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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긍 Oct 31. 2020

가구 하나를 디자인하다.

- 목공 우 팀장님께 제작 의뢰.

느닷없는 가구 제작


몸을 쓰시는 분들 옆에 있으려니, 나도 몸이 근질근질. 망치도 들어보고 싶고, 흙손을 들고 미장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일찍 나와서 땀 흘리는 분들을 보니, 삶의 에너지가 느껴져서 그랬을까? 하루를 보낸 만큼의 진척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옆에 있으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날 수밖에 없었다. 전기 배선을 몇 개로 나누는 일은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마음만 이렇다는 이야기. 전선을 잘 못 만지다가는 감전된다는 정도는 나도 안다.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무’를 다루는 목공의 우팀장께 물어보았다. '가구도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능하다는 답변. 와!!! 재밌는 건수가 생겼다. 신나고 마음이 분주해졌다.     


이사하면서 가구를 새로 살 생각은 없었다. 큰 방과 작은 방에 붙박이 가구를 만들어 수납을 최대한 확보하고, 나머지는 이전 집에서 가져와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다. ‘뭘 만들지?’ 생각하다가 TV장으로 결정. 그 전 집에서 TV장으로 쓰던 작은 책꽂이는 폐기해도 될 만큼 우리집에 오래 머물렀고, 보기에도 낡았기에 결정에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원하는 디자인과 재질만 결정하면 된다.     


드디어 우리 집에 자작나무 가구가 들어온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든 가구나 벽체들은 항상 내 눈길을 끌었었다. 연한 나무 빛의 평면에 층층이 쌓인 단면이 드러나는 자작나무 가구들은 깔끔하게 디자인되어 공간에 여백을 주면서도 쓸모를 다하는 모습으로 기억됐다. 만약에 우리 집에 무엇인가 가구를 만든다면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자작나무 합판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다음은 디자인. 텔레비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상판을 지나치게 크게 할 필요는 없었다. 높이는 소파에 앉아서 보기 좋은 정도면 됐는데, 전에 책꽂이를 놓고 썼을 때 적당했기 때문에 그대로 맞추면 됐다. 수납은 두 칸으로 해서 텔레비전 셋탑박스를 놓게 하고, 아래 부분은 답답할 수 있으니까 비워서 벽이 보이게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는 복잡한 고민 끝에, 원하는 것을 최대한 넣어서 디자인한 것을 드렸다. 아주 단순한 그림이었다.


목공 마지막 날에 만나게 된 실물은 깔끔 그 자체. 색이 뽀얗고 단순한 것이 딱 마음에 들었다. 전선을 위한 타공은 아래쪽으로 옮겨서 뚫었다. 우 팀장님은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샌딩 3회, 바니쉬 3회를 하면 완성이었다!         


남은 공사 기간 동안, 큰 방, 베란다, 거실을 오가면서 TV장은 자리했고, 틈날 때마다 샌딩작업과 바니쉬 칠하는 작업을 했다.                            


이사한 후에 거실에 TV장이 제자리를 잡았다. 셋탑박스의 높이를 측정하여 설계했기 때문에 높이가 딱 맞았다. 콘센트를 연결한 멀티탭은 뒤로 빼고, 갈 곳을 잃었던 작은 액자들을 쭉 전시했다.  액자들도, 셋탑박스도, TV도 제자리를 잡았다.      

내 손이 닿은 가구 하나가 주는 충만함은 생각보다 컸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아름답고 멋진 다른 TV장도 많지만 집의 분위기와 사는 이를 잘 담아낸 가구로는  이게 최고다.      




자작나무 합판은 가구제작에 필요한 것보다 큰 것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자투리가 남을 수밖에 없다. 선반이나 작은 다른 가구를 의뢰하면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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