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수 May 20. 2024

시스템화

결국 내가 이 책을 통해 공유하고 싶은 것은 ‘습관 들이는 법’이다. 재테크 습관을 만들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나의 방법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처음부터 습관을 잘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의사결정은 이제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 마련이었고, 나만의 현명한 습관이 잡혀있지 않으면 어쩌다 큰돈을 벌더라도 결국 그 돈을 잃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한번 해보는 챌린지가 아니었다.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만들어 보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렇지만 제목을 '습관화'라 하지 않고 '시스템화'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습관화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온종일 회사에 있는 직장인에게 이런 럭셔리란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회사 밖의 나에게 의지란 없다고 생각한다. 에너지를 쏟아붓는 근무시간 전후로 집중력을 요구하는 무언가를 스스로 한다는 것은 많은 의지를 필요로 했다. 경험상 많은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은 회사생활과 병행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중단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나는 의지 없이도 해야 하는 것들을 하게끔 일상을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을 살기만 하면 저절로 내가 원하는 것을 반복하게끔 하였다. 반복하다 보면 행동이나 원리가 몸과 머리에 각인되어 나의 습관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했다. 포인트는 아무 의지 없이 행해질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나는 의사결정이 한 단계라도 필요하면 시스템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매일 저녁 '재테크/경제 책 읽는 시간' 알람을 맞춰 두었다고 해보자. 나에게 이런 방식은 시스템화가 아니었다. 알람은 무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마다 일상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르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다. 내가 이 책에서 설명하려 하는 다른 주제들은 (지출컨트롤, 기록, 독서 등) 다른 이의 삶에도 나의 디테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시스템화라는 주제만큼은 개인차가 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스템화에서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 편은 시스템화라는 것이 어떤 컨셉인지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사람은 어떤 시스템을 어떤 목적을 위해 구상하였고, 또 어떤 효용이 있었는지 알아보는 하나의 케이스 스터디로 읽어주셨으면 한다.






내 시스템을 설명하기 앞서, 내 시스템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싶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나는 '재테크 궤도에 오르다'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다. 어느덧 5편에 다다랐으니 다시 한번 이 의미를 짚어 보고자 한다. 이는 1) 자신의 명확한 재무목표와 계획을 알고, 2) 이를 바탕으로 평소 지출을 컨트롤하며, 3)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가령 'n 억 벌기'가 왕초보 당시 나의 목표는 아니었다. 'n 억 벌기'는 이 상태에 도달하고, 계속 머무르며 내가 성취할 것 중 하나였다.


재테크 궤도에 오르기 위해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일상 속 지출컨트롤, 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투자철학을 기르기 위한 독서, 고민, 실천, 그리고 이것들을 볼륨감 있게 견인할 수 있는 수많은 시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것들을 반복적으로 행할 수 있게끔 일상을 설계하였다. 각 요소가 (지출컨트롤, 독서, 기록 등) 어떻게 재테크 습관을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다른 편에서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기에, 이번 편에서는 내가 어떤 시스템을 만들었고, 각 시스템이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 써보도록 하겠다.


내가 시스템화한 원리는 간단했는데, 생존과 연결 짓거나 (회사출근), 핸드폰에 넣어두거나 (외장브레인), 많은 사람들과 약속했다 (체면, 돈).



생존과 연결 지은 것


자취를 하던 시절 나의 큰 스트레스는 출근 전, 퇴근 후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회사 밖에선 쉬자는 마인드였다면 괜찮았을 텐데 당시의 나는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었다. 그러나 피곤하고 보상을 원하는 나의 육체는 나의 생각을 좀처럼 따라주지 못했다. 미라클 모닝은 보름을 못 갔고, 퇴근 후에도 책상 앞에 앉기까지는 항상 오랜 지연이 있었다. 조금 피곤하거나 야근이라도 하는 날엔 바로 스킵하기 마련이었다. 재테크 습관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 부분이 걱정되었다. 무엇을 하든 지속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흐지부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나는 1년 전 회사 근처 자취를 그만두고 본가로 들어가 지하철 편도 2시간 통근을 시작했다. 그리고 통근시간에는 경제/재테크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고 있다. 재테크 궤도에 오르기 위한 input 시간을 나의 생존 (회사출근)과 엮어둔 것이다. 한 번에 1시간 30분 정도 읽게 된다. 퇴근길도 동일하다. 반차여도, 야근을 해도, 회식이 늦게 끝나도, 출퇴근길에는 올라야 하기 때문에 회사를 가는 날이면 예외 없이 책 읽는 시간이 확보된다. 출근 직전과 퇴근 직후에 강제로 책상 앞에 앉게 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보고 있다. 요즘엔 브런치에 올릴 글을 편집하는 등 다른 일들을 하기도 했다.


장소가 바뀌기 때문에 빠르게 머릿속과 마음이 리프레시되고 새로운 정체성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전에는 (회사 근처에 살아서 그랬는지 몰라도) 퇴근을 했는데도 회사와 접속이 끊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퇴근 10분 만에 지하철에 올라 본가로 튀며, 투자자의 자아로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게 되었다. 집에 도착할 때엔 이미 1시간 반 정도 책을 읽은 후였기 때문에 재테크라는 목적의식이 선명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큰 지연 없이 조금만 쉬고 바로 글을 쓰거나 모임과제를 하는 등 다음 행위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퇴근 후 새로운 자아로 갈아입기까지 의지와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이제는 장소의 변화를 트리거 삼아 낭비하는 시간 없이 새로운 일을 하게 된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 평일에는 다른 곳에 쓸 시간이 없는 것도 큰 효용이었다. 웃프지만 자동으로 무지출 챌린지를 하기도 했다 (교통비 제외). 또 다음 날 출근을 고려했을 때 평일 저녁에는 약속을 잡을 수 없어, 특별한 일정은 모두 주말에 잡고 평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고 있다. 개인은 혼자 보내는 시간을 통해 제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로운 사고방식을 기르는 과정에서는 자기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말에만 일정을 잡다 보니 과연 이것이 나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한번 더 묻게 되었다. 그리고 그간 큰 생각 없이 시간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이탈 없이 재테크 궤도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통근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많은 시간을 재테크에 활용할 수 있었던 내 방식의 시스템이었다. 물론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는 나의 일상이 달라질 수 있고, 직주근접이 1순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왕초보를 탈출하기 위한 기간 동안 이 시스템은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나의 재테크 자아가 더 성숙해진 상태일 것이다. 그때는 이런 시스템 없이도 지금 만든 습관을 바탕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핸드폰에 넣어둔 것


핸드폰은 나의 외장브레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핸드폰만큼 내가 의지하고 자주 들여다보고 나와 모든 곳을 함께 하는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을 잘 활용하려 했다. 우선 나는 핸드폰 정리부터 했다. 사용하지 않는 어플은 삭제하고 나의 새로운 목표에 맞게 어플을 정렬했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 중요해진 어플들을 첫 화면에 넣어두었다 (재테크 어플, 은행/카드 어플, 기록 어플, 도서관 어플, 주식 어플, 부동산 어플 등). 핸드폰 어플을 정리하고 새로이 정렬한 것만으로도 내가 이제 어떤 일상을 살고자 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현황을 확인해야 하는 것들은 위젯으로 띄워두었다. 당월 지출금액 (카드 이용금액), 남은 생활비 금액, 주가 (관심종목, S&P 500) 등 내가 평소 체크해야 하는 것들은 위젯으로 띄워두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앱이 아니라 위젯이라는 점이다. 내 핸드폰에는 깔아놓고도 사용하지 않는 앱이 너무 많았다. 이는 숨어있는 앱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의식적으로 인지하여 앱을 들어가지 않고도 핸드폰을 켜기만 하면 위젯으로 현황을 확인할 수 있게끔 했다. 반대로, 주기적으로 확인하게 됨으로써 내가 지출과 주식을 계속 팔로업 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자아를 한 겹 씩 덧칠했다.


나의 목표나 나를 동기부여하는 것들을 위젯으로 띄워두었다. 내가 평소에 가장 큰 효용을 보는 곳이다. 목표를 써서 벽에 붙여 두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나의 경우엔 핸드폰 안에 있는 벽에 붙여둔 셈이다. 사실상 내 집 벽을 보는 빈도보다 핸드폰을 보는 빈도가 훨씬 높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내 아이폰에는 사진 위젯이 10개 넘게 있고, 위젯마다 나한테 영감을 주는 것들이 종류 별로 띄워져 있다. 나는 가끔 유튜브를 보다 인상 깊은 장면을 캡처해 두거나, 책을 읽다 인상 깊은 구절을 찍어둔 적이 있었는데, 두고두고 보기 위해 저장해 두었지만 사실상 자주 앨범을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꺼내 위젯으로 띄워놓았다.


핸드폰에 들어갈 때마다 그것들은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공격적으로 완수하라', '미래의 내가 달성할 수준에 전념하라'부터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고 사는 것이 인생에 깊이를 더해준다고 생각한다', 건강, 효도에 관련된 말까지 내가 스스로에게 리마인드 하고 싶은 문장들이었다. 어떤 목적으로 핸드폰을 켜든 이들은 항상 나의 시야에 잡혔고, 내가 지금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는 더 선명해졌다. 또 목표는 시각화할수록 좋다고 한다. 임장을 다녔던 아파트 단지 사진이나 베스트셀러 코너 등 내가 미래에 기대하는 장면을 위젯으로 걸어두는 것도 열정을 살리고 목표를 선명하게 만들기에 매우 좋았다.



많은 사람들과 약속한 것


다른 사람들과 약속관계에 놓인다는 것은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생각한다. 내 계획을 다른 사람들과 엮어놓으면 확실히 혼자 하는 것보다 의지의 허들을 낮출 수 있었다. 데드라인이 선명해졌고, 남들에게 내 결과물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달성하는 수준도 상향 조정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약속은 주로 재테크 모임이다. 나는 경제/재테크 책을 읽는 독서모임에도 나가보았고, 산업을 선정해 탑다운 분석을 하는 주식투자 모임에도 나가보았고, 부동산 임장모임에도 나가보았다.


우선 데드라인의 압박이 달랐다. 혼자서 언제까지 이 주제를 공부해 보자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과 이 날 이 모임에서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하거나 발표를 한다는 것은 데드라인의 의미가 달랐다. 후자는 타협이 불가능했다. 한 번은 과제를 목요일 자정까지 제출해야 했다. 목요일 자정까지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모든 주말과 출퇴근 시간을 총동원하여 과제를 했다. 자정 직전에 제출을 간신히 마치고 한 생각은, 혼자 세운 계획이었더라면 목요일 자정까지 하자는 목표를 세웠더라도 밀렸을 텐데, 모임 과제이니 완수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혼자 할 때보다 공부의 깊이가 깊어지고, 논리의 수준이 더 첨예해졌다. 혼자 공부하게 되면 이해가 되지 않아도 넘어간 적이 많았고 뾰족한 정도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실제로 재테크를 하는 다른 이들과 이 주제에 대해 대화하거나 그들에게 내 의견을 설파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확실하게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과연 이게 타당하고 실리적인 생각인지도 여러 번 검증해 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전에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상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적도 많았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많은 작가들도 이러한 효과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컨셉 (나는 어떤 작가이며 어떤 글을 연재하겠다)을 가지고, 작가로 승인을 받아, 출판 플랫폼에 연재를 한다는 것은 나 혼자만이 볼 수 있는 곳에 글을 쓰거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수준의 긴장을 준다. (브런치 손하트)





사람마다 꾸준히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다. 나에게는 편도 2시간의 통근길 그리고 그 시간에 책 읽기, 글 쓰기 등이 지속 가능한 행위지만 누군가에겐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가능해도 절대 선택하지 않을 고역일 수 있다. 스스로의 성향과 일상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이 시스템이 회사생활의 타협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직장인인 이상, 내가 현재 두 발을 딛고 있는 근본은 직장생활이다. 바닥을 해치면서 재테크 습관을 길들인다는 것은 어딘가 역전된 가치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또 직장생활은 직장인의 멘탈에 매우 중요하므로 이를 흔든다는 것은 지속가능성 여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직장생활과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시스템을 만들면 결국 윈윈 하게 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을 만들 때는 나를 감독과 배우, 제삼자와 나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계획하는 날과 이행하는 날을 구분해야 한다. 계획할 때는 전략적으로 나와 내 일상을 파악해 시스템의 수준을 낮춰줘야 하고, 이행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충실히 실천해 줘야 된다.

이전 04화 지출컨트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