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29)
문승협은 주말 내내 집에 틀어박혀 월말고사시험을 준비하였다. 공부하는 틈틈이 수화기가 잘못 놓였는지 들었다 놨다 했다. 정난희전화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원망과 실망만 쌓여갔다.
월요일부터 치러진 월말고사는 순탄하였다. 국민윤리시험은 늘 그랬듯 예고한 문제는 꼭 나왔다. 김생출선생은 학생들에게 교훈이 되는 문제를 의도적으로 알려주어 절대 잊지 않도록 했다.
월말고사가 끝나는 날, 임창열이 문승협을 찾아갔다.
“승협아, 시험 잘 봤냐?”
“응, 잘 봤어. 시험지만.”
“허허, 연설하네.”
“하하, 나를 다 찾아오고 어쩐 일이야?”
“잉, 그때 겁나게 고마웠다고.”
“뭘, 언제?”
“아따 그때, 우리들이랑 교장선생님하고 간담회한날 말이어. 니 말 잘 하드라잉.”
“아, 진실을 모른 척 방관하는 것도 상처 주는 거래.”
“누가야?”
“하하, 어느 책에서 봤어.”
“참, 그날 선배들 말 안 들었으믄 큰일 날뻔했어야. 엊그저께 선상님들끼리 하는 말 듣고 깜짝 놀랐다.”
농성할 당시 임창열부탁에 3학년학생회가 주도하였다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학교 측이 3학년들을 중징계로 겁주어 농성을 와해시키려 했다. 대학입시를 앞둔 것을 무기 삼았다. 그래도 말을 안들을 경우 공안경찰을 대동하여 학생회를 공격할 태세였다. 남강과 박현선배가 공작가능성을 운운한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문승협은 선배들의 우려가 현실이 될뻔하였다는 생각에 소름 돋았다. 학교가 학생을 상대로 나쁜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시험마지막날은 항상 일찍 하교하였지만, 야자시간만 없을 뿐 오후수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수업이 끝난 청소시간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1학기성적을 종합해 다시 우열반을 편성한다는 풍문이 돌았다. 학생들이 또다시 성적으로 경쟁과 차별을 겪을 생활에 잔뜩 긴장했다. 모레 있을 방학식도 그리 달갑지 않았다.
우열반소문에도 방학은 학생들을 들뜨게 하였다. 토요일이라 방학식만 하고 끝났다. 문승협은 정난희가 전화한다는 날이어서 일찍 귀가할 계획이었으나, 농구하자며 붙잡는 친구들을 뿌리치지 못했다. 운동장귀퉁이 농구코트에 모였다. 진 팀이 냉면과 음료수를 사기로 하였다. 따가운 햇볕에 주르륵 흐르는 땀을 훔쳐가며 열중했다. 점점 경기에 열기가 더해졌다. 김영후와 장기원이 웃통을 벗고 뛰었다. 문승협은 수건이 없어 입고 있는 러닝셔츠로 연신 땀을 닦아냈다. 물을 뒤집어쓴 마냥 온몸이 땀에 젖었다. 아쉽게 3점 차이 승패였다. 친구들과 수돗가로 씻으러 몰려가는 김영후를 불렀다.
“나 일이 있어서 집에 가봐야 해, 여기 돈 받아.”
“아야, 아무리 바뻐도 씻고는 가야제.”
“시간이 없어서 그래, 런닝구 벗어서 대충 닦고 갈게.”
“그렇게 바쁜디 농구했냐, 하여튼 간에 니는 거절을 못해서 탈이다.”
“내가 빠지면 멤버가 모자라잖아, 혹시 돈 부족하면 나중에 말해줘.”
“내가 알아서 하께, 신경 쓰덜 말고 어여 가봐라.”
문승협은 거절 못하는 것도 병이라는 김영후말에 미소로 동의하였다. 러닝셔츠를 벗어 땀을 닦은 뒤 비틀어 짰다. 얼마나 땀이 났는지 땅바닥이 흥건했다. 여러 번 꽉 짜서 입으니 차가운 냉기에 등골이 오싹하였다. 축축한 러닝셔츠 위로 반팔겉옷을 입은 데다 입술도 짭조름하여 찝찝했다. 빨리 집에 가서 정난희전화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버스정류소로 갔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칠까 걱정하였지만 다행히 버스는 한산했다. 버스의자등받이에 땀이 밸까 싶어 등을 떼고 앉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샤워하였다. 엄마 이항리가 벗어 논 옷가지를 집어 들고 구시렁거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말끔하게 나오는 문승협에게 점심을 차려주었다.
“뭐 했는데, 옷이 땀에 범벅이냐?”
“친구들하고 농구했어요, 더워 죽는 줄 알았어.”
“이 뙤약볕에 죽을라고 별 짓을 다한다.”
“이건 뭐야?”
“콩국수, 시원하게 먹으라고 얼음 동동 띄웠어.”
“엄마, 나 설탕 좀 줘요.”
“뭔 설탕, 소금으로 간 맞춰 먹는 거야.”
“아냐 난 설탕이 좋아, 그게 맛있더라고.”
“맨날 달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 소금으로 간하면 고소하고 맛있는데 그러냐?”
“난 설탕이 좋다니까, 엄니, 내 취향을 존중해 주셔요.”
“그럼 조금만 넣어.”
“엄마, 혹시 난희한테 전화 안 왔어?”
“응, 저번에 안부전화 한번 오고는 소식 없더라.”
“오늘은 계속 집에 있었고?”
“응. 왜, 전화한다 드냐?”
“아 아니, 통화한 지 오래돼서.”
“으째, 둘 사이에 뭔 일 있냐?”
“아냐, 없어.”
문승협은 달달한 콩국수를 시원하게 먹었다. 거실에 누워 선풍기바람으로 더위를 피했다. 아무 생각 없이 눈감고 있다 잠들었다. 꿈속에서 정난희와 다른 남자를 만나는 문제로 다투는 중에 벨소리가 울렸다. 잠결에 벌떡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동생 문현아를 찾는 전화였다. 수화기를 건네고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넘어갔다. 옆에 있던 막냇동생 뮨윤아가 퉁명스레 말하였다.
“오빠, 대낮부터 무슨 잠을 그렇게 자?”
“언제 들어왔어?”
“아까 전에, 한참 됐는데?”
“공부는 안 하고 어딜 그렇게 쏘다니냐?”
“뭔 소리야, 자다가 봉창 두드리네, 지금 방학이야.”
“야 문윤아, 방학이면 공부 안 해도 되는 거야?”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언제부터 동생공부 챙겼다고.”
“혹시, 오빠 잘 때 전화 안 왔니?”
“응, 안 왔는데?”
문승협은 기다리는 정난희전화가 오지 않고 꿈내용도 별로여서 짜증 났다. 문윤아에게 분풀이 삼아 타박했다가 할 말이 없어 급히 태세전환하였다. 마침 문현아가 통화를 끝내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현아야, 오빠 부탁이 하나 있는데.”
“뭔데?”
“난희집에 전화 한번 해주라.”
“전화해서 뭐라고 해?”
“난희 있는지 물어보고, 있으면 나 바꿔줘.”
“없으면?”
“그럼 후배라고 해,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 하고 끊어”
“오빠가 직접 하면 안 돼?”
“응,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래.”
문현아가 부담스러워하며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다이얼을 돌리는 문승협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신호 가는 소리에 잔뜩 긴장했다. 최대한 공손하게 통화하더니 전화를 끓었다.
“뭐래?”
“누구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어.”
“아니, 난희 집에 없데?”
“응, 나가고 없데.”
“어디 갔대?”
“몰라, 말 안 하고 그냥 끊었어.”
“어디 갔지?”
“오빠, 나 심장 떨려서 죽는 줄 알았어.”
“야 그만한 일로 그냐? 미 미안, 부탁들어줘서 고마워.”
문승협은 복잡한 심경으로 저녁을 먹었다. TV를 봐도 책을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하였다. 다들 집에 들어와 잠잘 시간이 됐으나 정난희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다음날 일어나서도 전화기주위를 맴돌았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공부나 하자는 생각에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입구에서 이담을 만나 입장하려고 줄 섰다. 천영기가 얇은 금태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아야, 뜬금없이 뭔 안경이대?”
“옛날부터 눈이 안 좋았는디, 요번에 수억 주고 하나 맞췄어. 으째, 잘 어울리냐?”
“응, 그럭저럭.”
“무자게 학구파 같다잉.”
“어허, 학구파 같다가 뭐여, 원래 학구판디.”
“하하, 그래, 그 안경 쓰고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지켜볼게.”
“안경 쓴께는 세상이 달라 보인다야, 느그들이 요로코롬 못생긴 지 인자 알았단께.”
“비싸고 좋은 안경만 쓰믄 뭐 한다냐, 대가리가 여전히 삐딱한디.”
“그러게, 세상을 왜곡해서 보는 것이, 나쁜 눈이 아니라 네 마음이 비틀어져 그렇구만.”
“느자구 없는 시끼들 말하는 뽄새 봐라.”
“아야,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말도 모르냐, 다 인지상정이어.”
“염병들 그만 떨고, 언능 들어가서 공부나 하자.”
아침에 선선하던 시립도서관은 정오를 지나면서 후덥지근해졌다. 무더위가 기승하는 8월의 서막이었다. 최근 군데군데 설치한 벽걸이선풍기가 온도를 끌어내리려 열심히 돌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있었음직한 천장에 매달린 실링팬까지 힘을 보태도 역부족이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창문까지 활짝 열고 사투를 벌였다. 2시가 넘어가자 더위에 지친 천영기가 도서관을 나가자고 하였다. 문승협과 이담도 기다렸다는 듯 책가방을 쌌다. 천영기가 친구집에 놀러 가자며 앞장섰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홍인고 근처 뒷개였다. 시장골목을 지나 허름한 주택가에 접어들었다. 인혜여중고와도 가까워 왕래하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천영기가 섬에서 목포로 온 친구하숙집이라며 철대문을 열었다. 방학초기라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남녀학생들이 있었다. 문간방을 활짝 열어놓고 누워있던 남학생 두 명이 천영기를 반겼다.
“왔냐, 들어오니라. 옴마, 니는 문일고그룹사운드 윙스싱어 문승협이 아니어?”
“응 맞아, 근데 그룹사운드는 이제 그만뒀어.”
“연예인 납셨네 연예인 납셨어. 느그들 알아서 인사해.”
천영기와 청화고에 다니는 염기형과 홍인고 윤공규였다. 문승협은 두 친구와 초면이었지만, 천영기는 염기형을 통해 윤공규와 아는 사이였다. 이담은 윤공규와 같은 학교라 안면이 있고, 염기형과는 처음이었다.
“느그 방학했는디 고향에는 안 가냐?”
“고향은 무슨, 엎어지믄 코 닿을 덴디, 우리가 가고 잡을 때 가믄 돼야.”
“섬놈들이 출세해 갖고, 목포로 유학까지 왔어잉.”
“염병하네, 땅덩어리로 따지믄 신안군이 목포보다 커.”
“아야, 기차가 안 다니믄 다 촌이어 촌.”
“그런 씨잘데 없는 소리 할라믄 느그집에 가.”
“어허, 압해도 섬것들이 별 유세를 떤다 참말로.”
“기형아, 느그집으로 가자, 여그서 떠들믄 하숙집아짐씨가 성질낸다잉.”
“그냥 여그 있자, 선풍기 좀 이빠이 틀어, 더워 죽겄다.”
“선풍기 틀믄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쫓아온단 말이시, 언능 느그집으로 가잔께?”
“기형이네 집은 뭐 다르대?”
“기형이네는 자취집인께, 떠들고 놀아도 암시랑 안 해, 누가 뭐랄 사람도 없어.”
“그라믄 첨부터 기형이네 자취집으로 오라 하제, 뭐 한디 이리 오라 했냐?”
“내가 그랬냐, 기형이가 그랬제?”
“아따 더워죽겄는디 오라 가라 해쌌네 참말로, 갈라믄 빨리 가자.”
친구들이 주섬주섬 일어섰다. 건넛방에 하숙하는 여학생들이 힐끔거렸다. 염기형의 야한 농담에 눈을 흘기며 문을 꽝 닫았다. 윤공규가 염기형에게 그러지 마라고 면박을 줬다. 염기형이 피식 웃으며 밖으로 나가더니 두 집 건너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 두 개에 부엌과 작은 마당이 있었다. 여동생과 둘이 자취했다.
“여동생은 어디 갔냐?”
“걔는 방학하자마자 집으로 보냈제.”
“뭐 할라고 보냈으까, 니 뭔 뻘 짓거리할라고.”
“그란께, 으째 수상타?”
“지랄들 한다 참말로, 뭘 뭐 하긴 뭐 해야, 동생은 집안일 도와야 된께 먼저 간 거여.”
“니 혹시, 그 가시나랑 빠구리할라고 그런 거 아니어?”
“느자구 없는 시끼, 하여튼 대가리에 든 것이라곤 그런 생각밖에 없제?”
“씨벌, 니 전에 빠구리 치다 나한테 걸렸잖애.”
“야, 근데 빠구리가 뭐야?”
“아따, 이렇게 떡 치는 거 말이어.”
윤공규가 왼손주먹을 쥐고 오른손바닥으로 쳤다.
“그게 뭔데?”
“야 문승협, 순진한 척하는 거여, 진짜 모르는 거여?”
“모르니까 묻지?”
“우하하하, 왐마 왐마, 천연기념물 나와 부렀네.”
“저 시끼 그 방면에 완전 백치네?”
“남자 거시기로 여자 거시기를 이렇게 하는 거, 몰라?”
염기형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고 쥐었다. 문승협은 성교를 뜻하는 은어와 행동들이 생소하였다.
“생전 처음 들어본다야.”
“이담이 니는 아냐?”
“아야, 내가 나이가 몇인디 그걸 모르겄냐.”
“영기야, 저 시끼 정말 모르냐?”
“이 시끼가 안지 모른 지 내가 우째 알겄냐?”
“좋은 건 혼자만 알지 말고, 니 친구도 좀 갈쳐줘라야.”
“알았어, 그건 내가 알아서 할란께 놔두고, 기형이 니 그 가시나랑 빠구리 친 거나 야그 해봐.”
염기형이 천영기의 다그침에 난처해하면서도 슬슬 입을 열었다. 점차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다. 천영기가 무성영화변사를 바라보듯 집중했다. 윤공규는 중간중간 침을 삼켰다. 문승협은 어색하여 방바닥만 바라보았다. 성인남녀성교는 알았으나 또래의 성경험에 충격받았다. 이담이 어느 정도 듣다가 제지하였다.
“야 담이야, 니도 잘 듣고 배워서 현진이랑 한번 해봐?”
“영기야, 더위 먹었냐, 니나 연경이랑 해라.”
“저 시끼는 이미 했을지도 몰라. 영기 니 했어 안 했어?”
“아야, 내가 가만 뒀겄냐, 폴쎄 조져부렀제.”
“아다라시디?”
“아다라시가 뭐대?”
“아다, 처녀말이어 처녀, 한 번도 빠구리 안 한 처녀.”
“저 시끼 아다라는 말도 모른 것 본께, 완전 뻥이다.”
“지랄, 해봤단께는 그러네, 못 믿겄으믄 믿지 마.”
“그라믄 첨에 가시나 거그에 널 때 반응이 으짜디?”
“뭔 반응이 있겄냐, 그냥 가만히 있제.”
“긴자꾸디?”
“긴자꾸는 또 뭔디?”
“안에서 꽉꽉 물어주고, 쫄깃쫄깃한 그런 거 안 있냐?”
“당연하제, 완전 긴자꾸여.”
“으하하하, 영기 저 시끼 완전 사기치고 있다.”
“내가 느그들한테 사기 쳐서 뭐 하겄냐?”
“아야, 가시나는 처음에 하믄 아프다고 난리여, 처녀막이 찢어져서 피도 나고.”
“긍께, 해보도 않고 알도 못한 것이 아는 체 하기는.”
“영기야, 좆도 모르믄서 탱자탱자하지 마라잉.”
“느그 아다 아끼다 똥 된다잉, 먼저 꽂은 놈이 임자여.”
“그라제, 먼저 따먹는 놈이 장땡이제.”
“연설 그만하고, 가서 냉수라도 갖고 와라, 목마르다.”
염기형과 윤공규는 성관계에 대해 잘 아는 마냥 으스댔다. 말문이 막힌 천영기가 머쓱해하며 마실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염기형이 부엌으로 가더니 한참 있다 들어왔다. 미숫가루를 타 쟁반에 받쳐왔다. 천영기가 분풀이하듯 투정했다.
“밍밍하게 이게 뭐여, 얼음 없냐?”
“염병, 요즘 얼음이 얼마나 비싼지 아냐, 금값이여 금값. 이만하믄 시원하그만 지랄이네.”
“설탕이라도 좀 갖고 와, 싱거워서 못 묵겄다.”
“그냥 처묵제 요구사항도 많네. 지둘려, 갖고 오께.”
“저건 뭐시냐, 건강다이제스트 아니어?”
“저 시끼, 저거보고 딸딸이 치는 가 본디?”
“큭큭큭, 썩을 놈, 그란 갑다.”
“뭘 쳐?”
“딸딸이. 니 설마 딸딸이도 모르는 거여?”
“그건 또 뭔데?”
“왐마 이 시끼, 진짜 천연기념물이그만잉?”
“혼자서 좆 잡고 반성하는 거, 자위 몰라?”
“모르는데?”
“뭘 또 모른디? 아나, 여그 있다 설탕.”
“아야 기형아, 이 시끼 딸딸이도 모른단다야.”
“어허, 이 시끼를 진짜 으짜스까잉, 니 그동안 고인 거 어뜨크롬 풀었냐?”
“뭐가 고여 고이긴?”
“아따 환장하겄네 참말로, 뭐부터 갈쳐야쓰까잉, 허벌나게 까깝스럽다.”
“니 포르노비디오나 야한 만화는 봐봤냐?”
“포르노비디오는 뭔지 모르고, 야한 만화는 중학교 때 친구들 보는 거 옆에서 얼핏 봤어.”
“으짜스까잉, 이 시끼 완전 남자 아다라시네?”
“영기 니는 언제 처음 딸잡았냐?”
“나는 중3 땐가 그래.”
“담이 니는?”
“나는 작년 고1.”
“느그도 도찐개찐이네, 우린 중1 때부터 했는디.”
윤공규가 자위행위를 흉내 내가며 설명하였다. 천영기와 이담은 호기심 가득한 문승협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염기형이 더 나아가 주변친구들의 성경험담을 늘어놓았다. 마치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해야 진정한 남자라는 듯 자랑했다. 자연스럽게 섬이나 시골에서 나온 친구들의 하숙과 자취 생활로 옮겨갔다. 술담배는 예사로운 일이라고 하였다. 문승협입장에서는 누가 봐도 탈선한 청소년들이었다. 모든 게 처음 듣는 이야기라 놀랐다. 윤공규가 담배를 꺼내 피웠다. 연기를 입에 머금고 입술을 동그랗게 하여 혀로 밀어냈다. 다시 한 모금 빨아 입술을 작게 오므려 검지손가락으로 볼을 톡톡 쳤다. 담배연기로 도넛형태를 만드는 기술을 뽐냈다. 천영기가 보다 못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따라 배우려고 몇 차례 시도했지만 실패하였다. 선풍기를 돌려놓고 그럴듯하게 도넛모양을 만들었다. 염기형이 동그란 도넛연기밑에 머리를 가져가 양손으로 날갯짓하며 천사라고 했다. 윤공규가 입을 다물고 코로 연기를 내뿜어 거북선이라며 낄낄거렸다. 문승협과 이담은 담배연기가 매워 인상을 찌푸렸다. 연기를 날려 보내려고 손을 허공에 연신 저었다. 한번 해보라는 권유를 냉철히 거절하였다. 염기형 주도로 건강다이제스트를 펼쳐보며 여자의 얼굴과 몸매를 품평했다. 숨겨 논 여자나체와 성교하는 야한 사진을 꺼내 감상하였다. 성인비디오를 틀어주는 심야다방이 있다며 포르노비디오를 소재로 떠들었다.
“그 심야다방은 어딨데?”
“영기야, 땡기냐?”
“염병, 그냥 물어본 거여.”
“중앙시장 가찹게 있는디, 으째, 갈쳐주까?”
“아야 됐다 됐어, 그거 하나 안다고 겁나게 뻐기네, 그 근처 어딘가 있겄제.”
“거그 아무나 못 들어간다잉, 갈라믄 이 성님 모시고 가야 입장이 돼.”
“지랄, 니가 들어간디 내가 왜 못 들어간대?”
“거그는 성인만 입장돼야, 니는 가봐야 들어가도 못해.”
“니는 아?”
“나는 우리 성꺼 대학교학생증이 있잖애, 그거 가져가믄 무사통과여.”
“나도 기형이 따라서 가봤는디, 늦으믄 자리도 없어.”
“니는 뭔 학생증인디?”
“학생증 안 갖고 왔다믄서 기형이랑 친구란께는 그냥 입장시켜 주드라.”
심야다방으로 질문이 오가는 중에 염기형의 고향친구들 남녀 두 쌍이 찾아왔다. 문승협일행은 방이 비좁기도 하고 어색한 초면이라 인사만 나눈 뒤 집을 나왔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다시 시립도서관으로 향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아 걸었으나, 금세 땀이 등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뜨거운 햇볕에 큰길 아스팔트가 군데군데 녹아있었다. 도로에 복사열이 올라와 숨이 턱턱 막혔다. 문승협에게는 염기형과 윤공규가 마치 다른 세계 아이들 같았다. 섬이나 시골에서 온 아이들은 다 그런지 궁금하였다. 선입관 해소차원에서 천영기에게 물었다.
목포에서 타지생활하는 대부분 학생들은 자취 또는 하숙을 했다. 친척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도 하였지만, 불편하고 신세 지기 싫어지면 결국 자취나 하숙을 택했다. 다 그런 건 아니나 목포로 올 정도면 나름 재력 있는 집안이었다. 부모통제가 없는 데다 씀씀이가 헤퍼 탈선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체로 친구들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서였다. 간혹 이런 사실을 간파한 부모들이 하숙집에 자식통제를 신신당부하였다. 그만큼 엄한 하숙집주인을 선호했다. 학생들이 순응할리 만무하였다. 처음에는 하숙집생활에 잘 적응하다가도 자취로 옮겼다. 비용을 줄인다는 명목 등 갖은 핑계를 댔으나, 제약 없는 자유로운 생활이 목적이었다. 역시 문제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쉬운 환경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호기심에 술담배는 물론이고, 남녀를 집에 들여 성관계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부모가 예고하고 방문하면 난리법석이었다. 쌓아놓은 술병과 담배꽁초를 치우는 등 청소하랴 환기하랴 바빴다. 느닷없이 방문한 부모에게 들켜 야단맞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엄마면 다행이나 아버지에게 들킨 날엔 매질을 당하였다. 더러는 고향으로 끌려갔다.
천영기가 일반론적인 이야기일 뿐 착한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압해도가 고향인 염기형과 가까이 지내어 내막을 잘 알았다. 문승협은 섬과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가 없어 몰랐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어른들 말을 실감하였다. 천영기는 다양한 친구들이 많았다. 문승협은 천영기를 통해 새로운 친구들을 알아갔다. 때론 이질감에 불편한 친구들도 있었다.
“야 천영기, 설령 성관계를 했어도 그렇지, 연경이 이미지가 있는데 그걸 말하면 어떡해?”
“니는 말을 말어, 딸딸이도 모르는 시끼가 뭘 안다고 씨부려쌌냐.”
“그거 빨리 알고 먼저 하는 게 무슨 벼슬이야?”
“아야 영기야, 승협이 말이 맞어, 그 아그들이 연경이 보믄 뭔 생각하겄어?”
“상상은 자유여, 말릴 수 없는 것이 상상이고.”
“염병, 니가 상상하게 만들어 놓고 지랄하냐?”
“음마, 으째 담이 니가 성질이냐?”
“야, 나랑 현진이랑 그랬다고 치자, 아니다 말을 말자.”
“나는 담이가 무슨 말하려는지 알겠어, 나 연경이 만나면 민망할 거 같아.”
“아따 시끼들, 연경이랑 안 했어 안 했다고, 됐냐?”
“난 이해를 못 하겄다, 그거 하믄 부끄러워서 입에 올리기도 뭐 한디, 자랑질하다니 말이어.”
셋은 간접적으로나마 여자친구와 성관계에 대한 입장을 말했다. 미성년으로서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의식은 있었지만, 성관계를 할 수도 있다는 걸 무의식 중에 인정하였다. 혈기왕성한 청춘이라 성적호기심이 점점 부풀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었는데도 시립도서관은 여전히 무더웠다. 잠시 더위를 피해 친구집에서 놀다가 시원해질 무렵 돌아와 공부하겠다는 계획은 무위였다. 푹푹 쪄서 집중할 수 없었다. 매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 책상 앞에 다시 앉았으나 마찬가지였다. 3시간가량 더 버티다 책가방을 쌌다. 폭염 속 도서관을 탈출하여 각자 집으로 갔다.
문승협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전화온건 없었는지 물었다. 전화에 집착할 정신을 공부에나 쓰라고 엄마에게 핀잔 들었다. 동생들은 묵묵부답 외면하였다. 기다리던 정난희전화가 오지 않아 서운함이 컸다. 잠자리에 누우니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 순간 음탕한 생각에 빠진 것을 자각하고 따귀를 툭 쳤다. 낯에 보았던 여자나체와 성교 사진이 자꾸 떠올랐다.
새벽 무렵부터 여름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정오가 되어 구름이 걷혔다.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어제 못한 공부를 하러 나섰다. 비 온 뒤 세상이 청량하게 느꼈다. 비에 씻겨진 아스팔트가 깨끗했다. 시립도서관 앞에서 홍지아를 만났다. 그동안 갖고 다녔던 윙스공연카세트테이프를 주었다.
“우와, 울엄니 엄청 좋아하겠다, 그렇잖아도 빨리 받아오라고 난리였는데.”
“하하, 어머님께 늦게 드려 죄송하다고 전해주라.”
“뭔 소리여, 이렇게 잊지 않고 챙겨준 게 어딘디.”
“에이 아냐, 빨리 드렸어야 했는데 많이 늦었어.”
“나도 하나 복사해서 갖고 다니며 들어야겄다.”
“어 어른들께서는 잘 계시지?”
“응, 너무 건강해서 탈이다.”
“모레 덕유산잼버리는 가니?”
“당연하지, 바늘이 가는데 실이 따라가야제.”
“고 공부하러 왔어?”
“그럼, 도서관에 공부하러 왔지 너 보러 왔을까?”
“…….”
“너 지금 어디 쳐다보냐?”
“응?”
“너 자꾸 내 가슴을 쳐다보는 거 같다?”
“아 아냐, 무슨, 내가 언제?”
문승협은 홍지아를 만난 순간부터 가슴에 눈이 갔다. 무심코 보다 들켰지만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음마, 당황하는 것이 더 수상한디?”
“아냐, 그 단추나 좀 채워라, 속살 보이게 그게 뭐냐?”
“너 안 본 사이에 응큼해졌다, 아니다, 이팔청춘이니 정상인가?”
“어휴, 그 그런 거 아니야. 여자가 조신해야지, 빨리 단추나 좀 채워.”
“네가 좀 채워주라, 자.”
“왜 이래 진짜, 빨리 네가 채워.”
“호호호, 귀여워. 그런데 말이야, 네가 내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웬 관섭이야?”
“야, 내가 너한테 그런 말도 못 해?”
“나 헷갈리게 하지 말고, 가서 정난희나 잘 단속하시게, 알았나.”
“왜 거기서 삼천포로 빠지냐, 단추 좀 채우라는데.”
“알았다 알았어, 채우면 될 거 아냐. 더워서 좀 풀었구만, 난리네 그냥.”
“그래 됐어, 들어가자.”
“승협아, 내 가슴 어땠어?”
“야, 그만해.”
“호호호, 왜, 네가 아까 유심히 봤잖아.”
“내가 언제?”
“응큼한 놈, 이제 남자가 됐나 부네.”
“나 원래부터 남자였거든.”
“오구오구 그랬어요, 호호호.”
“야, 너 성추행이다.”
“그래, 신고해라 신고해, 네 궁둥이라도 실컷 만지고 감방 가련다.”
홍지아가 서슴없이 문승협의 엉덩이를 두드렸다. 얼굴 빨개져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도서관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게슴츠레 흘겨보았다.
문승협은 어제 친구자취집을 다녀온 이후 생각과 행동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친구들과 도서관매점에 가면서 자꾸 여학생들에게 시선이 갔다. 외모와 몸매를 힐끗힐끗 쳐다보게 되었다. 음흉한 생각에서 벗어나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친구자취집에서 있었던 일이 쇼크였다. 그로 인한 강박과 편집증적 증세를 자각하였다. 유혹을 떨쳐버리려고 스스로를 통제했다. 먼저 주문한 얼음 띄운 오렌지주스를 들고 야외휴게실로 갔다. 문일고 같은 반인 이병규와 장기원이 한적한구석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흔한 장난을 넘어 뭔가 예사롭지 않았다. 이병규가 우는 듯해 가까이 갔다.
“이병규, 왜 그래?”
“이 씨끼가 자꾸 뺨을 만지드만 키스할라고 난리냐.”
“아야, 니가 이쁘게 생겼은께 이 성이 이뻐해 준거여.”
“기원아, 병규가 싫다는데 하지 마라야.”
“아따, 친구가 좋아갖고 그런 건디 그라냐.”
“근다고 혓바닥을 내밀고, 드럽게 얼굴에 침 묻히냐?”
“야 장기원, 너 변태냐, 왜 그래?”
“시끼, 장난 좀 친 것 같고 별나게 유난 떠네.”
이병규는 작은 키와 하얀 피부에 예쁜 여자아이처럼 생겼다. 가녀린 목소리로 싫다는 의사표현도 소극적이었다. 강압에 눌려 저항을 두려워하는 눈빛이었다. 문승협의 관심을 용기 삼아 대꾸하였으나, 장난으로 치부하는 장기원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 봐 두리번거렸다. 소심하게 장기원을 밀쳐내고 후다닥 도서관 안으로 갔다. 장기원이 뛰어가는 이병규뒷모습을 보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어쩌라고 하는 표정으로 문승협을 빤히 쳐다봤다. 문승협이 한마디 하려 하자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뒤따라 온 천영기와 이담이 무슨 일인지 물었다.
“장기원이가 괴롭혔나 봐.”
“그 아그는 누군디?”
“아, 우리 반 친구.”
“어뜨크롬 괴롭혔대?”
“자세한 건 모르겠어.”
문승협은 이병규입장을 생각해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과 시원한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열람실로 들어갔다. 여름비가 내린 뒤 햇볕이 쨍쨍하자, 습도가 높아져 훨씬 더 후덥지근하였다. 밤에는 열대야현상으로 여간 공부하기 힘들다.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하나 둘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문승협은 며칠 지나고 충격받았던 성적강박에서 점차 해방되었다. 인간에게 성행위는 당연하며 건전해야 한다는 책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했다. 문란한 성생활이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 고등학교 2학년 남자의 성적호기심은 내재됐지만, 일생생활에서 집착은 없었다. 그렇게 한 단계 더 성숙해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