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나의 집>

다비드 칼리 글,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바람숲 아이 출판사

by 신윤상

나의집# 나의집은 어디에# 나의집은많다# 나의집은여기

시인 이준관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에서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는 꽃밭이 내집이었고, 강아지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마당이 내 집이었고,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때는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고,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는 파란 하늘이 내 집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내 집이 아주 많았노라고. 나를 키워준 집은 차암 많았노라고.


이야기의 주인공도 바닷가의 작은 집에서 파리의 예술적인 다락방으로, 미국 대도시의 고층빌딩으로, 호화로운 언덕 위의 빌라로, 호젓한 작은 섬으로 계속 옮겨 다닌다. 그 후에도 세계 곳곳을 2년간 떠돌아다닌다. 그가 각 집을 선택하는 데는 매번 이유가 있었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최고의 선택을 한 것이었다. 조금은 비현실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살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그가 부럽기도 하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만일 그런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데 주인공의 마지막 발걸음은 처음 출발했던 바닷가 작은집으로 향한다. 그때 주인공의 마지막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무언가 새로운 바람과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런 것들에 의미를 갖지않고 '마음의 집'을 찾아간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득 들었던 생각이긴 하지만 왜 처음 출발했던 바닷가 작은 집이 그에게 마음의 집이 되었을까? 어쩌면 어릴 적 살았던 고향과 같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집'이 나에게 무슨 생각이 들게 하는지 조심스레 들여다 본다. 나의 무의식 속 '나의 집'은 아빠가 사업이 망하기 전, 가족이 함께 모여 풍금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여름방학이면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노을을 보며 돌아오던 곳이었다. 그 집을 잃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은 상실의 의미였던 것 같다. 상실이 큰 만큼 소유하려는 용기를 잃었던 것 같다. 집을 사려 돈을 모아야 한다느니, 예쁜 집을 가지고 싶다느니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건 욕심 낼 수 없는 먼 세상 이야기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저 몸을 누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족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건 소박한 바람이라기 보다는 패배적인 생각의 반영이었다는 것을 이젠 알 것 같다.


내 마음 속 나의 집에 대한 원형은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늘 안정되고 싶다는 마음과 어떤 욕구를 채우기위한 수단으로 집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참된 집은 소유와 집착의 건축물이 아닌 가족이 머물 수 있는 고마운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가족들이 서로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안고 모여들 수 있는 곳, 서로를 위하고 격려해주는 곳이라면 그 곳이 어디에 있든 나의 집일 것이다. 주인공은 마지막 바닷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여기가 진짜 나의 집일까? 그건 나도 모르지.'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게도 집이 머물고 싶은 고마운 곳이라면, 그가 다시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태주 시인은 <집>이라는 시에서 '얼마나 떠나기 싫었던가/ 얼마나 돌아오고 싶었던가/ 낡은 옷과 낡은 신발이 기다라는 곳/ 여기, 바로 여기.'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 나와 함께 해주는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내며, 이제 '나의 집'은 상처가 아닌 감사한 곳으로 다시 정의를 내려본다. 집은 고맙고 나의 집은 많다.

keyword
이전 06화그림책<그래봤자 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