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고
#셰익스피어 #오셀로#인간의 막장 #치정의심 살해#사랑이란 #나라면
소설가이자 극작가, 영화감독으로까지 활동하고 있는 줄리아 카메론은 그의 글쓰기론에서 인간들의 가장 밑바닥을 볼 수 있는 타블로이드판을 읽으라고 권유했다. 그녀는 한 때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아내로 함께 집필활동까지 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고, 이후 이혼의 아픔으로 방황하긴 했지만 아티스트라는 정체성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선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혼란 속에서 자신을 인정하게 된 그녀는 스스로가 자유로운 존재로서 당당하게 글을 써야함을 강조하였고, 인간들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감정들을 처절하게 만나 보기를 권유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잘 알 수 있는 길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하나로 검정 피부의 무어인인 장군 오셀로가 고위관리의 딸인 고결한 데스데모나와 결혼하지만 이를 시기한 부하장수 이야고의 간계로 결국 아내를 죽이고 결국 스스로도 목숨을 버리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고는 충직한 부하인 카시오와 오셀로를 먼저 이간질하고
카시오와 아내 데스데모나 사이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으며 드는 감정은 극본이라기는 하나 극단적인 캐릭터들의 극한 상황이 주는 버거움이 컸다. 책을 읽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감정이 불쑥 불쑥 올라왔다. 모임을 해야한다는 의무가 있었기에 버티며 읽어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고전을 읽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오셀로가 이야고의 이간질로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급기야 목 졸라 죽이기까지 나는 계속 화가 올라왔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 사랑하기에 미워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사랑하기에 죽이기까지 한다는 것은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철저히 아내는 의심하고 이야고의 말만을 믿는 그의 태도는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오셀로가 사랑한 데스데모나는 성모님처럼 초월적이고 지고한 사랑을 보여주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심지어 오셀로의 의심으로 너를 죽이겠노라는 말에도 슬퍼하지만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인다. 또 남편에게 자신을 의탁하고 내맡기며 그의 판단을 의연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이야고로 인해 곤경에 처한 카시오를 위해 남편에게 간헌하는 공정함을 가지고 있다. 그로인해 더 의심을 받게 되었긴 했지만 말이다.
이야고는 철저히 악한 인물이었고 자신의 뜻대로 오셀로를 조정하며 많은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인물이다. 그는 오셀로에 대한 시기와 경멸의 마음이 발단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거짓과 이간질로 살인까지 조정하는 악의 화신이라 할 수 있다. 한데 이야기를 나눈 일원들에 의하면 이야고와 같은 인물이 주변에 많다고 한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않고 교묘하게 악의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조정하는 인물은 타인과 우리 자신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었다.
이런 극단적 인물들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점은 무엇일까. 고전을 읽는 이유는 결국 극단적으로 설정된 상황과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정수를 느끼고 인간의 악함과 고결함을 동시에 알게 해주지 않을까 한다.그것은 결국 나를 알게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줄리아 카메론이 타블로이드판을 보며 글쓰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노라 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막장을 볼 때 나의 극단도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오셀로라는 인물을 분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아프리카게의 이슬람인인 무어인이었다. 한때 이베리아를 차지했던 무어인이라면 유럽의 문화에 많이 동화되었다고는 하나 다른 민족이고 다른 종교를 배경으로 할 여지가 크다. 또 그는 황혼에 접어드는 나이였고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장군이었다. 이미 설정되어진 인물의 설명이 그에 대한 짐작을 가능케 한다.
오셀로는 전쟁 영웅이었기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외부의 시선에 의해서건 스스로가 느낀 감정이건 자신이 피부색과 출신이 다른 이방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자부심과 열등의식이 혼재 되어있는 감정선 안에서 불안한 정신세계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이야고의 간계는 스스로에게 있는 혼란과 나약함을 자극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평생 전장에서 살았던 무사로서의 기질은 사랑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맹목적인 사랑을 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데스데모나를 만나는 것도 막연한 환상이나 우상화의 모양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가 믿는 모양새로만 사랑이 전개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랑은 배신이며 죽음을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위험한 믿음이 있는 사랑 말이다.
사랑이 무엇이며 사랑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나하는 물음을 묻게 된다. 현대인인 나의 사랑관으로서는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것이고 희생하려는 마음이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그러니 데스데모나를 진실로 사랑한다면 믿고 기다려주고 설령 그녀가 배신을 하여도 깨어진 마음을 안고 뒤돌아서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바람이 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했을 때 오셀로도 그녀를 사랑하였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다만 자신의 기대와 다른 그녀의 치정까지는 수용할 수 없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래서 명예로운 죽음을 가하게 되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는 스스로도 목숨을 버리게 된다.
이야고라는 인물은 절대 악의 인물이지만 그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있었을 것이다. 자신보다 미천하다고 생각하는 무어인을 섬겨야 한다는 것과 그를 사랑하는 정숙한 데스데모나의 존재가 그의 비뚤어진 심사를 자극했을 것이다. 시기심과 질투도 있었을 것이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우위의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이유는 있겠지만 참으로 잔악한 인간의 이면을 엿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모임을 하며 나눈 이야기에 의하면 사실 주변에 이런 인물이 많다고 하니 극단적인 이야기라며 몸서리를 쳤던 오셀로의 등장인물들이 바로 주변과 내 안의 인물인 것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에 이르렀던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이 무르익기도 전에 오셀로는 이야고의 이간질로 아내를 의심하고 그녀의 말조차 믿지 않고 목을 조른다. 심지어 미리 목을 졸라 죽일 것을 이야고에게 통보한다. 끔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책 읽기의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린 안의 행운이 꽃을 피우기 전에 섣부른 판단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행운을 잃게 되는 일은 분명히 있어 왔다. 내 안에는 자신감이 넘치면서도 두려움을 가진 마음도 있고, 사랑한다 확신했다가도 금새 사랑을 의심하는 마음도 있으며, 다른 사람을 시기하여 우위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있다. 그 모든 이야기는 나와 별개의 세상이 아닌 내 안에 일어나는 이야기인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생각'이라는 모습으로 또는 누군가에게 전해지는 '감정'이라는 매개로 내 안의 인간은 다양한 모습을 격렬히 드러낸다. 그런 나의 아바타쯤 되는 인물들을 만나봤다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게 하는 고전읽기의 매력을 포기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모임의 마지막에 한 분이 중용의 길을 이야기 하셨다. 무엇에 치우치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중용을 선택한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가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식별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지만 이렇게 셰익스피어는 격정 치정 살해극을 자유롭게 써내려가고, 우리는 그것을 읽고 인간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정수로 다가가는 빛나는 시간이 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