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가 집주인이 되었다

by 여비

손전화가 울었다. 고무장갑을 허둥지둥 벗고 전화를 받았다.

"형님! 고마워요. 이제 산자락이 보이고 저기 노적봉도 하얀 얼굴로 인사하고요.

정릉천 걸으며 ㅇㅇ아빠하고 웃으며 얘기도 하고요. 방이 세 칸에 화장실도 두 개나 있고요..". 높이 상기된 음성을 뒤로하고 손에 든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주택담보대출과 생애 첫 집 찬스까지 사용하고 드디어 내 집 장만을 했다. 전세탈출부터 한 달여 동안 어머님 집에 거처를 옮기고 고공의 숫자를 맞추고 집이 빠지지 않아 대출로 막고 그렇게 아파트 열쇠를 거머 줬다.

평생의 산꼭대기 허름한 계단이 하늘까지 뻗은 그곳에서만 살기를 20여 년이다.

부모님 도움 없이 열심히 저축하고 허리띠 졸라매고 턱 높은 은행을 간신히 넘어 고층아파트 32평을 배 깔고 누웠으니 얼마나 좋겠나...

아카시아꽃 향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학교 벤치를 끼고 쪼그려 앉아 땅따먹기를 했다. 치마폭에 뜯어온 토끼풀이 해걸음에 지쳐 시들고 지지배배 시시덕 대는 소리에 "니 땅이냐? 내 땅이지." 하며 우악스럽게 활석으로 땅 금을 훼방 치는 호 뱅이 반편, 떠돌이가 지나갔다.

비렁뱅이지만 거저 얻어먹으려는 비렁뱅이는 아니었다. 거적때기 차림에 헙수룩해도 셈 하나는 정직한 거지다. 그때도 땅따먹기 놀이는 힘겨운 머리싸움에 악다구니를 해대고 상대방보다 넓은 공간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콧물을 훌쩍대며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담벼락 위에 핀 해바라기 꽃이었다. 유년엔 물질이 앞선 놀이가 아니었대도 내겐 한 참을 돌아 끝도 없이 걸어가야만 보이는 버스종점 앞이었다. 그곳에 땀내 젖은 고무신을 벗어 흙, 모래를 털고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드문 드문 보이는 처녑 속 같은 허접한 동네엔 오두막을 이고 루핑이 벗어진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도 기와를 얻은 집에 고명딸이었다. 웃칸을 돌아 수도 간엔 양은 대야가 앉아 땀내 젖은 내 고무신을 기다린다. 엎드려 등목을 하는 아버지가 보이고 댓돌 너머 세워둔 장대위 걸린 수건을 채고 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본다. 한 칸 두 칸 계단을 수 없이 오르내린 하늘 꼭대기 그 집, 어머니가 셋집을 끼고 울 부부 주택부금 깨서 넣고 동서하고 함께 살던 집..

모두 지나버린 내 유년시절 그리고 시집 살던 그곳에 감색 지붕이 아른댄다. 옥상 위에 손바닥만 한 텃밭에 오이, 깻잎, 상추가 춤을 추며 웃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