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part2. 담양 vs 교토 아라시야마


담양에, 죽녹원에 온 것은 순전히 ㅇㅇ엄마 때문이었다.

이십칠 년 전에는 서로를 부를 때 주로 큰 애 이름을 붙여서 누구누구 엄마라고 불렀지만

서로 알아 온 시간이 쌓일수록 이름을 불러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이가 되었고

누구 엄마야 라고 부른 시간보다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게 더 오래된

그녀는 엊그제 이름 앞에 고 (故)를 붙이고 하늘나라로 갔다.


이십칠 년이 쌓인 인간관계다.

친정이 위도인 그 애 덕분에 김 철에 처음 따서 말린 맛있는 김을 얻어먹기도 했고

그 김을 말리기 위해서 섬에서는 애들 손이라도 빌려서 김발에 김을 말린다는 푸념도 덤으로 얻어 들었었다.


나랑 동갑이었지만, 섬이 고향인 그 애는 어쩌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지런하고 엽렵하지 않으면

안되었을, 나와는 다른 인간이었고

내가 아는 그 애는 한순간도 열심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떡집을 할 때는 떡에 진심이었고, 칼국수 집을 했을 때는 칼국수에 진심이었을 것이며

미술학원을 했을때도 진심, 시할머니까지 함께 살았던 시집살이에서도 진심

그녀가 살았던 삶 자체는 거짓인 적이 없었을, 내가 아는 그 애는 그런 여자였다.


그렇게 열심히 살 던 사람이 죽었다.


미친 거 아니냐고, 지금 장난하고 싶냐고, 똥 싸고 있다고 화를 내고 싶지만

장례식장에서 그 애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었고, 모두가 우는 걸로 봐서 진짜로 그 애는 죽었고

우리들은 살아서 그 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앞에서 절을 했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 애랑 나랑 만나서 서로의 시댁에 대해서 흉을 보기 시작하면

언제나 내가 백전백패였다.

내가 아무리 우리 시어머니 흉을 아무리 봐도, 시댁에서 함께 살았던 그 애한테는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결혼하자마자 시댁에 들어가 살았다는 것 부터가 복싱경기로 따지면 체급이 다른 게임이었다.


이월 말쯤 했던 통화에서

"항암 포기하려고 했다"는 말을 듣고 "똥 싸고 있네"라고 해줬었다.

누군가 시답지 않은 말을 하면 씩 웃으면서 "똥 싸고 있네" 했던 그 애의 말투를 그대로 돌려줬더니

기운 없이 웃던 ㅇㅇ 엄마, 그 녀


장례식장에서 분홍 장미를 사진 앞에 놓아주었고, 발인 날

그녀가 4로의 화로에 들어가는 걸 보고 나는 손을 가만히 흔들어주었다.


"잘 가, 잘 가"

남들이 주저앉아 통곡하면서 울 때, 나는 그 애의 이름을 부르면서 잘 가라고 인사했다.




발인에 간 걸 후회하진 않지만 앞으로 다시는 가족이 아니면 발인까지는 가지 않으려 한다.

산 사람들도 바쁘지만, 죽은 사람들도 몹시 바쁜 게 화장장이라는 걸 다시 한번 알았으니,

그리고 끊임없이 울부짖는 사람들 속에서 유골이 화장을 거쳐 수습되기까지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그걸, 수골(收骨)이라고 하는 것도 발인날 화장장에서 알았다)
살아있는 내 영혼도 수골되는 듯한 감정의 상태를 잠시 거쳤으므로

나를 위해 선을 긋기로 했다.


친구 같은 그 애가 죽었어도, 나는 살기 위해 실업급여를 신청했고 돌아와서는 떡볶이를 해 먹었고

피트니스 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운동을 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웃는 얼굴이 자꾸 떠올랐고,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으며 눈물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담양에 왔다.




왜는 없다.

교토에 있을 때 놀러 온 지인이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을 보고 와서는 담양 죽녹원보다 못하다고 한 게 생각나서 나도 한 번 직접 보고 싶었고, 대나무 숲 어디쯤에 슬픈 마음도 내려놓고 오고 싶어서

마침 실업자가 된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시간 낼 수 있을까 싶어 반나절을 들여서 담양으로 간 것이다.


교토 아라시야마도 대나무 숲이고 담양 죽녹원도 대나무 숲이지만

아라시야마는 헤이안 시대 때부터 귀족들의 별장지였던, 역사가 오래된 곳이기도 하고

일본에서 벚꽃과 단풍의 명소 100선에 드는 곳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언제나 바글바글한 곳이다.


죽녹원은 담양의 성인산에 인공으로 조림한 대나무 숲이기 때문에 교토의 아라시야마처럼 역사가 오래된 곳은

아니지만, 이미 충분히 대나무 숲이 되어 있었다.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


죽녹원 대나무 숲



담양의 이정표 앞에 "슬로 시티 담양"이라고 쓰여 있었다.

속도의 슬로가 아니라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잘 보호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 운동에서 나온 "슬로시티"지만 풀보다 빨리 자란다는 대나무의 성장 속도를 알고 나니

슬로시티의 슬로가 내가 아는 슬로는 아닐지라도 잠깐 웃음은 난다.


그래도 담양은 슬로시티가 맞는 것 같다.

죽녹원 대나무 숲이 아니래도 관방제림의 수령 백 살은 어디서 명함도 못 내밀 이백 살 넘은 나이 많은

나무들 하며 메타세콰이아 길의 단단히 다져진 흙과 쭉 뻗은 나무들을 보니

오래된 것들은 언제나 새 것을 이기는 법

처음 와 봤으나, 낯설지 않았다.


아라시야마는 언제나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대나무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교토에 있는 동안 세 번 가봤지만 언제나 대나무 잎들의 소리보다 사람 소리가 더 컸었다.


아홉 시에 문을 여는 죽녹원에 아홉 시에 표를 끊고 들어갔다.

대나무 숲에는 대나무 소리와 새소리만 있고 사람 소리는 없었다.

댓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또 언제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며 죽순에서 시작해서 허물을 벗고

나무로 되어가는 어린 대나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웠던 죽녹원 대나무 숲이었다.


2018년 7월 남편과 아들과 함께 갔던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에서는

즐거웠었고, 더웠었고, 들뜬 기분이었을테지만 오늘 다녀온 죽녹원 대나무 숲은 그렇지 않았다.


대나무 소리를 들으면서 내 마음을 그 나무들 사이, 어딘가에 내려놓고 왔다.


구들장도 뚫고 올라온다는 대나무 힘에 밀려 내 슬픔은 땅바닥으로 꺼져 버렸으면 한다.


그녀를 기억은 하 되, 슬퍼하지는 말 것이며, 기도는 하되 울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 애는 그걸 바라지 않을 테니


잘 가, 잘 가라

안녕

작가의 이전글 part2. 알,쓰잘데,신,잡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