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는 남자

생각해 보면 내가 우리 시어머니와 선을 긋기 시작한 계기가 됐던 게 '김장'이다.

95년 4월에 결혼해서 95년 11월 말, 우리 시댁의 김장은 밭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이파리 하나라도 달고 있으면 뽑아서 김장 김치가 되는 거였다. 그러니 시골 텃밭 놀리면 큰 일어나는 줄 알고 알뜰하게도 심어 놓은 가을배추는 풍년이었고 도시에서처럼 정해놓고 몇 포기를 사서 하는 상식선에서의 김장이 아니라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배추는 모조리 담가버리는 무차별 김장이었던 것이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김장하는 날이 언제인 줄도 모르고 놀다 들어와 저녁 먹을 때 밥상에 겉절이가 있으면 엄마가 김장했나 보다 정도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 시댁의 김장은 화려하고 찬란한 동네 잔칫날 같았다.


꽃무늬 바지들을 차려입으시고 동네 아줌마들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시댁 대문으로 새벽부터 들이닥치는 모습은 비장했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손놀림에 양념이 발라지면서 양동이에 김장김치가 쌓여가고 그게 모두 통으로 들어가 각자의 집으로 배분되는 과정 자체가 남의 집 일일 때는 행위예술이나 우리 집 일이 될 때는 며느리들에게는 노동이고 첫 해에 질렸던 김장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


김장의 과정에 대해서 얼마나 무식했냐 하면 배추를 절여서 씻고 물을 빼는 과정도 몰랐으니 시댁의 김장 담그는 과정을 밭에서 뽑는 것부터 본 나에게는 정신적으로는 문화충격이었고 육체적으로는 노동의 강도에 나가떨어지는 과정이었다. 첫 해에는 아무것도 몰랐던 김장 무식자여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일찍 와야 된다고 해서 내 기준에는 일찍 갔는데 이게 일찍이냐며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혼내시던 어머니가 그때는 너무 싫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제 막 며느리를 들인 어머니가 나름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폼 잡느라고 그러신 것 같아 상황이 이해는 된다. (이해하는데 삼십 년 걸림)


삼십 년 전에는 토요일에도 출근했을 때라서 남편 없이 혼자서 갔는데 늦었다고 혼나가며 고춧가루보다 맵고 서럽던 어머니의 눈치를 봐 가며 동네 아줌마들 김장 수발을 들던 점심때, 내가 어머니와 1차 선긋기를 하게 만든 사건은 “고춧가루 값” 때문이었다.

같은 해에 결혼한 둘째 동서는 서울 산다는 이유로 내려오지 않았고 정말 바쁘던 점심 무렵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고춧가루값을 보내드린다” 고 한 것이다.

어머니가 환하게 웃으시면서 동네 아줌마들에게 “우리 둘째 며느리가 고춧가루 값 보낸다네. 5만 원이나” ”아이고, 형님, 좋겠네 “

늦게 왔다고 혼나, 눈치 봐가며 쉬지도 못하고 일하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의 환한 웃음과 우리 둘째 며느리라는 다정함이 뚝 떨어지는 어감과 고춧가루값이라는 처음 들어 보는 밉상 단어에 마음이 확 상해 버린 것이다.


나도 돈 오만 원 드리고 안 올 수 있다면 십만 원을 드리고라도 오고 싶지 않았던 김장 노동이라는 걸 결혼 첫 해 그렇게 배웠다. 실금이 빠지직 생기던 순간이었다.


두 번째 김장은 큰 아이를 낳고 돌 되기 전 겨울이었다. 김장 전 날 시댁에서 잤는데 전날 절여놓은 배추를 씻어야 한다며 어머니가 새벽에 나를 깨우셨다.

배추를 뽑아 소금에 절여놓은걸 새벽에 씻어서 물을 빼놔야 아줌마 부대가 아침에 와서 버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 9개월 아이도 있는데 설마 내가 차출되겠어, 이번에는 남편도 있는데… 했지만 어머니는 딱 나를 부르셨고 남편은 칭얼대는 큰애를 안고 들어갔고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쉬라 소리를 못 했다. 시댁 김장은 정해놓고 11월 말, 낮도 추운데 새벽은 더 추웠고 아직 서른도 안 됐던 때라 새벽에 일어나는 건 배추 씻는 것보다 더 싫었던 나이였다.


남편은 부모님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던 때였고 나는 배추 씻는 게 정말 싫었지만 “어머님 김치 좋아하는 아들이 씻어야지 저는 하기 싫어요 “ 소리를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스물여덟이었다.

동도 안 튼 새벽에 시아버지, 시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서 마당에 있던 수돗가에서 배추를 씻어서 차곡차곡 쌓아 올렸는데 워낙 포기수가 많고 속이 찼던 배추가 어느 정도 높이 즈음에서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피사의 사탑은 모양을 유지하고 명성을 얻었지만 배추탑은 쓰러져서 다시 씻어야 되는 번거로움만을 줬을 뿐이고 새벽 배추 씻기를 경험하고 나니 정말 김장이 무서워졌다.

일 년이 김장을 하고 나야 끝이 난다는 걸 결혼하고 알았다.


우리 땡땡이가 김치를 얼마나 좋아하는 데의 주인공, 남편 땡땡씨는 정말 김치를 좋아한다. 단 어머니가 틀린 것은 당신 김치를 좋아한다는 믿음이다.

남편 말이, 자기는 맛있는 김치를 좋아한다는 거다. 우리 엄마 김치도 잘 먹고 성당 아줌마에게 얻어 온 김치도 잘 먹는데 어머니는 아들이 당신 김치를 좋아한다는 믿음에서 아들을 이해하는 게 끝났고 김장은 포기 못 하는 중요한 행사이니, 그래서 결국 김장을 포기한 것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접니다. 어느 해, 눈치 안 보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 어머니 김치는 안 갖다 먹고 스스로 해서 먹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럴 수는 없다는 듯 황당해하셨지만 김장에 얽힌 내 마음의 한 같은걸 남편은 알고 있으니 당신하고 싶은 대로 해, 안 갖다 먹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하고 저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미안해하는 건, 어머니가 나를 깨워서 배추 씻자고 했을 때 자기가 나가서 씻는다 소리 못 했다는 겁니다.

하여간 김장과 여러 가지가 쌓여서 결국은 저는 시댁 김장에서 프리패스권을 얻었고 대신 누군가는 도와줘야 돼서 남편이 해마다 김장봉사를 3일씩 하고 옵니다.

내일은 시댁 김장 스타트의 날, 3일 일정의 첫 날부터 내려가야되는 남편은 연가를 이틀 내고 가방을 쌌습니다.

김장하는 남자가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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