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part2. 건축탐구 집

나는 지금 몇 번째의 집에서 살고 있는가


집의 사전적 의미

"사람이 들어가서 살거나 활동할 수 있도록 지은 건축물"


"건축탐구 집"은 EBS 방송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원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어져서 멋지게 지어진 집부터, 서울의 자투리 땅을 이용해서 블럭처럼 쌓아올린

협소주택, 제주도의 오래된 돌담 집까지 방송에는 많은 집들이 나오지만 집에도 개성이 있어서

많은 집이 나왔지만 같은 집은 없다.


토양의 성질에 따라 다른 색으로 피는 수국처럼 집의 색깔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색으로 피어난다.


나는 지금 몇 번째의 집에서 어떤 색깔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스물 일곱에 7급 공무원이 되어서 서른 하나에 결혼한 남편이 결혼 전에 분양받은

전주의 24평 새 아파트에 결혼하자마자 무혈입성해서 깃발을 꽂고 살았다.


남편의 재능은 돈을 쓰는 일보다는 모으는 쪽인것 같기는 해도 스물 일곱 젊은 청춘이 공무원 월급타서

부모 도움 없이 자기 힘만으로 집을 장만했다는것이 어찌 쉬운 일이었겠나

지금 우리집만 해도 스물 일곱짜리 취준생 아들이 있으니, 그 애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느 세월에 취직해서 월급모아, 부모 도움 하나 없이 집 장만을 하겠느냐고, 답이 딱 나오는 이야기다.

어렵다.


그런데 남편은 집이 있었으니 자랑할만 했었다.

수줍은듯이, 자랑스러운듯이, 이런 말을 꼭 해야하나 정도의 살짝 거만함으로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전주에 새 아파트가 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은 시험 잘 본 아이처럼 칭찬을 바랬을지도 모른다.

내돈내산인 새 아파트, 그것도 24평씩이나

만일 그때 내가 좀 더 철이 든 사람이었다면, 직장 생활의 노곤함을 아는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남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기뻐해주며, 나를 만나기 전 집 장만을 하기 위해 스물 일곱살짜리가 서른 살까지

애쓰며 살았던 시간에 대해서 경외심을 보여줬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슬프게도 1994년의 나는 철이 없었고, 집은 당연히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집은 아니었으나 태어난 집부터 자가였던 나에게, 한 번도 남의 집 살이는 없었기 때문에

집은 원래 자가라고 생각했었고

우리집에 세들어 사는 다른 가족을 본 적은 있어도, 우리 가족이 세들어 살았던 적은 없었으니

"전주에 새 아파트가 있다"는 남편의 수줍은 자랑에

"그래서요, 어쩌라고요" 정도의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어디서 나온 무례함이었으며, 철없음이었는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이제라도 그때의 집 장만을 끝낸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를 진심으로 전한다.

"당신이 마련해놓은 그 아파트 덕분에 남들보다 편하게 시작할 수 있었어, 고마워"


전주에서 시작 된 첫 집에서부터 지금 집은 열 네번째 집이고 나 혼자 일년 살았던 교토의 マンション(만숀)을 포함하면 나는 결혼 후 열 다섯번째 집까지 살아봤다.

발령지에 따라 이사를 다니면서 주로 관사에 살았고, 제주도 관사는 비행기 시간때문에 늦게 도착해서

밤에 소길리 관사에 들어갔었는데 불을 켜려고 했더니 집 안에서 반짝, 반짝 빛나는 것들이 있어서

여덟살, 네살 세살짜리 세 아이와 함께 가만히 서서 그것들을 지켜봤다.

"반딧불이다"

어둠속에서 우리 가족보다 먼저 입주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반딧불이를 더 보고 싶어서 아꼈다가

불을 켰던 곳, 물론 제주도 관사는 반딧불이만 있었던게 아니라 지네도 있었기 때문에

베란다 천정에서 지네가 툭 떨어졌을 때 내가 관사 전체에 불 난것 처럼 소리를 질러서

내 목소리의 데시벨을 관사에 널리 알린 곳이기도 했지만, 추억은 방울 방울 관사였다.


집에서도 살았고, 관사에서도 살았고 가족과 뚝 떨어져 나 혼자서만 살았던 교토의 집은

'집'이라기보다는 '방'이라고 해야 맞을 표현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혼자 살았던 교토의 방도 가끔 그리운 마음으로 생각이 난다.

2층에 세 가구가 있었지만 베란다가 딸린 앞 쪽의 두 집은 야칭이 비쌌고 뒷 편으로 있던 내 집은

언제나 어두워서 들어가면 불을 켜고, 늘 인색하게 들어오던 햇빛으로는 손수건 한장 온전히 말릴 수가 없었다.

세탁기가 없었기 때문에 빨래가 언제나 가장 힘든 집안 일이었다.

어쩌다 한 번 빨래를 모아서 근처에 있는 빨래방을 가면 한 시간 이상은 그냥 순삭이었기 때문에

돈보다 시간이 아쉬웠던 그 때, 빨래방에 가서 한 시간 이상 시간을 쓰는 일은

큰 맘먹고 가는 비장한 길이었다.

그때 가장 하고 싶었던 집안일이 세탁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연년생이었고 큰 애도 아직 어렸을 때는 세탁기를 두 대 두고 산 적도 있었다.

베란다의 건조대와 날개형 빨래 건조대로는 다 널 수가 없어서 남편이 스파이더맨 거미줄같은

나일론 빨래줄을 거실에 쳐줘서 아이들 빨래를 해서 입혔던 처절했던 육아 춘궁기 시절

빨래라면 지긋지긋했었는데

혼자지만, 세탁기없이 베란다없는 집에 살아보니 빨래를  해서 너는 일이

햇빛 냄새 나는 수건을 개는 일이 너무나 하고 싶은 집안일이었다.


일본 드라마중에 결혼을 앞둔 딸이 엄마에게 집안 일중에서 청소가 가장 싫다는 말을 하자

엄마가 조용히 한마디한다.

"지진이나 재해로 집을 잃은 여자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 줄 알아? 바로 청소야"

늘 하던 일이고, 일상일때는 알 수 없다.


상실을 겪고 나서야 비로서 그 일의 가치를 알게 된다.




토요일에 내린 비로 일본은 시즈오카현의 아타미시에 산사태가 나서 순식간에 집들이

휩쓸려서 토사에 내려가는 영상이 반복되서 보여졌다.

지진이나 산사태등 자연재해로 인한 이재민들이 많은 일본이다보니 집을 잃는 것도 순간이다.

2011년 동일본 지진때 집을 잃은 사람들은 아직도 자기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정부에서 마련해준

가설주택단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일본에서 집을 잃은 사람들은 집 뿐 아니라 생명까지도 함께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진이나 태풍 산사태 쓰나미같은 자연재해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일본에서 자연재해로

집을 잃었다는것은 그 집에서 살았던 사람도 함께 생명을 잃게 되는,

집은 곧 생명이 되는 것이다.


시즈오카현 아타미시의 산사태로 집이 쓸려가는 것을 영상으로 보는 것은 결국 그 안에 사람도 함께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루를 죽게 아팠었다.

장염인지, 급체인지 이만한 일로도 사람이 잘못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앓고 나니

하룻밤 편하게 쉴 수 있는 이 집이 더욱 고맙고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보게 된다.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세탁기와 옥상에 실컷 널 수 있는 빨래들

오늘을 사는 게 기적이라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부엌에 나 있는 작은 창을 보면서 하는 집안 일을 좋아한다.


부엌에 난 외벽 작은 창문을 통해 이웃집을 보면서 설겆이 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가꾸는 정신 사나운 작은 꽃밭에 피어 있는 꽃들을 꽃병에 꽂아놓고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서

부엌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와 성씨가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걸 좋아한다.

집안 일을 좋아하는 것 같다.


탱글탱글 줄기를 세우고 드디어 꽃을 피운 채송화


작은 꽃밭에 피어있는 채송화가 꽃을 피우는 것도 대견하다 인삿말을 건네면서 밖에 나가기도 한다.


남편은 꽃을 더 이상 심을 틈이 없다며 혀를 끌끌차는 나의 작은 정원에 꽃을 심어가면서

나는 얼마나 더 이집에서 살게 되고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몇 번째의 집까지 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빨래를 해서 널 수 있는 햇빛부자 옥상이 있는 이 집

채송화가 예쁘게 피어 있고 우리 딸이 서울대에 합격해서 내가 제주도 관사에서

지네가 나타났을 때처럼 소리를 질렀던 이 집


열 다섯번 째 지금 집이 그동안 살았던 그 어떤 집보다 좋다.

작가의 이전글 part2. 사람이 중허지, 뭣이중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