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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의 추억 2탄

어쩌면 시댁의 마지막 김장일 수도 있었던 올 해의 김장

  시댁의  마지막 김장이 될 수도 있는 올해 김장


김장을 끝내야, 비로소 일 년의 중요한 행사가 마침표를 찍고 한 해가 넘어가는 것 같다.

12월 31일 보신각 종이 땅 땅 땅 하고 쳐져야, 일 년이 가는 게 아니라 배추와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저것들에게 양념의 매운맛을 입혀 김치통 안으로 기어들어가게 해야 일 년이 지나가는 것이지

누군가 종을 쳤다고, 달력에서 넘길 장이 없다고 한 해가 가는 게 아니란 말이지.


배추들이 절여져서 평상에 깔려있고 고무통에 양념이 하루 전에 버무려져서 숙성된 상태에서

시댁에 도착했다는 것만 해도 성호경이 저절로 그어지는 감사한 일이다.


며느리들이 해결했던 일들이 몇 년 전부터는 아들의 일이 됐고, 남편은 연가를 내고 내려가서

밭에 있던 배추를 뽑아서 절이는 과정부터 시댁 김장 선봉에 섰다.

효도는 셀프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김장 담그기에 딱이었던 날

배추를 절여서 씻는 과정에 참여해 본 적이 있던 아주 오래 전의 쓰라린 기억에 비하면

이번 김장은 소꿉장난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하며 형님과 동서와 여유 있게 김장을 시작했으나

내 앞에 배추가 쌓여갈수록, 줄어드는 김칫속처럼 세 사람의 말 수도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십일 년 전의 삼백 포기건, 오늘처럼 백이십 포기건 김장은 김장이지 소꿉놀이가 아니라는 걸

오른손 손목에 파스를 기어이 한 장 붙이고야 알았다.


2013년, 12월 2일 ~ 7일까지 열렸던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 보호 정부 간
위원회에서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Kimjang :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를
유네스코 인류 무형 유산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김장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된 게 8년 전의 일이었다는데 그걸 일주일 전에 알게 되었다.

육이오가 터졌어도 동막골에서는 아무것도 몰랐듯,  나의 상식도 웰컴 투 동막골


한국의 주부들에게는 한 해를 넘기는 중요한 행사가 되고,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나처럼 이십육 년 전의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화의 근원이 되기도 한 김장이 유네스코 무형유산이라니요!


걸어서 십 분 거리쯤에 있는 수원 화성 행궁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줄 알았더니

시댁 김장이, 친정의 김장이, 동네 아줌마들의 김장이 밑줄 짝, 중요 표시 열개, 유네스코 무형 유산이라는 걸

알고 나니, 김장이 달리 보였다.


절에서 김장 담그는 걸 본 독일인과 인터뷰를 하는 걸 봤다.

"한 가지 음식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오랫동안 하는 거, 그게 신기해요"


시댁 김장도 동네 아줌마들이 달려들어해 주시던 시절이 있었다.

아줌마들은, 특히 시골 아줌마들은 잠이 없는지 김장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장갑을 무기처럼 한 손에 들고 나타나셨다.

아줌마 부대원들의 손은 신속하고 빠르게 절여진 배추에 양념을 입혔고

12시도 안된 시간에 동태 찌개와 잡채 겉절이와 수육이 차려진 수요 미식회 상차림 같은

점심 한 상을 드시고 달달한 믹스 커피 한 잔씩 드신 다음, 어머니가 나눠준 겉절이 봉투를 하나씩 들고

해산했다.

결혼 초에 봤던 김장의 풍경이다.


우리 어머니도 그때가 좋으셨을 거다.

김장 품앗이를 서로 해주고 다닐 때가


그런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 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이지, 이번 김장처럼 식구끼리 단출하게 버무리고 끝낸 건, 그냥 김치 겨울 김치를 많이 담근 정도 딱 그 수준이었다.



우리나라에 김장이 있다면, 일본에는 つけもの [漬物] 쯔케모노가 있다.

김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츠케모노는 김장처럼 겨울 한철에만 먹는 게 아니라 일 년 내내 먹는

절임식품이라는 거다.


소금에 절이거나, 된장에 박거나, 현미에서 채취한 쌀겨에 절이기도 하고 간장에 절이기도 하는 등 제철 채소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절여서 도시락에 넣어주거나, 아침에 된장국 (미소시루)와 함께 먹는 게 일반적인 일본인의 식사 상차림이다.


백화점이나 스- 파에 가면 쯔케모노 코너가 있어서 우리가 김치를 사다 먹는 것처럼

집에서 만들지 않고 사다 먹는 주부들이 많이 있다.


현미에서 채취한 쌀겨에 무를 절인 たくあん(타꾸앙)

술지게미로 절이는 ならづけ [奈良漬] 나라즈케 (울외장아찌)

식초에 절이는 스즈케(酢漬)-らっきょう 락교     

우리도 이미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일본의 츠케모노를 많이 먹고 있다.


군산에 가면 특히 지역 특산물로 ならづけ [奈良漬] 나라즈케를 팔기도 하는데

그걸 사 먹는 우리 엄마는 나라즈케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나 스키라고 부른다.

奈良(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니, 나나 스키가 아니고 나라즈케가 맞는 말이지만

우리 엄마한테 나라즈케라고 말하면 나나 스키가 맞는 말이지 무슨 소리냐고 하실 거다.


니시키 시장- 교토의 부엌


교토는 덥고 습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라 절임 음식인 츠케모노가 발달한 곳이다.

니시키 시장에 가면 츠케모노 파는 집이 많았었는데 학교랑 가까워서 자주 갔지만 타코야끼만 사 먹었지

츠케모노는 사서 먹어봐야지 하지는 않고, 어디서 김치 안파나, 배추를 사다가 담아먹어야겠다고

다짐을 한 곳이 일본에서였으니 나는 김치없어도 살 수 있다는 말이 헛소리가 된 곳이 교토에서였다.


수원에서는 있어도 안꺼내 먹던 김치가 교토에서는 얼마나 먹고 싶던지

결국 김치도 못담던 내가 교토에서는 배추를 사다가 김치를 담아 먹었다.


굵은 소금이 필요해서 딸이 갖다 줬을 때, 공항 검색대에서 하얀 덩어리로 보여 마약처럼 보였을 소금때문에

검색을 알뜰하게 당하면서도 까나리액젓도 비행기로 나르고 고춧가루도 날라줫던 딸 덕분에

수원에서도 못담그던 김치를 교토에서 담아 먹고 살았었다.


밭에 배추를 심어서 뽑아서 절여서 하는 김장이 이제 시어른들에게는 힘에 부친 일이 되버렸다.


자식들도 예전만큼 갖다 먹질 않으니 삼백포기의 위엄을 자랑하던 시댁의 김장 포깃수는 이번에는

백이십포기로 떨어졌고 내년부터는 "알아서들 해 먹어라"라는 말씀으로 이십 팔년 이어져 오던

김장의 탯줄을 끊어내셨다.


한페이지가 넘어가는 느낌

나를 슬프게 했고, 나를 울렸던 시댁의 김장이 페이지를 넘겼다.


양념을 더 넣겠다는 시어머니의 말씀을 막으면서 그만, 그만을 외쳤다는 남편 덕에 양념은 짜지 않고

딱 적당한 맛을 냈고 한통 얻어 온 김장은 내가 한 김장보다 맛이 있었다.


마지막일수도 있는 시댁의 김장

김장해서 자식들 주는 게 그 분들의 자랑이셨는데, 이제 그게 없어지는 거다.


한 달 남은 한 해가 벌써 가버린것 같고, 자식들 김장을 더이상은 못해주겠다고 말씀하신 시어른들의

인생 한 페이지도 넘어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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