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

by 여비

집엔 나 혼자다. 사람 한 명 그리고 강아지 코코 한 마리...

짝꿍이 없는 모처럼의 휴일 생각만 해도 신이 난다. 머리에 스치는 생각 하나, 그래 오늘은 멋들어지게 한 작품 쓰는 거야!!

욕심만 앞서 머리만 어수선하다. 어릴 때 나의 꿈 '우주 비행사' '의사' '피아노 선생님' 둥둥 떠다니듯이 흐지부지 마땅치 않은 못난 내가 창피하기까지 하다. 마음속에 똬리 틀고 앉은 그, 대충 살아... 아 아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소설책 낭독하기" 요걸 하자! 그래... 엄마의 말뚝 2를 손에 펴고 심도 있게 낭독했다.

그때에 친구가 권하는 앵두주를 고, 루비처럼 고운 빛으로 투명한 앵두주를 맛보는 혀의 발림과 찌르르 타고 내려오는 모주의 기분을 한껏 누렸다.

나는 쏘맥을 한두 잔 즐긴다. 안주보다는 술에 목 넘김을 좋아해 취하려 빨리 마신다. 술맛이 달아 취기도 머리 위에 풍선이 달린다. 기분이 고조되고 한 톤 올린 말수에 매듭진 맘이 거침없이 풀어진다. 듣는 상대방의 사정 따윈 면책된 사장님 말 꼬랑지다. 아랑곳없이 터져 나오는 말에 홍수가 난다. 내 안에 갇힌 말들이 자유로워지고 소심해 쭈볏대는 쫄보가 사라진다. 술주정은 대물림인가 보다. 아버지의 술타령으로 다니던 학교도 쫓겨나고 아득한 정신을 놓아버린 날들이 그렇게나 미웠는데, 우두망찰 해진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그리 오래지 않았건만. 왜 왜

낭독은 뒷전이 되고 화자의 친구 집에 나는 눌러앉았다. 벽난로의 청솔가지가 타고 창밖에 여전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친구가 항아리병 채 내놓은 앵두술을 마신다. 앵두술은 달콤했다. 흐르는 강물처럼 무한의 시간들이 그렇게 갔다.

오르락내리락하는 파도가 되어 주정의 향기로움으로 어린 시절로 달려가고 맘 풀어진 고름을 추어맸다.

뒤죽박죽 속 안에 나앉은 내 꼴이 우스워 한 참을 실실 댔다. 술주정의 사랑이 넘실대는 혼자만의 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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