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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상 Nov 04. 2021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를 읽고

#내면의 신을 찾아 #자아찾기 #삼라만상 안의 신

#동시성과 영원성 #사랑


자기 안의 신을 찾으려는 선한 영혼이 있었다.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훌륭한 성직자가 될 만한 거룩함을 지닌 아이였다. 그 아이 싯다르타는 지혜로운 현인들의 지식을 모두 받은 후에도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불안감에 흔들리는 자신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안의 근원적인 신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아버지 곁을 떠난다.


싯다르타는 친구인 고빈다와 함께 사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갔으며 극한 고행과 자기멸각의 노력을 계속한다. 자신을 비우고 초탈하여 마침내 마음의 평정심을 갖겠다는 지독한 구도의 시간을 갖게 된다. 하지만 깨달음은 잠시일 뿐 진정 안다는 것은 모든 존재 안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그는 사문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열반에 들었다는 고타마 싯다르타(부처)의 소문을 들은 싯다르타는 고빈다와 함께 그를 찾아가고 부처가 열반에 들었으며 그의 가르침을 따라 간다면 고귀한 진리의 길로 갈 것임을 직감한다. 하지만 그는 깨달음이란 스스로가 얻어야 하며 가르침으로 얻어진 해탈이 정작 자아를 키울 뿐이라는 생각으로 부처의 곁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자아의 의미를 알고 싶음에도 자신을 모두 해체하며 멸각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이제껏 가르침을 받았던 스승을 떠나 이제는 나에게서 배울 것이며 나에게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러자 주위의 모든 것들이 허상이며 멀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양성과 고유성으로 빛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본질은 사물의 배후가 아닌 사물들 속에, 삼라만상 속에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과거의 가치관과 규율을 벗어나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삶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선택할  있는 것이라는 자각을 하였을  싯다르타는 외롭고 홀로인 듯한 마음을 뼈져리게 느꼈을 것이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져야한다는 엄중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무나 정해진 답은 없다는 자유로움이 그를 생명의 고귀함에 오롯이 집중하게 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교리나 의무가 아닌  안의 신을 만나고 싶다는 열망에 끌려 자유로움을 선택한 시점이 있었다. 종교인이 아닌 신앙인이 되고자 마음먹었으며 정해진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는 죄책감 대신 신이 허락하신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소망의 마음을 먹었었다.


싯다르타는 이제껏 현상계라 치부했던 속세의 삶을 살며 창녀인 카밀라와 상인인 카와스와미를 통해 세상에 눈뜨게 된다. 그는 마법에 걸린듯 세상에 매혹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그는 세상 사람들의 삶은 단순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 만사를 쉽게 대한다. 그리고 차츰 자신이 본질이 아닌 유희에 불과한 일을 붙잡고 있다는 경고를 감지하게 된다. 그가 보기에는 인간들의 삶은 어린애와 같았고 생로병사의 고통에 휘둘리지만 사랑을 할 수 있는 신비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는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배우기 보다는 자기기만에 빠져 타락한 삶을 산다.


자기 자신에게서 배우겠다는 마음은 오만한 것이었을까. 스스로에게 인간적인 삶을 허하고 자아를 찾고 싶었던 싯다르타. 그는 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됨으로써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삶의 본질을 외면하였기에 붕괴되어간다. 어느날 카밀라가 아끼던 새가 죽는 꿈을 꾼 그는 그 새가 자신이며 자신이 선을 내동댕이치고 무가치한 일에 매달려 살아왔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된다. 카밀라와의 사랑, 부에 대한 집착 모두 세속의 고통일 뿐이며 윤회였다는 자각을 하며 자신의 정체성은 사문이자 순례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에 싯다르타는 과거와 결별하고 또다시 길을 떠난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수치심을 못이기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른 싯다르타. 그가 죽음을 선택하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는 기도의 시작과 끝에 읊조리던 옴(완전한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그는 홀연 생의 불멸성을 깨닫고 자기 안에서 신을 만나게 된다. 덧없는 것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 빈 손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아가 죽었음을 알게 되고, 역설적이게도 알 수 없는기쁨을 느낀다. 어린애와 같은 자기로 돌아온 그는 다시 시작해야 함을 절감하지만 본질에는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지금까지의 길이 걸어야만 하는 필연의 시간이었음을 깨닫고새로운 정진을 다짐한다.


싯다르타가 강가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았다. 싯다르타가 삶의 허무하고 무가치함을 깨닫게 되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시간들처럼 나에게도 욕망에 휘둘렸던 후회스러운 시간이 많았다. 또 아팠던 기억과 즐거웠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그 시간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것들은 무엇일까? 나의 어리석음을 절감했었고,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해야 함을 배웠으며, 신을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다. 형상으로 만나는 세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상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또 나의 정체성에 더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나에게도 과거는 참나를 찾기위한 필연의 시간인 것이다.


뱃사공 바주데바는 싯다르타에게 강의 말을 잘 듣는다면 강은 더이상 장애물이 되지 않고 모든 것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한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라고 말하며. 싯다르타는 점차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인간 각자의 강도 흐르며 각자가 부르는 노래는 옴(완성)이라는 하나의 소리로 합쳐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물이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하듯 우리 안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같이 담겨 있으며, 그렇기에 시간은 없고 오직 강에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도 알게된다. 싯다르타는 시간이 없다면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깨닫는다.


뱃사공을 하며 강에게서 배움을 얻으며 늙어가는 그에게 연인이었던 카밀라와 자신의 아들이 나타난다. 뱀에 물린 카밀라가 죽어가는 순간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며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가졌음을 느낀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늙고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카밀라 앞에서 그는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알게 되는 싯다르타와는 달리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아들을 통해 그는 쓰라림과 고통을 받는다. 결국 아들의 인생을 인정하고 그를 떠나보낸 후 싯다르타는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되며 새로운 인간이 된다. 어린애와 같은 인간이라 여겼던 세상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기꺼이 그들과 같은 삶을 살고자 하게 된다.


 다시 만난 친구 고빈다와의 대화에서 싯다르타는 자신이 지혜를 얻기위해 자기 안으로, 세상 안으로, 고통 안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으며 그 깨달음은 누가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닌 오롯히 부딪혀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또 온전한 나의 존재를 알기 위하여,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죄와 욕심과 허영이 필요하였음을 말한다.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사랑하게 된 그를 향해 고빈다는 깊이 고개숙여 절을 한다.


평생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구도의 삶을 산 고빈다는 삶에 뛰어들어 자신을 던진 싯다르타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삶에서 부처님에게서 보았던 경외감을 느낀 것이다. 싯다르타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인간이 신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운명과 선택 모두를 온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 온전한 받아들임의 끝에서 만났던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는 사랑이 아니었을까. 싯다르타의 신을 향한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여정이 뜨겁게 가슴을 적시며 감동을 주었다. 나도 그와 닮은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들에 휘둘리고, 아이들에게 집착하고, 희생을 선택하기도 하며, 욕망으로 후회할 일을 반복하는 삶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사랑하려 애쓰고, 약하지만 내 안에서 신을 찾으려하고 있다. 나의 인생 여정의 끝에서 나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끌어안을 수 있다면 행복하게 기꺼운 작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이다.


헤르만 헤세는 동서양의 사상과 종교를 넘나들며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였다. 그 노력의 결실이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 완결되어진다는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인간적인 우리의 삶이 수행이며 사랑을 향해 가고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주인공이 부처의 이름인 고타마 싯다르타와 닮은 이름인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그가 또다른 부처라는 표현이 아닐까. 싯다르타의 인생 여정에 따뜻한 위로를 받으며 미소와 함께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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