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즐겨야 하는데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공항에서 남편은 나와 아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모양이다. 안색이 안 좋았다. 좋은 말 하시는 분이 아니란 걸 알기에 굳이 묻지 않았다.
남편이 입을 뗐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하나? 잘 다녀오란 말은 바라지도 않는데 참 이래저래 찜찜하게 하네..."
"......"
"나 나간 사이에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쩌냐고 하네."
내가 남편의 외할머니를 염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내가 뭐 염두한 것이 할머니뿐이겠는가... 양가 부모님, 양가 할머님들, 가족들, 윗 집으로 인해 물이 샜던 집, 방전될 가능성이 있는 차까지...
남편이랑 결혼하고부터 나의 걱정거리는 더 많이 늘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단이 필요했다. 내가 모든 것을 끌고 나갈 수도 없는 것이고 신이 할만한 일들을 내가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의 외할머니는 내가 결혼했을 때도 혼자 살고 계셨고 어머님 말씀으로는 고집이 엄청나고 아직도 잔소리가 많은 분이시다. 물론 그 고집과 잔소리를 어머님이 고스란히 물려받으셨기에 어떤 분이신지 감은 오지만 남편은 한없이 따뜻했던 외할머니로 기억하고 있기에 나도 잘해드리려고 했다.
시간이 흘러 할머님은 100세를 넘기셨고 여전히 혼자 계시지만 여기저기 많이 아프시다. 결론은 그런 외할머님 때문에 어머님이 신경 쓸 것이 많아 힘드신 것이고 그 와중에 할머니 돌아가시면 어떡하냐고 말씀하셨나 보다.
이번 여행은 더더군다나 나의 걱정거리는 차고도 넘쳤다. 여행이라곤 하지만 내 인생의 휴식기이자 또 다른 결정을 위해 '생각'이란 것이 필요해 가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 최초로 좀 길게 가는 여행이었다. 그렇기에 벌써 지천명의 나이가 된 남편, 사춘기 허세에 팔까지 다친 아이만을 신경 쓰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잠시 잘라내야만 했다. 다른 사람의 시계에 맞추기엔 나의 인생시간도 쉴 새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항상 고민했던 것들은 결국에 내 생각보단 별일 없었지만 이번에도 여행의 설렘보단 뭔가 찜찜함을 가지고 떠났다. 그리고 계획이란 걸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것이라 공항에서 첫 숙소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출발했었다.
다행히 비행기 안은 만석이 아니라 쾌적한 시간을 보냈지만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의 짜증이 출발하기 전부터 지친 나의 마음을 더 다운시켰다.
그리고 뭔 허세가 들었는지 호텔타령만 하는 아이가 만 12세를 넘겨 대부분의 숙소가 성인으로 인정하다 보니 숙박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 최대한 줄이고자 고민한 결과 첫 숙소는 에어비앤비였다. 작은 차 한 대가 간신히 일방통행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골목에 있던 숙소는 다행히도 고양이가 있어 아이의 관심을 끌어주었다.
도시 이름만 알았을 뿐 숙소 주변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가서 가까운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물론 서비스차지가 좀 많이 나오는 것 같아 엄청 배고팠지만 내 음식은 좀 저렴한 것을 시켜 먹었다.
다행히도 나시고랭이 맛있다 흡족해하는 아이를 보면서
'그래!!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일들을 했는가!! 에라 모르겠다치고 일단 즐기자!!'라고 생각하니 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괜스레 배도 불러왔다.
그렇게 발리에서의 첫 밤을 맞이했다.
큰 침대가 1층에 1개, 위태로운 계단을 오르면 위에 큰 침대 1개가 더 있었는데 다 컸다고 허세 부리는 아이까지 붙어 위에서 셋이 끼여 같이 자고 있었다.
아직도 캄캄한 밤이었는데 양쪽에서 엉덩이로 밀어붙여 가운데서 숨쉬기조차 힘들었기에 잠시 몸을 일으킨 나는 안경을 벗은 상태임에도(눈이 엄청 나빠 안경 벗으면 거의 안 보인다) 침대 옆 바닥 쪽을 쳐다보고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뭐... 뭐야??? 어떻게 들어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