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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2. "어쩌다보니 어른"

이, 되어 버렸다.

어영부영:적극성이 없이 아무렇게나 어물어물 세월을 보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한국어 사전에 나와있는 부사 "어영부영"의 사전적 의미이다.


어영부영살다보니 어쩌다 어른이 돼버렸고, 어쩌다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기도 하지만

나보다 훨씬 더 나이드신 분들이 봤을 때는 부러운 나이일수도 있으니

지금을 열심히 멋지게 살자라고 다짐을 해보나

거울 앞에는 누가봐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은 내가 보일 뿐이다.


아니아니, 누님도 아닌 할 머 니


거울 속의 나는 나이를 앞서가는 흰머리로 이미 머리카락의 삼분의 이 정도는 흰 머리다.


감각이나, 패션이, 아니면 돈이 남들보다 앞서가는 게 아니라 흰머리가 탑클라쓰다


딱 작년 사월에 그만 둔 흰머리 염색은 일년이 지나고 나니 자리를 잡아, 어느 쪽은 적당한 검정머리와 섞여서

그레이가 되었고, 어느 부분은 영양가없이 푸석푸석해보이는 백발인 부분이 생겨났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드러난 부분은 임팩트가 강한 흰머리이다보니

그동안 버스에서 가방을 끌어당기며 빈자리에 강제로 앉히는 동료 할머니들(?)의 자리앉히기 테러도

당해봤고, 병원에서 할아버지가 "곱게 늙으셨다며" 날리는 작업성 멘트도 들어봤지만

그래도 다시 흰머리를 염색하겠다고 삼주에 한 번씩 다니던 염색방을 다니는 일은

이제 내 인생에 더는 없을 일이며 검정 머리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염색을 꾸준히 하고 살때는 나의 의지보다는 남을 의식해서 염색했던

전지적 타자(他者)시점이었다면 지금처럼 염색하지않고 흰머리를 갖기로 한 일은

전지적 주인공 시점쯤 된다고 본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머리카락 색이 흰색이건 검정이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내 머리 색깔로 나를 평가하려 드는 사람들은 내가 상대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마음의 근육도 생겼다.


오십 네 살에 전체가 백발처럼 희어져 버린 내 머리도 또래에 비해서는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팔십 살이 넘어서도 염색머리로 까만색을 유지하는 사람들보다는 내 머리카락색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염색을 그만 둔 후에 나타나는 반전의 효과들!


모발의 굵어짐과 모공의 빈 자리에 가만가만 올라오는 까만색 잔머리들이 기특해서라도

다시는 머리카락에 화학약품을 처발처발 하는 짓을 하지 못 할 것 같다.




우리나라의 미용 요금은 일본에 비해서 훨씬 싸기 때문에 염색을 하는 일도

삼주에 한 번씩 했어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었다.

물론 샵이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커트 한 번에 십만원짜리도 있지만 내가 주로 다녔던 염색방이나

우리 동네 미용실들은 커트 비용도 이만원이 넘지 않았기 때문에 미용실 다니는 일이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지만, 교토에서 지냈던 일년 동안은 미용실에 가는 일은 큰 맘 먹고 가야 되는 일중 하나였다.


비싼 동네에서 살고 있지도 않았지만, 미용실의 커트 비용이 2018년 당시에 3,000엔이었다.

수원 화서동에서 만오천원짜리 커트 비용을 내다가 두배가 오른 금액의 미용실 비용은 수직 상승의

물가였지만, 그렇다고 가위들고 집에서 자를수는 없는 일


어느날 빵집 앞에 있던 작은 미용실에 커트를 하러 갔더니 1인실 미용의자 한개만 있고, 예약제로

운영이 되고 있는 곳이었다.


우리 동네 미용실처럼 생각하고 갔던 곳에서 노트를 봐가며 빈 시간을 잡아주던 미용실 아줌마와

시간을 맞춰서 다시 한 번 방문하기!

그 처음이 어려웠지, 한 번 자르고 나니,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작은 미용실에서 예약 손님인 나한테만

집중해서 머리를 손봐주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으로 인생 커트를 만날 수 있었다.


화서동 커트 비용 만오천에 비해서 두배가 오른 3,000엔이라는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만큼

공을 들여서 머리카락을 다듬어 주고, 혼자서 교토에 와있는 한국 아줌마에게 개인적인 호기심보다는

순수한 친절을 보여주던 미용실 아줌마와는 베프가 되어서

혼자서 삿포로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에 선물을 드리기도 했었다.


그때가 한국으로 돌아오기 한 달쯤 전이라 마지막으로 들렀을 때였는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걸 아시고

미용실 아줌마도 나한테 선물을 주셨다.


그리고 동네 미용실을 다니면서 얻은 최고의 수확은 미용실 아줌마와 빵집 꼰대 스즈키상이

소학교 동창이란 걸 알게 된건데, 아줌마한테 스즈키상이 빵집 아줌마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꼰대짓을

한다고 일러바쳤더니, 스즈키가 소학교 때는 완전히 찌질이였다며 스즈키상의 과거를 폭로해준것이다.


일년 남짓 살면서, 나도 한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생기는 경험을 미용실 아줌마를 통해서 하게 됐다.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닌 일본 교토에서


다시 머리를 자르러 교토에 가고 싶어도 여권의 마지막 도장은 2019년 여름 후쿠오카를 마지막으로

잉크가 말라버렸다.




5월 5일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모두 어린이날이지만, 일본에서는 남자어린이들 위한 날이라는

개념이 더하고, 여자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3월 3일에 ひなまつり(히나마쯔리)라고 해서

집안에 ひな人形(にんぎょう) 히나닌교우를 장식하며, 여자 아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날로 축일을 삼고 있다.


사회적 통념상 남자어린이를 축하하는 어린이날과 여자어린이를 축하해주는 히나마쯔리의 경우처럼

일본은 어버이날도 통합해서 5월 8일로 하지 않고, 5월 둘째 일요일은 ははのひ 母の日(어머니의 날)

6월의 세번째 일요일은 ちちのひ 父の日(아버지의 날)로 정해서 각각 축하를 해주고 있다.


어렸을 때는 하루가 길더니

나이를 먹으니 일주일이 빠르고 한달은 더 빠르고 일년은 더 빨리 지나가

어느덧 어린이날은 내 날이 아닌 날이 되었고, 어버이날의 주인공이 되었다.


뒤돌아보니

벌써 이 나이라니,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었다는 게 꼭 병맛만은 아닌 걸

알것같다.


어영부영, 어쩌다 어른이 되었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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