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 우로 변화하는 시간적 변화
이런 말을 종종 들었다.
젊어서 보수면 가슴이 없고, 늙어서 진보면 머리가 없다.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말이다. 그러나 왜 이 말에 공감을 할까? 요즘 점점 보수의 가치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보수 같은 말을 하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기 때문이다. 예전의 나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들을 이제는 강한 개인적 의견을 담아서 하고 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왜 나이가 들수록 보수가 되는 것만 같을까?
어쩌면 그냥 늙어가는 사람으로서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던 것일 수도 있고, 조금 더 합리적인 설명을 찾고자 했던 이유도 있다.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 본, 나는 왜 점점 좌에서 우로 이동하는가? 에 대한 생각의 정리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나는 여전히 스웨덴에서는 보수이고, 한국에서는 진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진보는 스웨덴의 진보에 비하면, 정말 찐보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젊어서 진보인 건, 가진 것이 혹은 이룬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20대 초반)의 나는 누가 보아도 진보였다. 그건 지금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고 당영한 일이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본격적으로 번 적도 없고,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에 기여한 경험도 전무하다. '기존 사회'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발전해 왔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미 구축된 어떤 형태의 자산이며 가치다. 태어나보니, 이미 그러한 사회적 구조가 떡하니 구축되어 있고, 자신은 한 번도 그러한 사회에 동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은 사회구조는 젊은이들에겐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적 시스템은 젊은이들에겐 상당히 불합리해 보인다. 자신보다는 기존의 세대에게 더 이익이 가도록 설계가 되었고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젊은 세대가 진보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기존의 시스템을 부정하고 파괴함으로써, 그 틈으로 자신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쓸모를 찾기 위해 젊은이들은 진보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부정과 파괴는 또 다른 창조나 발전으로 이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보수가 되는 건, 자신이 구축해온 가치를 지키기 위함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점차 기존의 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가치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조금씩 왜 이런 사회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서 시스템이 구축된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시스템도 같이 발전하거나 변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런 점은 젊은 세대가 진본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고쳐야 할 부분을 잘 뜯어서 진화시켜나갈 필요가 있다. 이미 기존의 시스템에 젖은 기성세대는 변화하는 흐름을 발 빠르게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한 시스템을 사용하다 보면, 뭐가 불편한 것인지 잘 모르는 타성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혹은 당장의 불편함보다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할 새로운 시도가 더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점점 나이가 들수록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시스템을 점점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경력이 쌓일수록 자신의 가치도 직장에서나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인정받게 된다. 즉,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자신이 지켜야 할 재산이나 가족, 가치관들이 생겨나게 된다. 사회 초년생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고,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없는 사회였지만, 이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다. 즉, 자신이 바라보는 사회가 이제는 타도의 대상이 더 이상 아니다. 자신의 지분을 점점 늘여온 것이다.
요즘 들어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보수가 되는 건, 어쩌면 배우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반성이다. 나는 확실히 젊었을 때의 나와는 달리, 무언가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쏟지 않는다. 다만, 내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뭔가의 기술을 발전시키거나 실생활이나 업무에 적용시켜 나간다. 그러다 보니, 무엇이 새로운 트렌드인지 혹은 기술인지, 혹은 배움의 대상인지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무언가를 배우길 멈추고 자신이 이미 구축해 놓은 지식을 지키기 위해 반복적인 행위를 하는 건, 잘못된 보수의 행동이다.
좌로 우로, 나눠지는 현재의 사회가 나쁠까? 조금은 혼란스럽다. 나는 여전히 우리 부모님 세대와 정치적 이야기를 하는 일이 달갑지 않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나는 진보인 것 같다. 그러나 진보나 보수나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한 두 축이다. 간단히 하나는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창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구축되어온 질서와 가치를 지켜나가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 생각의 문을 조금 더 열어준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시스템을 고치고 재창조해 새로운 세대가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마음을 조금 더 열 이유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