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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세히 Jan 07. 2021

해로운 것을 좋아해

내 몸을 망치는 것들을 끌어안고 산다.

해로운 것을 좋아한다.

내 몸에 나쁜 것들만 좋아한다.


냉수에 얼음을 넣어 벌컥벌컥 마신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빈 속에도, 자기 전에도.

출근 하자마자 얼음 가득 채운 커피를  없이 들이켜야 업무 모드가 시작된다. 그제서야 이불 속에 두고  정신을 되찾는다. 집중하기 시작하면 손톱을 물어뜯는다. 상영관에 들어가 영화를 보는 내내 물어뜯다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서야  끝에서 따가움이 느껴진다. 집에 돌아와 삐뚤빼뚤 물어 뜯은 손톱을 바짝 자른다. 손톱을 뜯는 버릇을 없애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이제 손톱 대신 입술을 뜯는 버릇을 얻어냈다. 겨울이라 건조하게 부르튼 입술을 한참 만지작거린다. 


밥을 먹고 누우면 잠이  온다. 오늘 저녁도 역시 배달 음식이다. 늦은 퇴근 탓에 야식이 되버린 저녁 식사. 칼로리 높은 배달 음식을 빠르게 해치우고 바로 침대에 눕는다. , 역시 잠이  온다. 다리를 꼬고 앉아 9시간 업무를 보고, 다리를 꼬고 앉아  새벽에 일기를 쓴다. 낮에 쓰는 글은 돈을 벌기 위해 쓰고, 새벽에 쓰는 글은 나를 위해 쓴다. 늦게 잠들수록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지만, 일어나기 힘든 아침엔 다시 차가운 커피에 얼음을 넣어 벌컥벌컥 마신다. 아침부터 해롭다.


해로운 것을 좋아한다.

내 몸을 망치는 것들을 끌어안고 산다.

그중에 제일 해로운 건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남들의 생각. 좋았던 시간들에 대한 생각. 좋을지 안 좋을지 현재로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생각. 놓쳤던 관계에 대한 생각. 빨리 놓지 못한 관계에 대한 생각. 생각. 생각. 생각.      


그 중

역시나 제일 해로운 건

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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