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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Sep 27. 2024

단테의 별 - 1권 2부 5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19)

최선경은 한바탕 몰아친 광풍을 함께 잘 이겨낸 상으로 문승협과 뜻깊은 선물을 나누고 싶었다.

“이건 뭐야?”

“워크맨이라고, 카세트테이프를 넣어서 틀면 음악이 나오는 거야.”

“우아, 비싸 보이는데?”

“저번에 증조할머니께서 주신 만원 있잖아, 그 돈으로 샀어.”

“진짜 신기하다. 우리나라에 이런 것도 있었어?”

“아, 아빠가 얼마 전에 학회참석차 일본에 갔었거든, 그때 아빠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했어.”

“그럼 일제야?”

“응, 일본 소니제품이야. 어때, 맘에 들어?”

“당연 맘에 들지, 근데 비싸 보여서 좀 부담된다.”

“이그, 너희 증조할머니가 준 돈으로 샀다니까.”

“알았어, 고마워. 난 맨날 받기만 하고, 미안한데?”

“두 개야, 내 것도 같이 샀어, 색깔만 다르고 같은 모델이야.”

“오호, 잘했다 잘했어. 우리나라는 이런 걸 언제쯤 만들려나, 국산화하면 좋을 텐데.”

“그리고, 내가 지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고 있는데, 아직 안 돼서 오늘은 못 가져왔어.”

“와, 완벽한 선물이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잖아, 그치.”

“그래, 맞아. 나중에 우리 놀러 갈 때 같이 들으면 좋잖아, 그때 꼭 워크맨 챙겨 와, 알았지?”

“응, 나 완전 감동했어.”

“호호호, 그리 감동해 주니까, 내가 막 행복해지네.”

“나 너무 감격해서 그러는데, 울어도 돼?”

“호호, 안돼, 남자가 이만한 일로 울면 쓰나. 그리고 이건, 일본과자야.”

“와 맛있겠다.”

“아빠가 귀국하면서 사 온 건데, 현아 갖다 줘.”

“현아도 엄청 좋아하겠다. 나 하나만 먹어봐도 돼?”

“안돼, 현아 아기씨한테 하락받고 먹어.”

“넵, 알겠슴돠.”

최선경은 기뻐하는 문승협표정을 보니 그동안 억눌려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렸다. 내친김에 시간 내서 교외로 놀러 가자고 하였다. 문승협도 흔쾌히 동의하며 더 추워지기 전에 가기로 약속했다.


문승협이 교외로 놀러 갈 계획을 궁리하는데, 김철종이 눈앞에서 얼씬거렸다. 문득 얼마 전 이정주에게 사주받고 감쪽같이 속인 배신행위가 생각났다. 처절히 반성하도록 복수할 방법이 떠올랐다.

“어이 김철종씨, 잠깐 나 좀 봅시다.”

“와따 승협씨, 말투가 좀 살벌하요잉.”

“죄지은 사람치고는 무자게 해맑소잉.”

“아따,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그러시까?”

“지난번 이정주랑 작당해서 나를 속인 대가를 치러야 겄지라?”

“허허, 너그러우신 승협씨가 이미 용서한 걸로 알았는디요?”

“그럴 리가요, 그때를 생각하믄 아직도 이가 갈립니다만.”

“그러다 이빨 상한께, 그냥 자비를 베푸쑈.”

“그라믄 반성은 많이 했소?”

“반성은 지금도 하고 있는디라, 그냥 선처해 주믄 안 되겄소?”

“못하겠다면?”

“그라믄 뭐, 피할 뾰족한 방도도 없는디, 달게 벌 받아야지라.”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한데.”

“뭣 이단가요? 말하쑈, 내가 냉큼 해결해 불 텐께.”

“교외로 바람 쐬러 가고 싶은데, 가까운 근교에 갈만한 곳이 있을까?”

문승협은 목포의 교외지리와 교통편을 잘 몰라 고민하던 중이었다. 김철종도움이 절실했다.

김철종이 잠시 고심하다 친구들과 고하도로 자전거하이킹을 가자고 하였다.

문승협은 순간 아차 싶었다. 자신도 마찬가지지만, 최선경생각 또한 단 둘이서 가는 교외나들이였을 터였다. 더구나 심장이 안 좋은 최선경건강을 생각하면 무리였다.

문승협이 얼른 자전거를 못 탄다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으나 돌이킬 수 없었다. 미처 김철종성격을 감안하지 못한 경거망동이었다. 계획을 세우다 정보가 없어 답답한 마음에 복수의 대가로 도움을 청한 경솔함이었다.

김철종은 자전거를 가르쳐 주겠다면서 문승협의 동의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하였다.

문승협은 하는 수없이 최선경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최선경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왕 이렇게 됐으니 그냥 가자고 하였다. 결국 이정주와 차여선 커플에 김용남과 가병수, 제갈민주까지 8명이 가게 되었다.

눈치 없는 김철종이 며칠 동안 방과 후에 자전거를 가져와 가르치는 수고와 열성을 아끼지 않았다.

“철종아, 진짜로 얘들 모두 자전거 잘 타?”

“헉헉, 잉, 몇 번을 말하냐. 다 잘탄께 걱정 붙들어 매, 승협이 너만 배우믄 돼야.”

“자전거도 진짜 빌릴 수 있고?”

“오메 입 아픈 거, 도대체 몇 번을 묻냐. 우리 집 옆에도 자전거빵 있고, 고하도에도 빌리는데 있단께.”

“철종아, 나 자전거 무서워서 더 이상 못 탈 거 같아.”

“연설하네, 너 아까침부터 혼자 타고 있어.”

문승협이 자전거를 배우면서 뒤늦게라도 무산시켜 보려고 핑곗거리를 찾았으나 막을 도리가 없었다.


일요일 11시, 철선을 타는 선착장에서 만났다.

“아그들아, 어제저녁 이리역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난리인디, 우리 가도 되까?”

“긍께 말이어, 폭발로 죽거나 다친 사람이 1,400명이 넘는다드란께.”

“그뿐이 아니어, 기차랑 철로는 다 날아가 불고, 뽀개진 건물이나 집이 9,000채나 된다드라.”

“이재민만도 10,000명이 란디 으짜스까잉.”

“그러게, 이런 큰 사건사고가 있을 때는 조신하게 있어야 하는데, 어쩌지?”

“선경아, 마음이 안 내키면 다음에 가자.”

“아따, 우리가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냐, 한번 계획했으믄 밀어붙여야제.”

“그라자, 맘으로다가 빨리 복구되길 빌고, 우린 우리의 길을 가자.”

전무후무한 이리역폭발사고피해를 한 목소리로 걱정했다. 그럼에도 계획대로 하자는 김철종의견에 김용남이 동조하고 나섰다. 우려와 우리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다 다녀오기로 합의하였다.

철선을 타고 30분도 안 걸려 바다 건너 고하도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짜장면으로 통일하여 점심을 먹었다. 자전거가 없는 문승협과 이정주는 남성용 자전거를, 최선경과 제갈민주는 여성용 자전거를 빌렸다. 길을 잘 아는 김철종과 김용남이 앞장섰고, 자전거를 잘 타는 가병수가 맨 뒤에서 호위해 고하도일주하이킹을 시작하였다.


고하도는 삼국시대부터 주민들이 거주한 섬이었다. 높은 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高下島라 불렸고, 보화도寶化島, 고하도高霞島, 칼섬 등으로 칭했다. 지질은 대부분 산성화산암류로 섬전체가 낮은 산지로 이루어졌다. 목포시를 마주 보는 북동사면은 단애를 이루고 있으나, 남서사면은 평지와 완만한 경사지가 넓게 분포하였다. 섬의 서쪽 만입 부 주변은 간석지가 넓게 발달되어 제방을 막은 농경지와 염전이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육지면陸地棉 재배에 성공한 곳이었고, 무상기일이 200일 이상으로 온난습윤한 기후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군량미를 저장했으며, 중부에 1722년에 건립된 충무공유적(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와 유형문화재 제39호 기념비)이 장군의 뜻을 전하였다. 조선시대에 도청都廳이 설치되었지만 1648년(인조 25)에 옮겨간 기록도 있었다.


문승협일행은 충무공유적지를 둘러본 후 용머리를 향하여 출발했다. 3Km 정도 거리였으나 평탄치 않은 길이라 자전거를 타다 끌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문승협은 서투른 자전거실력에도 최선경을 계속 살폈다. 중간쯤에서 휴식을 제안했다. 힘들어하는 최선경의 자전거를 받아 세우고 오란씨를 건넸다. 최선경이 심호흡을 몇 번하더니 두세 모금 마신 후 다시 문승협에게 주었다. 친구들도 각자 준비해 온 음료수로 갈증을 달랬다.

“선경아, 치마 입고 구두 신어서 자전거 타기 힘들지 않아?”

“네가 전에 예쁘다고 해서 또 입었는데, 조금 불편하긴 해.”

문승협이 걱정스럽게 묻자, 최선경이 수줍게 미소 지으며 답하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유달산동굴에 갔을 때와 똑같은 차림이었다. 흰색블라우스와 멜빵청치마에 빨간색카디건, 빨간색머리띠에 흰색양말과 빨간색구두까지 그대로였다. 최선경은 그때 예쁘다고 했던 문승협말을 기억하였다. 문승협은 그제야 최선경이 불편함을 굳이 감수한 이유를 알았다. 카디건팔꿈치와 멜빵청치마엉덩이에 풀물 든 흔적이 있음에도 자신을 의식하여 입고 왔다는 생각에 미안했지만 무척 예뻐 보였다.

최선경이 친구들 몰래 가방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냈다. 문승협에게 워크맨을 달라고 하여 테이프를 넣어주었다. 둘만 들리는 목소리로 출발할 때 플레이버튼을 누르라고 하였다. 최선경도 워크맨을 꺼내어 카세트테이프를 넣었다.

휴식을 취하며 제갈민주와 티격태격하던 김철종이 출발하자고 하였다.

최선경과 문승협은 눈빛을 교환하고 이어폰을 끼운 뒤 워크맨플레이버튼을 눌렀다. 둘이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며 같은 음악을 들었다. 친구들과 함께였지만 그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You are the answer to my lonely prayer, you are an angel from above, I was so lonely till you came to me, with the wonder of your love~’

‘Oh Carol, I am but a fool, Darling I love you, though you treat me cruel, You hurt me, And you make me cry, But if you leave me~’

‘I'm so young and you'e so old, This my darling I've been told, I don't care just what they say, 'Cause forever I will pray, You and I will be as free, As the birds up in the trees, Oh please stay by me Diana~’

카세트테이프 A면에 문승협최애곡 ‘닐세다카의 You mean everything to me와 Oh carol’에 이어, 최선경이 듣기 좋아하는 ‘폴 앵카의 Diana’등 여러 팝송으로 채워져 있었다.

A면이 끝날 때 용머리에 도착했다. 모두 선선한 가을바람으로 더위를 식히며 주변경관을 구경하였다. 연륙교를 설치해 고하도와 목포를 다리로 연결하면 좋겠다는 등 잡답을 나눴다. 최선경이 가져온 카메라로 단체사진을 담았다. 차여선이 이정주와 둘만 찍어 달라고 하자, 최선경이 부러워하며 셔터를 눌렀다. 남자 또는 여자끼리도 추억사진을 남겼다.

다시 이동하여 목화밭을 찾아갔다. 용머리에 올 때 섬의 북동사면으로 왔기에, 이번에는 남서사면길을 이용했다. 문승협과 최선경은 멈춰둔 워크맨플레이버튼을 출발과 동시에 다시 눌렀다. 카세트테이프 B면은 피아노연주 곡이었다. 섬의 남서사면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어서 수월하였다.

카세트테이프 B면이 끝나기도 전에 목화밭에 도착했다. 목화재배가 끝나는 시기라 재배된 목화만 구경하며 만져보았다. 9월쯤 한두 달 일찍 왔으면 백색, 황색, 옅은 붉은색 꽃을 봤을 거라는 농부아저씨말에 다들 아쉬워하였다.

다음 목적지인 남서쪽 만입부에 있는 염전으로 자전거페달을 밟았다. 염전에 다다라 모두 자전거에서 내려걸었다. 차여선이 최선경에게 둘이 귀에 뭘 꽂고 뭘 듣냐고 물었다. 최선경이 하는 수 없이 이어폰을 빼고 들려주었다. 친구들이 모여들어 구경했다. 차여선은 문승협과 최선경을 한 번씩 쳐다보더니 이정주를 불렀다.

“어이 정주씨, 우리 공식 짝지 맞죠잉?”

“아따 새삼 묻냐,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디.”

“공식 짝지보다 더 짝지 같은 한 쌍이 있는디, 우째 생각하시까?”

“뭔 소리까, 감이 안 온디?”

“니랑 나랑은 공식 짝진디, 으째서 나는 자꾸 선경이가 부럽냔 말이시.”

“뭣이어, 아직까정 승협이를 좋아하냐?”

“그런 말이 아니잖애. 니는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것이, 왜 나한테는 그렇게 바보천치냐.”

“여자말은 외계어라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겄다, 그냥 쉽게 말해주믄 안 되까?”

“승협이는 선경이 자전거도 받아서 세워주고, 목이 탈까비 오란씨도 챙겨주고. 거그다가 카세트도 준비하고, 또 수건도 건네주믄서 무자게 알뜰살뜰 보살핀디, 넌 뭐시냐 이 말이어.”

“…….”

“어이 철종씨, 철종씨는 여선이 말을 어떠코롬 생각하신가?”

“지당하신 말씀이제. 이정주는 언능 반성하고, 차여선님께 사죄 올려야 쓰겄다.”

“연설하네, 뭔 딴소리하고 자빠졌냐. 니는 나한테 뭐시냐 이 말이어.”

“재잘아, 우리가 뭔디, 우리도 사귀냐?”

“음마, 니가 나 꼬셔갖고 여그까정 데려왔으믄, 승협이 멩키로 해야제.”

“아따 승협이 땜시 남자 여럿 죽어나네.”

“어이 용남씨, 니는 나한테 뭐시어?”

“병수야, 니는 또 으째그냐?”

“아니, 요렇게 저렇게 이렇게 커플이믄, 울 둘이 커플이잖애. 으째, 용남이 니가 가시나 할라냐?”

“뭐시야?”

“하하하, 호호호.”

“승협이가 별종이라서 그런 것이어, 인자 승협이는 남자들한테 공공의 적이란께.”

모두 가병수의 농담으로 한바탕 웃었다. 문승협과 최선경은 자신들 행동과 마음을 들켰다는 생각에 쑥스러웠다. 친구들에게 뭐라 변명이라도 할까 했으나, 은근슬쩍 커플놀이를 즐기며 자연스레 넘어갔다.

김철종이 각자의 시간을 갖자며 염전과 맞닿은 바닷가로 가 낚싯대를 펼쳤다. 가병수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놓고 갯벌을 헤집으며 미끼로 쓸 갯지렁이를 찾았다. 차여선은 이정주와 김용남을 따라가서 돌을 주워 바다에 던지며 제비 치기를 하였다.

최선경이 염전과 바다를 배경으로 풍경사진을 담다가,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문승협과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제갈민주에게 카메라를 건네더니, 문승협에게 다가가 같이 사진 찍자고 하였다. 머뭇거리는 문승협에게 오른손검지를 세우고 ‘한 번만, 소원이야’라며 애원하듯 했다. 평소 사진 찍기를 싫어하는 문승협도 더 이상 거부할 수 없었다. 용머리에서 이정주와 차여선 커플을 찍어주며 부러워하던 최선경표정이 생각나서였다. 최선경은 신이 나서 문승협과 포즈를 잡았다. 염전결정판을 배경으로 길중앙에서 한 장, 하얀 소금더미와 낮은 곳에 바닷물을 자아올리는 무자위 등을 배경 삼아 서너 장 찍었다. 사진 찍는 내내 최선경이 흡족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였다면, 문승협은 쑥스런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최선경은 사진 찍어주고 카메라를 건네는 제갈민주의 엉덩이를 툭툭 치는 여유를 보이며 고맙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다. 염전도랑에 있는 차여선에게 가보자는 제갈민주를 따라가면서도, 뻘쭘히 서있는 문승협에게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철종이 빨리 미끼를 가져오라고 소리치자, 가병수가 알았다며 갯지렁이를 들고 갔다. 문승협은 도안광산에 갔을 때 낚시했던 생각이나 쫓아갔다. 김철종이 갯지렁이를 끼워 낚시를 바다에 던졌다.

염전도랑에서 나뭇가지로 짱뚱어를 건드리며 놀던 여자아이들이 갑자기 소리 질렀다. 문승협이 반사적으로 뛰어갔다. 뛰는 짱뚱어에 놀라 미끄러져 갯벌에 빠진 최선경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문승협을 바라보았다. 문승협이 갯벌로 내려가 일으켜 세워 조심스럽게 길가로 나왔다. 자기 몰골을 살피며 웃는 최선경을 데리고 염전창고옆 수돗가로 갔다. 옷에 묻은 갯벌이 잘 지워지지 않았다. 최선경옷에 지난번 물든 풀물과 함께 갯벌얼룩이 추억의 흔적으로 남았다. 빨강구두에 묻은 갯벌을 씻어낸 뒤 수건으로 구두안쪽물기를 닦아내고 신으라며 주었다. 양말 벗은 하얀 최선경발을 처음 보았다. 얼굴만큼 발도 예쁘다고 생각하며 수돗물에 손을 씻었다. 최선경이 문승협에게 손 닦으라며 손수건을 주었다.

낚시를 거둬온 남자아이들이 더 늦기 전에 빌린 자전거를 반납하고 서둘러 고하도를 나가자고 하였다.

목포로 가는 철선에서 고하도하이킹을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다들 오늘 하루를 만족해하였다. 국민학교 6학년 늦가을의 고하도추억을 각자 기억 속에 각인시켰다.

목포선착장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김철종과 제갈민주가 사귀니 마니 또 티격태격해 함께 웃었다. 이정주와 차여선이 가고 집에 가까워진 순서대로 한 명씩 헤어졌다. 김철종을 끝으로 문승협과 최선경만 남았다.

“괜찮아?”

“응.”

“뭐가 제일 좋았어?”

“전부 다 좋았어, 훌륭했고, 재미있었어.”

“다행이다. 다음에 또 가고 싶으면 말해, 어디든 데려갈 테니까.”

“풋, 다음이라. 그래, 다음에 또 갔으면 좋겠다. 어디든 함께 갈수만 있다면.”

“목소리까지 축 쳐져서 왜 그래, 마치 다음이 없는 사람처럼.”

“아니, 이게 마지막이 아니길 바래서 그래.”

“마지막이라는 말 하지 말랬지, 기분 이상해지잖아.”

“옷이 아직 축축해서 그런가, 잘 놀고 왔는데 기분이 가라앉네.”

“너네 엄마 놀라겠다, 옷이 다 젖어 왔으니 말이야.”

“괜찮아, 우리 엄만 이 정도로는 놀라지 않아.”

“집에 다 왔네, 들어가서 씻고 잘 쉬어.”

“그래, 너도 잘 가. 내일 학교에서 보자, 안녕.”

“응, 안녕.”

문승협은 집에 들어가는 최선경을 지켜봤다. 최선경이 뒤돌아보며 어서 가라고 손짓하였다. 집 앞에 서서 다시 안녕이라며 손을 흔들고 들어갔다. 문승협은 2층에 있는 최선경방창문을 주시했다. 혹시 열릴까 싶어 지켜보며 기다렸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쉬움을 달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최선경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에게 화장실이 급하다며 2층으로 올라갔다. 문승협에게 들키지 않게 커튼구석에 숨어 지켜보았다. 한참 서있다 문승협이 가는 걸 보고서야 샤워하러 갔다.

문승협은 집으로 가면서 워크맨을 다시 켰다. 피아노연주곡이 끝나자 문승협의 상징 같은 가곡 ‘별’이 나왔다. 카세트테이프 B면의 마지막곡이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하루 종일 즐거웠는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생각해 봤지만 딱히 알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인가?’라는 말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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