을 듣길 원했던가?.. 단지 그저 아내라는 보통, 평범의 자리였는데...

속울음을 삼키며 딸애 운동복을 쥐어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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