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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Jul 23. 2016

건축가 바와의 집

스리랑카 건축여행기#9

33rd Lane

1959-98, Colombo, Sri Lanka


늘 '잘 사는' 나라의 건축물만 동경하면 살았던 저에게 제프리 바와의 건축은 소위 '못 사는' 나라에서 겪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작은  나라의 지혜로운 결과물을 공유합니다.


콜롬보에 위치한 제프리 바와의 집 <33rd Lane>



스리랑카 건축가의 집,

33rd Lane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돌아온 바와는 건축 사무소를 차릴 공간이 필요했다. 콜롬보의 이곳저곳을 알아보던 바와는 바가텔레(Bagatelle) 33번 골목길 끝자락에서 벗어난 곳에 작은 집 하나를 빌렸다. 골목길의 맨 구석에 자리한 이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바와는 자신의 주거공간과 더불어 사무실로 사용했다.

그때가 1959년의 일이다.


이집의 흥미로운 점은 지금은 한 채의 집이지만, 처음에는 네 채로 쪼개진 작은 집들이었다는 점이다. 바와는 처음 이사 올 당시 네 채중 한 채만 세를 주고 살았는데, 후에 옆에 붙은 집들을 계속 사들이기 시작했다. 한 채를 사들여 증축했고, 또 한 채를 사들여 증축하고 고쳤다. 그렇게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확장하고 수선하고 증축하길 반복했다. 그렇게 조금조금씩 집을 늘려가던 바와는, 결국 집 4채를 모조리 사들여 하나의 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집은 늘 미완성이었다


바와가 살던 동안 이 집은 늘 미완성이었다. 그리고 집 자체가 건축을 위한 실험실이었다. 바와의 끊임없이 생겨나는 변덕으로 이 집은 아주 독특하고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한 마디로 이집은 마치 종로의 피맛골처럼 자연적으로 생겨난 골목길처럼 복잡하다. 자연스레 그리고 제멋대로 생겨난 구불구불한 골목길처럼 말이다.




무슨 집이 이런가?


독특한 태양 문양을 그려 넣은 유리 현관문 옆에는 바와가 생전 그렇게나 좋아했던 템플트리(Temple Tree) 나무가 덩그러니 자라고 있었다. 주변의 고급스러운 빌라들 사이에서, 바와의 집은 으리으리한 자태보다는 '이게 건축가의 집이요.'라는 포스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겉 모습만 딱봐도 그냥 '이집에 그집이구나'라고 느낌이 왔다. 그리고 집의 초인종 버튼을 눌렀다. 잠시 기다리니 낮잠에서 막 깨어난 부스스한 눈을 가진 남자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 ‘뭐요?’라는 말을 깜빡 잊은 듯해 보였다.

“저기... 한국에서 왔는데요. 집 좀 구경할 수 있을까요?”

그는 역시 대답이 없었다. 다만, 문을 조금 더 열어 내가 지나갈 틈을 만들어 주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오래된 롤스로이스 두 대가 실내에 주차되어 있었다. 바와가 영국 유학 때부터 끌고 다녔다던 애마다. 지금도 시동이 걸린다고는 하나, 이젠 유물로 전시되어 광만 내고 있을 뿐이다.

 

33rd Lane 출입구


벽과 천장, 바닥 모두 흰색이었다. 바닥은 백색 시멘트로 광을 내서 반질반질했다. 잘 관리된 흰 바닥을 보자 밖에서부터 신고 들어온 신발을 벗어야 될 것 같은 미안함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를 맡은 여자는 신발을 벗어주길 요청했다.


실내는 약간 어두웠지만, 곳곳에 뚫어놓은 천창에서 빛이 들어와 안을 밝히고 있었다. 천창은 막혀있지 않아 신선한 외부 공기가 끊임없이 내부로 들어왔다. 그리고 천창 밑에는 어김없이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제프리 바와가 세상을 떠나고, 그가 쓰던 집들은 모두 바와 재단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 33rd Lane 또한 재단에서 입장료 수익으로 관리하고 있다.  

약간은 새침데기처럼 생긴 중년의 여성에게 입장료를 지불하자, A4사이즈의 커다란 티켓을 내게 건넸다. 여태까지 받아본 티켓 중에서 가장 큰 사이즈였다. 티켓에는 바와의 사진과 이 집의 평면도가 프린트되어 있었는데, 이 평면도는 볼수록 독특했다.


무슨 집이, 이 모양인가?


집의 평면도는 한없이 복잡했다.

‘집이 이렇게도 생겨먹을 수도 있나?’

평면도를 들여다보기를 포기하고 집 구경에 나섰다.


평면도



좁은 통로를 따라서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마치 여러 공간들이 전체의 큰 덩어리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느낌을 받는데, 이 느낌은 놀라울 정도로 신기하고 즐겁다.

현관에서 연결된 통로를 따라 걸었다. 바와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당시 이 통로는 골목길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두고 4채의 작은 집이 나란히 위치해 있었다. 예전 골목길의 폭은 그대로 유지되어있다. 번지가 적힌 작은 간판이 아직도 벽에 남아있다.





40년을 걸쳐

서서히 변화한 집


처음에 바와는 네 채의 집 중 세 번째 집을 빌려, 자신을 위한 침실 하나와 관리인을 위한 침실 하나, 부엌과 거실, 화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다 네 번째 집이 비자, 주인을 설득해 이를 사들였고 다이닝 룸과 두 번째 거실, 전시실을 만들었다. 마침내 1968년에 첫 번째 집과 두 번째 집마저 사들이고, 첫 번째 집을 4층으로 증축하면서 지금의 모습에 가깝게 되었다.


그가 이집에 거주하던 근 40년 동안, 바와는 내키는 대로 그의 직감에 따라 수선하거나 변경되길 반복해 원래 주택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평면을 보고 있으면, 마치 공간을 짜깁기라도 해놓은 듯 미로처럼 복잡하다.





이곳은 집일까?

정원일까?


바와는 대부분의 공간에 크고 작은 정원을 두었다. 이 집을 크게 본다면 집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정원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어느 곳이 외부이고 내부인지 정확히 구분하기란 어렵다. 뚫리고 열린 공간으로 초록의 나무가 바라보이고 한 낯의 태양이 분산되어 실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내가 여태까지 봐왔던
어떤 집보다 아름다웠다

네 채의 집들 중에 바와가 처음으로 사들인 집에는 바와의 침실이 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꺾어서 돌아가면 거실과 서재가 나온다. 각 방에는 평소 바와가 쓰던 물건과 수집품들을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마치 바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손님이 잠시 주인 몰래 집 구경을 조심스레 하는 것만 같았다.



개인의 취향으로

가득한 곳


평소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어울리길 좋아했던 그라 유명한 사진가, 화가, 공예가, 만화가들이 바와에게 선물로 준 소장품들이 신기하다. 바와의 건축에는 현지에서 혹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의 건축은 언제나 자연과 예술과의 협업을 통한 결과물이었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한 붙박이장 같은 책방, 인도에서 물 건너 온 나무 기둥, 선반 위에 놓인 조각품,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 둔 조명, 어느 곳에 있어도 한 낮의 빛 한줄기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들 앞에 놓인 의자와 탁자는 그의 삶이 어떠했을 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물건에는 바와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을 테고, 모든 공간은 바와의 생각대로 지어졌을 테니, 이 집은 바와의 삶과 건축이 응축된 장소임에 틀림없다.


바와는 종교가 없었기 때문에 집안에는 불상, 성모 마리아상, 힌두의 신들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다. 거실에 있는 어린 아이 키 정도 크기의 불상은 바와가 태국까지 가서 이 불상을 위한 비행기 티켓까지 지불한 뒤에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고 직접 공수해온 귀한 불상이라고 한다.


이처럼 바와의 집, 33rd Lane에는 바와가 오랜 기간 살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모서리가 부드럽게 처리된 하얀색 계단을 따라 2층을 올라갔다. 그곳엔 손님들이 찾아오면 내어줄 거실과 객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3층은 옥상테라스가 4층은 그보다 훨씬 작은 옥상 테라스가 있었다. 이 옥상에서는 저 멀리 콜롬보의 바다까지 조망이 가능했다고 하나, 지금은 후에 지어진 집들 사이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제프리 바와는 평일을 보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도시에서 벗어나 벤토타(Bentota)의 루누강가(Lunuganga)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한적한 삶을 보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제프리 바와 재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바와의 제자들이 모여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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