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정 글/모래알 출판사
그래봤자 개구리# 나는 개구리다# 나 찾기# 나로 살기#
파란 개구리가 되기까지 개구리알로서의 시간은 끝을 알 수 없는 듯했다.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 채 물 위를 떠다니면서 말이다. 개구리알의 신세란 그저 시간이 흘러 내가 다른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자신에 대해서 의심하면서 또 막연히 희망하면서 말이다. 그 시절의 개구리알은 옆에 있는 꽃이 예쁜 줄도 모르고 지나던 물고기가 동료 알을 잡아삼키는 것도 모르는 무지몽매의 존재였다.
앞날을 짐작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시간들 속을 헤매였던 시절들이 떠오른다.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하는 상황에 보냈던 청소년 시기. 나는 세상이 암흑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믿을 만한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나에게 인생을 이리 살면 좋지 않겠냐며 충고해주는 사람은 없었고 나는 부모의 실패한 인생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리고 중년에 찾아온 혼돈의 경험. 남편만을 의지해 속편히 살고 싶어했던 나에게 남편의 실직과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시간은 어찌 살아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두려운 시간이었다. 어쩌면 청년기에 겪었던 혼돈과 두려움의 경험에 답을 내지 못했기에 그 물음이 다시 나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연의 순리였을까? 아니면 신의 자비로운 손길이였을까? 파란 개구리알은 시간을 따라 모습이 바뀌어 물 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게 된다. '그래 지금이야' 하는 외침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이 개구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뛸 수 있다는 것,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파란 개구리로서는 환희의 순간이고 희망을 만끽하는 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다음 순간 파란 개구리의 신세는 동료 개구리들이 뱀의 입으로 들어가고, 새의 부리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며 '그래봤자 개구리'라는 조롱을 듣는 듯 하다. 개구리가 되어서도 나의 신세는 이런 것이란 말인가하는 개구리의 망연자실한 한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나도 그랬다. 부모님을 떠나 취업을 했을 때 이젠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희망이 있었다. 남편이 다시 사업을 벌릴 때만 해도 모든 일은 나를 위한 순탄한 축복의 시나리오를 써 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세상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 두 눈을 껌뻑거리며 앉아있던 개구리의 모습은 실존적인 한계앞에 놓여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어둠 속 개구리의 모습처럼 나의 처절한 성찰의 시간은 필연적이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파란 개구리는 펄쩍 튀어 오른다. 그리고 '그래, 나 개구리다!'하고 외친다. 파란 개구리가 자신있게 뛸 수 있게 된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그래봤자 개구리인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에 대한 뼈아픈 자각,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는 용기가 그를 뛰어 오르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개구리는 자신의 한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로 마음 먹은것처럼 보였다. 그래봤자 개구리겠지만 개굴 개굴 개굴 울어대며 사랑을 하고 개구리알을 잉태하는 그런 삶 말이다.
외부 환경과 내 한계 안에서 절망했던 시간 속에서 나를 일으킬 수 있었던 힘은 있는 그대로의 약한 나를 인정하고 다독여주는 마음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해주어야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그 마음을 확장할 때 주변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어둠 속에서 눈을 깜빡이며 앉아있던 개구리의 모습은 쿵하고 내 마음을 내리쳤다. 가슴이 아프고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개구리는 일어났다. 나도 그렇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그래, 나는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