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함 없이 즐거운 사람들
Happy New Year in Yangon
2018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나라처럼 새해와 동시에 나이를 먹는 나라는 세상에 또 있을까?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은 새해가 되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맞나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했더니 엄청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건 나도 싫다. 어쨌든 나도 이제 만 나이로 말하는 게 좋을 만큼 나이만 알차게 먹은 처지가 되어 버렸다.
2017년 마지막 날은 현지인 친구 Andy(사실은 미얀마 태생 미국인이다)의 초대로 나름 상류층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홈 파티를 다녀왔다. 다들 모여서 현지인들끼리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절반 정도가 미국에서 살고 있고, 잠시 미얀마에 새해를 맞으러 방문했다. 오랜 시간 미국 주도로 이뤄진 생션(sanction)과는 무관하게 미국 참 좋아하고 왕래도 많다.
현지인 친구 앤디의 가족, 친지들
앤디 집 근처에는 아주 큰 Inya 호수 공원이 있는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화려하진 않지만 작은 불꽃놀이도 간간이 터지고 먹을거리를 팔고 사람들끼리 모여서 축하하느라 아주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밤 12시를 넘어 2018년을 맞이했다. 아무런 카운트다운도 없었다. 그냥 각자 스마트폰이 알려주는 시간을 보고 시간이 00시를 지나자 "Happy New Year"를 외치며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수많은 쓰레기들이 남았고 신기하게 그 쓰레기들은 청소부들이 1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치웠다. 아무런 장비도 없이 말이다. 개발도상국 국가에 와서 느끼는 건, 뭐가 없어도 즐길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이다. 예전 스리랑카에서는 음악 없이 춤을 엄청 잘 추던 아이들이 생각나다. 이렇듯 여기 사람들은 뭐가 갖춰지지 않아도 그런대로 분위기를 살려 잘 놀 줄 안다. 우리나라 같았다면, 크게 틀어놓은 음악이며 커다란 전광판에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여기저기 화려한 불꽃놀이가 있었겠지만, 여긴 아무것도 없이 어두운 가로등에 의지한 채로 그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즐긴다. 여하튼 카운트다운 없이 다가온 나의 2018년 기대된다.
크리스마스 in Yangon
불교 국가이지만, 미얀마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어느 나라의 크리스마스 못지않다. 길거리에는 다양한 행사가 있고, 색색이 알록달록한 LED 전등으로 꾸민 가로수도 볼만하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교회 건너편에 사는 나는 이런 미얀마의 크리스마스 풍경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 그렇지만 밤에는 좀 시끄러운 게 흠이었다. 어느 날 창문을 열어보니, 길거리 가로수가 잔뜩 전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예상한 대로 정전이 되었다. 이렇게 전기가 부족한 나라인데 그냥 적당히 좀 하지 좀 심하게 불을 밝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스웨덴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는 틸다는 굳이 여기서 크리스마스 진저 하우스를 만들었다. 모든 재료가 스웨덴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집 모양의 커다란 진저 비스킷은 설탕을 녹여 만든 풀로 붙이고 집 위에는 눈처럼 하얀 풀로 다시 여러 가지 캔디를 붙여 장식한다. 스웨덴에서 온 친구랑 덴마크에서 온 커플은 내가 건축을 전공했으니 도와달라고 했지만, 결과는 역시 초딩이 만들어도 더 나을 법한 디테일로 끝났다.
개인용 엘리베이터
양곤 주택가를 걷다 보면 도로에 면한 파사드에 색색이 빨랫줄이 길게 떨어져 있는 걸 보게 된다 (아래 사진). 처음엔 워낙 길거리가 전선 줄이며 쓰레기며 정신이 없어서 눈여겨본 적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나름 훌륭한 시스템이다. 개인용 엘리베이터와 같은 시스템으로 작용하는데, 줄 끝에는 집게가 달려 있어서 여기에 신문이나 포장된 밥 같은 걸 걸고 위로 끌어올린다. 밑으로 내려가기 귀찮고 건물에는 엘리베이터도 많이 없기 때문에 소소하고 작은 짐 꾸러미는 이걸로 전달받으면 편하다. 이걸 흔들면 종도 울려서 초인종이나 배달 왔음을 알리는 용도로도 쓰인다.
미얀마에 온 교황
여러 매체에서 소개가 되었지만, 미얀마에 교황이 왔었다.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VVIP이지만 지나가다 2번이나 마주쳤다. 교황도 더웠는지, 오픈카에서 손을 흔드는 것 대신, 자동차 안에서 손을 흔드는 걸로 첫날을 맞이했다. 미얀마 각지에서 온 천주교 신자들은 교황을 보느라 또 우리 집 도로는 마비가 되고 말았다. 이 신자들은 숙소를 미처 구하지 못해 그날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도 다수였다.
길거리 음식은 싸다
말해 무엇하겠냐마는, 미얀마 길거리의 음식은 싸다. 가끔 아침을 직장 동료들과 현지식으로 해결하는데, 길거리 노점상에서 파는 국수 한 그릇은 우리나라 돈으로 5백 원을 하지 않는다. 싼 가격에 2그릇을 종종 시켜 먹기도 했다. 태국만큼은 아니지만 미얀마도 많은 길거리 노점상들이 있다. 그중에는 복사기 한 대만 덩그러니 놓아두고 운영하는 복사 집도 있었고, 노점 타투 집도 있었다.
귀여운 꼬마들
세상 모든 꼬마들이 귀엽지만, 미얀마 꼬마들도 참 귀엽다. 조그만 롱지(longy, 전통 복장)를 입고 있는 꼬마. 혹시 자신을 엄마에게서 떨어 놓을까 봐 내가 손을 뻗치면 손사래를 미친 듯이 친다. 어디 가서 안 먹히는 얼굴은 아닌데...
겨울이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같은 겨울은 아니지만, 나름 겨울이라고 비도 오지 않고, 날씨도 제법 선선하다. 그렇다고 긴 옷이나 스웨터를 입을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현지인들은 긴 재킷과 목도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날씨만 돼도 미얀마에 살만할 텐데, 겨울은 짧고 어느새 다시 더워지고 있는 것이 곧 겨울의 바닥을 딛고 여름으로 가는 길목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