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부루퉁한 스핑키>

윌리엄 스타이크 글 그림

by 신윤상

부루퉁한스핑키#지켜보기# 기다리기# 충분히 화내기# 자기수용#


<부루퉁한 스핑키>는 예전에 좋아했던 그림책이었다. 나도 좋아했지만 첫째 아이가 야단이라도 맞은 날엔 유독 그 책을 들여다 보곤 했다는 게 기억났다. 10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읽게 되니 그 책은 나에게 다른 감정을 가져다 준다.


감정의 흐름을 주목하며 책을 읽어서인지, 새삼 가족들 모두의 감정의 결을 잘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가장 깊이 느껴진 감정은 가족들의 기다림과 지켜봄의 마음이 주는 평화로움이었다. 스핑키가 화가 나서 입을 다물고 모두와 교류하려 하지 않은 때에 각자의 가족은 스핑키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누나가 달래기도 하고, 형은 따져보기도 하고, 아빠는 그런 모습이 철없는 어린애 같다며 훈계를 하긴 했지만 스스로가 풀리도록 지켜본다. 특히 할머니와 어머니는 인자한 미소로 스핑키에게 끊임없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건 스핑키를 온전한 인간으로 인정해주고 그 감정을 존중해주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최근 둘째 딸아이와 갈등이 생긴 나로서는 가족간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극성스런 엄마 노릇을 하고 싶어했다. 그것이 엄마로서 해야하는 최상의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심리적인 바탕이 무엇인지는 그후에 파악하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그 감정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다.


내가 초등 4학년이 되었을 때부터 친정엄마는 직장생활을 시작하셨다. 전업주부로 4남매를 키우셨던 엄마가 직장일을 하게 되니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청소를 하고 동생들을 돌보았다. 사실 밥을 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주로 동생들과 놀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그런데 내가 아이들을 낳고 육아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그것을 떨치고 바깥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나를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다. 육아와 가정일이 나에겐 너무 버거웠음에도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았다. 어릴적 나의 무의식에 새겨진 감정들이 의외로 아이들을 지켜야한다는 강박으로 발현되고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던 것도 같다. 지나친 사랑을 쏟았고, 그만큼 아이들에게 많은 간섭을 하기도 했고 지쳐서 화를 내기도 했다.


이젠 성인 된 아이들을 놓아준다 생각하면서도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 21세기 아이들을 20세기의 교육방식으로 여전히 붙잡고 있었던 것일까. 둘째 아이가 의욕없이 사는 모습에 결단하며 살라고 강요했다. 힘든 것이 있으면 함께 의논하자고 화를 내었다. 그것마저 이젠 그 아이의 몫이 된 것을 모르고 우리는 가족이니 함께 나누자고 강요를 했다. 학교를 다니는 첫째는 놀아도 공부해도 걱정이 안되면서, 대학에 다 떨어지고 갈 길이 먼 둘째 아이는 무엇을 해도 걱정스러웠던 건 왜 일까? 아이의 말마따나 자신은 나름 생각도 하고 할 일도 하고 있다는데 왜 그리 불안해 했을까?


스핑키의 엄마는 '너처럼 예쁜 애가 왜 화가 났을까?'하고 위로해 준다. 자신의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고 아름답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스핑키의 엄마에게서 아이들에게 지나친 사랑을 쏟았던 과거의 나도, 많은 간섭을 서슴치 않는 지금의 나도 모두 부끄러워진다. 두 딸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그저 지켜보는 부모가 훨씬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아이들을 나의 분신 쯤으로 생각했다치면 이젠 거리를 갖는 관계로 가는 것이 더 아름다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미 멀리 떠나가고 있는데 나만 그 아이들을 잡으려 하고 있었나 보다. 과거를 반성과 슬픔과 함께 떠나보내며 이젠 내가 더 자유로움에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눈물 속에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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