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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별 – 2권 1부 27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첫사랑? - (27)

by 태양을 품은 별

일주일이 지나가는 동안 정난희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문승협이 도서관에 가려고 나서다 대문우편함에 꽂혀있는 항공우편을 발견하였다. 중국외항선원 진춘陈春의 편지였다. 5년 전 국민학교 6학년 이후 오랜만이었다. 인도를 마지막 여정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가업을 잇겠다던 마지막소식이 기억났다.

시립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봉투를 열었다. 진춘은 상해와 닝보, 대련을 오가며 계획에 충실했다. 예전 문승협의 하얀 고무신은 잘 있는지 물었다. 조부모와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동봉하였다. 문승협은 집에 가서 답장을 쓰기로 하고 ‘수학의 정석’을 펼쳤다. 점심시간까지 3시간을 꼼짝없이 앉아 공부했다. 마치 1시간이 10분 같았다. 시간의 왜곡은 몰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왠지 마음이 뿌듯하였다.

천영기가 점심 먹으러 가자고 문승협과 이담을 불러냈다. 동네친구이자 학교친구라며 김일광을 소개했다. 넷이 도서관매점으로 가 라면을 주문하였다. 김일광은 부리부리한 눈에 말이 많은 편이었다.

“아그들아, 나 깔따구 만들라믄 어뜨크롬 해야 쓰까?”

“일광이 니, 요즘 허벌나게 가시나를 밝힌다잉.”

“내가 밝히믄 뭐 한다냐, 내가 찐따로 보인가, 가시나들이 쳐다도 안 본디.”

“지랄, 그런다고 자신을 학대하고 절망하믄 쓰냐.”

“느그 셋 다 깔따구 있는디, 나만 없은께 하는 말이어.”

“영기랑 담이는 그렇다 치고, 나 여자친구 있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니 으째 나 째려보냐, 나는 말 안 했어야.”

“예끼 시끼, 니하고 정난희랑 사귄다는 거는 삼청동자도 다 알제.”

“니 내가 말한 줄 알았제?”

“응, 여기서 입 가벼운 사람이 천영기 너 말고 없잖아.”

“염병하네, 천영기입은 중천금이란 말도 모르냐?”

“푸하하, 천영기입은 풍선껌이겠지. 제발 부탁인데, 어디 가서 난희랑 나랑 사귄다고 말하지 마라.”

“근디, 사귀믄 사귀는 것이제, 으째 그리 민감하냐?”

“긍께 말이다, 정난희한테 꽉 잡혀 갖고는 그냥.”

“아야, 나는 그것도 부럽다야. 꽉 잡혀도 좋은께, 깔따구만 있으믄 원이 없겄다.”

“어이 심성만착한 김일광씨, 오늘 라면은 니가 사라. 그라믄, 이 성님이 교육 좀 시켜주께.”

“오케바리, 속는 셈 치고 내가 내께.”

“니는 첫째 그 풍기는 인상이 문제여, 그렇게 근엄하게 있지 말고 좀 쪼개란 말이시.”

“원래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그란디 으짜겄냐, 남자가 느그들멩키로 가시나같이 이쁘게 생기믄 쓰냐?”

“어허, 니 말이 무지하게 어패가 있다야. 니 말이 맞으믄, 우리가 짝지가 있겄냐?”

“음마, 그건 또 그런다잉.”

천영기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어렵게 설명했다. 소위 천영기연애학개론이 시작되었다. 주문한 라면이 나오면서 잠시 끊겼으나, 김일광은 그렇잖아도 큰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고 집중하였다.

요약하면 남녀생각차이의 연애프로세스가 핵심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호감이 생기면 바로 대시하는 반면, 여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서 아는 남자로 인식한다. 여기서 발전해 친숙한 남자가 되었다가, 남자가 고백하면 연인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즉 남자들이 성급한 나머지 여자들 감정을 무시해 그르친다는 논리였다.

“가시나는 그냥 얼굴 좀 아는 정도인디, 쌩판 모르는 머시마가 느닷없이 꼬실라고 덤벼들믄 으짜겄냐. 무서워서 냅다 도망가부러, 긍께 가시나랑 보조를 맞춰야 성공하다 그 말이여.”

“나는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겄다.”

“당연하제, 그란께 니 같이 눈치 없는 연애고자들이 맨날 실패하는 것이어.”

“고자라니, 말이 좀 심하잖애.”

“일광아, 고스톱만 연구하지 말고, 여자를 좀 연구해.”

김일광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자를 소개해달라고 졸랐다. 천영기가 소개팅을 시켜준다는 약속으로 마무리지었다.

“으째, 라면값으로 소개팅이믄 충분하제?”

“그람, 차고 넘치제. 소개팅 잘되믄 라면으로 약소한께, 내가 또 한턱 쏘께.”

“아따, 나는 양복 한 벌 얻어 입을란갑다.”

“진짜 잘되믄 양복 한 벌이 문제여, 더한 것도 해주께.”

“우리는, 우리는 뭐 없냐?”

“느그는 뭐 했다고야?”

“나랑 승협이랑 방해하믄, 솔찬히 어려울 것인디?”

“염병하네. 알았다 알았어, 느그도 한몫해주께, 됐냐?”

“허허허, 진작 그럴 것이제.”

“그건 그렇고, 승협이 니는 으째 윙스 그만두냐?”

“아, 그냥, 그럴만한 일이 좀 있어.”

“어허, 친구끼리 뭔 비밀이까?”

“어허, 애들은 알면 다쳐, 모르는 게 약이야.”

“그라고 본께, 니 오늘 무자게 열심히 공부하드라잉?”

“하하, 너희도 집중을 통해서 시간의 왜곡을 느껴봐.”

“뭔 소리 다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몰두해서 공부하니까, 3시간이 30분 같더라.”

넷은 잡담을 마무리하고 자리에 돌아가 공부했다. 해질 무렵 각자집으로 갔다.

문승협은 저녁식사 후 일전에 사둔 항공봉투와 편지지를 꺼냈다. 그룹사운드윙스공연이야기, 여자친구가 생겨서 정난희와 등산 갔던 일, 가수가 되어 활동하는 이자연의 동정까지, 그동안 있었던 굵직한 소식으로 진춘에게 답장을 썼다.

월요일 등교하면서 목포우체국에 들러 항공우편을 붙였다. 일과시간은 탈없이 지나갔지만, 야자시간에 교무실이 소란스러웠다. 공안경찰들이 들이닥쳐 목포지하서클주도혐의로 김생출선생을 연행하였다.


다음날 지난해 발생한 부림사건판결이 매스컴을 탔다. 대구지법에서 부림사건에 연루되어 3차로 구속기소된 3명을 재판했다. 서석구판사가 국가보안법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는 등, 눈에 띄는 판결을 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검찰이 1명에게 징역 10년, 다른 2명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였다. 서석구판사는 징역 1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선고유예를 각각선고했다. 검찰구형에 비해 무척 가벼운 형량으로 좌천 등 시련을 각오한 심판이었다. 무엇보다 학림사건의 2심 재판부와 완전히 달랐다. 최장 78일 동안 불법구금한 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한 수사진의 불법행위가 재판에서 폭로됐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무기징역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한 것과 딴판이었다. 부림사건변론을 맡았던 고졸출신 이름 없는 변호사 노무현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김생출선생이 잡혀가고 한 주가 지나가는데도 조용하였다. 학림사건과 부림사건처럼 독서회를 만들어 운동권학생들과 서클활동을 해서 끌려갔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학교에서는 전교반장부반장들을 불러 모아 동요하지 않도록 단속하기에 급급하였다.

월출산산행을 다녀온 지 2주가 되어 갔다. 정난희에게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토요일방과 후 문승협과 김부일은 시립도서관을 가려고 버스맨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목화여고정류소에서 한 무리 여학생들이 탔다. 문승협이 무의식적으로 정난희가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다. 2, 3학년으로 보이는 여고생들이 문승협을 힐끔대며 속닥였다. 김부일이 문승협옆구리를 툭 쳤다.

“난희 찾냐?”

“아 아니야.”

“뭐가 아니어 아니긴, 맞그만.”

“아니야, 그냥 아는 사람 있나 본거야.”

“음마, 감출걸 감춰라.”

“하하, 혹시나 해서.”

“아야, 그렇게 보고 싶으믄 연락해.”

“아냐, 괜찮아.”

“니는 다 똑똑한디, 정난희한테만 쪼다된다잉.”

“임마 그럴 수도 있지, 너도 채영이 앞에서 그러잖아.”

“연설하네, 연락하기 곤란하믄, 연락 오길 기다리지만 말고 찾아가든가.”

“어딜 찾아가냐?”

“집이든 어디든, 보고 싶으믄 어딘들 못 가겄어?”

“언제 올 줄 알고.”

“염병, 죽치고 기다리믄 언젠가는 오겄제, 이것저것 재다가 뭔 일 하겄냐?”

“부일아, 나 어디 좀 들렀다 갈 테니까, 너 먼저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있어.”

“어디 간디야?”

문승협은 김부일말에 정난희무용실이 생각났다. 때마침 버스가 YMCA근처정류소에서 정차했다. 정난희를 보고픈 마음에 불쑥 용기가 났다. 막상 버스에서 내리긴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다. 무용실이 있을 곳으로 추측되는 YMCA건물 쪽으로 갔다. 그저 정난희와 마주치기만 바라며 주위를 오갔다. 근처를 배회하다 무용실을 찾아보려고 YMCA건물로 들어갔다. 맨 위층까지 살펴봐도 비슷한 곳조차 없었다.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뜻밖에 남강과 박현 선배를 마주쳤다.

“니 여그서 뭐 하냐, 탁구 치러 왔냐?”

“안녕하세요, 여기 탁구당도 있어요?”

“잉, 여그 지하에.”

“아, 지하도 있구나. 그럼 혹시 무용실 어딘지 아세요?”

“무용실은 모르겄는디.”

“느그들 일찍 왔다잉.”

“아 윤수야, 여그 무용실 있냐?”

“여그는 없고, 옆 건물에 뭔 무용연구소 하나 있어.”

“승협아 인사해라, 신윤수라고 목포시 탁구선수여.”

“안녕하세요, 문승협입니다.”

“잉 알어, 문일고 다니는 문승협이.”

“같이 가자, 윤수한테 한 수 지도도 받고.”

“먼저가계세요, 저는 잠깐 일 좀 보고 갈게요.”

“그라믄 가서 한 게임하고 있을란께, 언능 일 보고 와.”

문승협은 길 건너 맞은편으로 갔다. 옆건물을 유심히 살펴보니 3층 유리창에 무용연구소라는 글씨가 보였다. 정난희가 다니는 무용연구소는 YMCA옆건물 3층에 있었다. 정난희를 만난 것처럼 흥분되었다. 건물입구만 주시하고 있으면 정난희를 보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양갈래로 머리를 딴 여학생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봐도 무용하는 학생들이었다. 곧이어 무용가방을 어깨에 맨 여학생 세 명이 건물 쪽으로 걸어왔다. 그중 한 명이 정난희였다. 다가가 알은체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정난희가 당황하고 화낼게 뻔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설렘과 조바심 속에 눈이라도 마주치길 바랐으나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한참 더 서성였다. 혹시나 싶어 3층 유리창을 여러 차례 바라보았다. 선배들이 기다리고 있어 마지못해 발길을 옮겼다.

탁구장은 의외로 한산하여 선배들밖에 없었다. 박현과 신윤수가 경기 중이었다. 남강이 문승협에게 탁구라켓을 건네며 실력을 한번 보자고 하였다. 문승협은 초보 수준이었다. 신윤수가 압도적인 점수차로 이겼다. 경기를 끝낸 박현이 남강에게 음료수내기게임을 제안했다.

“아야, 쪼잔 하게시리, 음료수값 갖고 되겄냐?”

“아따, 용돈 좀 탔는갑다잉.”

“그러지 말고, 음료수값에다가 오늘 게임비까지 전부 똘똘말이하자.”

“어허, 용기는 가상타마는, 니 용돈은 아껴써야제.”

“음마, 쫄았냐? 아마도, 나가믄서 저그 프론트 앞에 슬 사람은 너일 것이다.”

“니 여그서 용돈 다 써불믄, 나중에 써니랑 데이트비 없어서 으짤라고 그라냐?”

“염병, 혹시 내가 져도 용돈 떨어질 일은 없은께, 염려 붙들어 매부러.”

“뭐 그렇다믄야, 도전받아주께. 21점 단세트, 오케이?”

“오케바리.”

“하여튼, 느그 둘은 게임보다 말빨이 앞서서 큰일이다.”

“니는 헛소리 말고 승협이랑 굿이나 보고 떡이나 묵어.”

“허허허, 우리야 땡큐제. 승협아, 니는 라켓 들고 내 공 한번 받아봐.”

“네.”

“장기원이랑 김영후는 잘 치드만, 니는 못 치냐?”

“네, 그 친구들하고 몇 번 쳐본 게 다예요.”

신윤수가 문승협에게 탁구기본동작을 가르치면서 두 달 전 코롬방제과점사건을 불쑥 꺼냈다. 정난희를 사이에 두고 발생한 문승협과 낯선 남자들의 시비였다. 문승협이 살짝 놀라 어떻게 아는지 물었다.

“그날 그 아그들이 여그 와서 야그 했어. 정난희랑 만난 놈이 나랑 친구고, 다 영훈고 다니는 놈들이어.”

“아, 그래요?”

“그 아그들이 나랑 친군께, 옛날부터 여그 탁구장을 수시로 들락날락했어. 그러다 근처길거리에서 정난희를 봤는디, 그때부터 꼬실라고 주구장창 추근댔제, 정난희는 항시 쌩까불고.”

“정난희가 싫다고 했대요?”

“잉, 그냥 무시해 불고 대꾸조차 안 해. 그날도 코롬방서 느그랑 그런 후에 정난희가 최후통첩을 했단다야.”

“뭐라고요?”

“남자친구 있다고, 문일고그룹사운드윙스리드싱어 문승협이랑 사귄다믄서, 더 이상 쫓아다니지 마라고.”

“그런 말을 했대요?”

문승협은 거절하였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더군다나 소문나는 걸 무척 싫어하는 정난희가 문승협의 이름까지 거명하다니 뿌듯했다. 당시만 해도 문승협집을 방문하기 전이어서 사귈지 말지 결정 못한 시기였다.

“그란디, 그놈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믄서 체념을 안 해.”

“네?”

“허허, 놀라기는. 그때 마침 탁구장에 니 선배들이 들어오길래 내가 말했어. 그란께는 남강이랑 박현이 니를 후배라고 편들드만, 그놈한테 건들지 마라고 엄포해서 포기시켰어. 인자 걱정할 것 없어, 신경 꺼 부러.”

“윤수선배도 영훈고 다니세요?”

“아니, 나는 청화고여.”

“그럼, 혹시 2학년 천영기 아세요?”

“잉, 나랑도 꽤 친해.”

“제 친군데, 다음에 같이 탁구 치러 올게요.”

“잉, 항시 여그 있은께 놀러 와, 우리 누나랑 매형이 하는 탁구장이어.”

남강과 박현이 하프코트를 바꿀 즈음 아웃이다 아니다 실랑이하였다. 신윤수가 심판을 보겠다며 옆 탁구대로 갔다. 문승협은 라켓을 내려놓고 선배들 시합을 구경했다. 그 친구들을 단념시켜 준 선배들이 고마웠다. 그날 이후 선도부장 박현선배가 등교시간교문에서 불러 세운 이유도 알았다. 문득 좀 전에 무용실을 물어본 것이 떠올랐다. 남자친구가 아직도 여자친구무용연구소를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자존심 상하였다.

두 사람의 경기는 21대 18 스코어로 끝났다. 승리한 박현이 음료수를 마시며 좀 더 배워오라고 놀렸다. 땀을 닦으며 툴툴대던 남강이 자극받아서 한 게임 더하자고 했다. 물러설 박현이 아니었다. 문승협은 약속이 있어 먼저 가겠다며 탁구장을 나섰다. 탁구를 배우다 만듯한 아쉬움을 접고 서둘러 시립도서관으로 향하였다.

천영기와 이담이 열람실을 돌며 두리번거리는 문승협을 발견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휴게실로 데려갔다.

“야, 부일이 못 봤냐?”

“30분쯤 전에 채영이랑 나갔어, 니 오믄 먼저 간다고 전해달라드라.”

“뭐 하고 인자 왔냐?”

“아, 어디 좀 들렀다 오느라.”

“어디야?”

“있어.”

“니는 으째 똥 싸고 뒤처리 안한마냥, 말을 하다 마냐?”

“부일이가 그러드만, 니 난희 찾으러 갔다고.”

“아니야, YMCA 탁구장 갔다 왔다, 됐냐?”

“에헤이, 거짓갈하고 있네, 그 옆 건물에 난희네 무용연구소 있잖애.”

“뭐야, 너 알고 있었어?”

“아야, 내가 모르는 것이 있다냐. 목포의 모든 것은 천영기로 통한다, 그 말 몰라?”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염병, 니가 물어봤냐? 당연히 니가 아는 줄 알았제.”

“…….”

“그래서, 난희는 만났냐?”

“담이야, 이형님이 탁구장 다녀왔다고 했냐 안 했냐?”

“아따 이 시끼, 오늘따라 뭔 거짓갈을 이렇게 해 싼대?”

“긍께 말이어, 그것도 금방 뽀록날 것을.”

“야 천영기, 너네 학교 신윤수선배 알지?”

“잉. 아 맞다, 거그 탁구장이 윤수선배네 누나가 한다.”

“이제 내 말 믿겠냐?”

“그건 또 다른 야그제, 그 성이 유명한 탁구선수인께 소문으로도 알 수 있는 거고.”

“맞어, 탁구에 일도 관심 없음시로 뜬금없이 말이어.”

“우리 학교 남강선배 하고 박현선배랑 갔다, 윤수선배한테 탁구도 배웠고.”

“음마, 갑자기 신뢰도가 확 높아져분다잉.”

“나중에 너랑 놀러 오래. 이만하면 알리바이 됐냐?”

“됐긴 됐는디, 백 프로 의심이 풀리진 않았제.”

“와, 내가 죄지었냐? 지금 같이 가서 물어볼까?”

“됐다 됐어, 믿으께.”

“그래, 믿어 주께. 근디, 거짓갈은 언젠간 뽀록난다잉.”

문승협은 정난희를 보러 갔다 해도 되는데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웠다. 정난희와 사귀는 사이에 만나자는 전화를 자유롭게 못하는 데다, 여자친구무용연구소가 어딘지 모르고 무작정 찾아간 처지가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정난희를 마뜩잖게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더욱 나쁜 이미지를 심어줄까 봐 싫었다.

셋은 소소한 잡담으로 만난 회포를 풀고 열람실에 올라가 공부했다. 저녁시간즈음 김부일이 채영이와 다시 등장하면서, 낮에 있은 문승협증발소동이야기가 재현될뻔하였다. 채영이가 눈치 빠르게 김부일입을 막아 간신히 넘어갔다. 천영기가 다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고 했다. 셋은 저녁을 먹고 온 김부일과 채영이를 남겨두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천영기가 안내한 식당은 시립도서관에서 멀지 않았다. 선창가 근처 전골집에 류연경과 한현진이 먼저 와있었다. 문승협이 컵에 물을 따라 나누자, 한현진이 수저를 놓았다. 천영기가 다른 사람의사와 상관없이 김치전골대자를 주문하였다.

“어이 영기씨, 으째 묻지도 않고 니 맘대로 시키냐?”

“여그는 김치전골이 최고여, 여그 오는 뱃사람들은 다 김치전골만 시킨 단께.”

“승협이랑 나는 그런다 치고, 연경이나 우리 현진이한테 물어는 봐야제.”

“담아, 난 암시랑 안 해, 괜찮해.”

“담이 니는 뭔 말이 그리 많냐, 우리가 원투데이 만난 것도 아닌디.”

천영기와 류연경은 무뚝뚝해서 각자 알아서 했다. 이담과 한현진은 서로를 챙기는 편이었다. 다섯 명이 함께 만난 건 한 달 만이었다.

“으째, 난희도 부르제 그랬냐?”

“아, 요즘 무용 때문에 바빠서.”

“저번에 우리랑 만난 뒤로 재미난 소식은 없냐?”

“맞어, 지난번 난희가 니네 집에 다녀갔다고 했잖애.”

“그건 승협이가 말한 것이 아니고, 나한테 들킨 거여.”

“영기 니는 자발떨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잉, 우리 여자들이랑 승협이랑 대화여.”

“별다른 일 없어, 그냥저냥 그래.”

“둘이 자주 만나고?”

“하하, 그렇지 뭐.”

“시끼, 할 말 없으믄 꼭 웃음으로 때운다잉.”

한현진이 혼자인 문승협을 의식해 말을 걸고, 류연경은 정난희소식이 궁금해 물었다. 천영기가 문승협에게 답답함을 숨기지 않았다. 어색한 상황에서 김치전골이 나왔다. 한현진이 전골을 떠 일일이 나눠줬다. 천영기와 류연경은 먹기 시작하고, 이담과 문승협은 한현진그릇에 떠담을 때까지 기다렸다. 류연경이 반찬으로 나온 깻잎을 먹으려고 집었다. 겹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문승협은 무심코 아래깻잎을 잡아주려다 밥 먹느라 정신없는 천영기를 보았다.

“야 영기야, 너만 먹지 말고 연경이 깻잎 좀 잡아줘라.”

“니가 좀 떼줘, 나 시방 배고파 디지겄다.”

“내가 하면 좀 그렇잖아, 남자친구가 돼가지고 혼자 먹기 바쁘냐?”

“연설하네 진짜, 아무나 잡아주믄 으짠다고.”

“니가 해주믄 나도 맘 편하제, 남자친구라고 있는 것이 지 밖에 몰라 그냥.”

문승협과 천영기가 깻잎으로 왈가왈부하였다. 류연경이 천영기에게 섭섭해했다.

“담이 하는 거 보고 좀 배워라, 반찬도 놔주고 깻잎도 잡아주고, 얼마나 다정하냐.”

“어이 승협씨, 다정도 병인가 하노라, 연경이가 손이 없냐 발이 없냐?”

“하하, 고려충신 이조년시조를 고따구로 써먹냐?”

“깻잎 갖고 논쟁할 필요가 뭐 있어, 남자든 여자든, 지 애인한테 그냥 떼 달라믄 되제.”

“긍께 말이다, 즈그 애인한테 눈을 뗀 것이 문제여.”

“그래도 애인친구한테 배려라는 게 있잖애?”

“뭔 배려야, 애인사이에 껴 밥묵으믄서, 그거 갖고 배려 운운한 게 이상한 것이어.”

“맞어, 커플사이에 혼자 있다고 배려를 바라는 친구는 없을 것인디?”

“오메 오메, 느그 똥 굵다, 아조 천생연분 나셨네.”

이담과 한현진이 자기들 방식을 예로 들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류연경이 부러워하며 핀잔주었다. 문승협은 두 쌍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여자친구를 사귀기 전에는 잘 몰랐다. 옥신각신하더라도 여자친구와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정난희와 함께였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에 속상하였다. 남들 앞에서 이담커플처럼 보살펴주고 보살핌 받고 싶었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식사를 마쳤다. 천영기가 유달산시민공원에 바람 쐬러 가자며 앞장섰다. 이담이 막바지 공사로 어수선할 거라면서도 뒤따랐다. 문승협이 망설이는 사이 시립도서관옆길에 접어들었다.

“얘들아, 너희들끼리 다녀와, 나는 도서관에 들어가서 공부나 할게.”

“아야 같이 가, 니가 언제부터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다고 그라냐.”

“그래, 금방 밥 묵었는디 소화 좀 시켜야제, 같이 가자.”

“맞어, 밥묵자 마자 책상 앞에 앉는 거 아니어.”

“으째, 난희없이 혼자라서 그라냐?”

“하하, 아니야. 넷이서 다녀와, 오늘은 좀 그렇다.”

천영기가 별스럽게 굴지 마라며 이끌었다. 이담과 한현진이 건강을 핑계로 설득하고, 류현경은 문승협속마음을 간파했다. 문승협은 커플끼리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은 문승협입장을 이해하였다.

문승협이 쓸쓸히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성문종합영어를 펼쳤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달산으로 데이트 간 친구들이 떠올랐다. 멍하니 정난희생각에 빠졌다. 억지로 공부에 몰입하려 노력해도 쉽지 않았다.

결국 책가방을 싸서 집으로 향했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외롭게 서있는 가로등이 마치 자기 모습 같았다.

문승협이 거실에 들어서자, 엄마 이항리가 독수리눈썹을 하고 째려보았다. 손에는 문승협속옷이 들려있었다. 정난희와 월출산을 다녀온 날 몽정하여 새벽녘 갈아입은 팬티였다. 문승협은 놀라고 창피해 안절부절못하였다. 왜 빨래를 옷장에 숨겼냐며 혼났다. 그때그때 빨래통에 넣으라는 지시와 다시는 그러지 말라는 호통을 들었다. 문현아와 문윤아가 야단맞는 오빠모습을 눈으로 즐겼다. 문승협은 여동생들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중학교 때 서수연선생의 성교육을 회피한 것이 후회되었다.


김생출선생이 일주일 만에 무혐의로 풀려났다. 혹사를 당했는지 예전과 다른 표정이었다. 말이 많아서 학생들이 붙인 ‘말하지 마 간디’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말수가 줄었다. 동료선생들이 경찰서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도 웃기만 할 뿐 묵묵부답이었다.

김생출선생일로 어수선한데 커닝사건까지 발생해 교무실이 들썩였다. 수학방정식과 영어 ABC도 잘 모르는 학생들 점수를 증거 삼았다. 2학년 2반 대부분이 80점을 넘었으니 의심할만하였다. 쟁점은 반전체가 조직적으로 가담했다는 의혹이었다. 늘 전교꼴찌던 반평균이 50점 대에서 70점 대로 올라서였다. 암기과목이라면 의문에서 끝날 수도 있었으나, 반성적을 상대적으로 올리기 쉽다는 생각에 수학과 영어과목만 커닝하여 들통났다. 왜 그랬는지 어떤 커닝방법인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전교꼴찌반이라는 낙인에 스트레스받은 2반 담임선생의 과도한 체벌이 원인이었다. 2반 학생들은 월말고사성적이 나올 때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전교 꼴등에서 면하면 안 때리겠다’는 담임선생의 원성을 들었다. 반전체 학생들이 개인성적과 상관없이 얻어맞아 곡소리가 났다. 허벅지가 터져 피나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견디다 못해 공모한 결과였다. 국민학교6학년 때 문승협담임이던 엄정한선생의 교육 목적이나 방침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시험을 칠 때면 주변에서 부정행위가 비일비재하였지만,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전체가 휘말린 건 처음이었다.

더 큰 문제는 커닝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이었다. 학생부선생들이 주동자를 색출하려고 2반 학생들을 한 명씩 불러 취조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타일러 물었으나, 공부 못하는 학생은 가차 없이 매질부터 하였다.

커닝사건이 일파만파 커진 데는 이달순이 중심에 있었다. 중하위권에서 맴돌던 성적이 중상위권으로 뛰어 표적이 됐다. 다짜고짜 매질당한 억울함에 때리는 매를 붙잡고 학생부선생에게 대들었다. 키는 작지만 헬스를 하여 힘이 센 이달순이었다. ‘으째 앞뒤 확인도 없이 때리요, 공부 못한 것이 죄요’라며 따지다 선생과 몸싸움했다. 뒤로 밀려 넘어진 선생이 머리를 다쳐 앰뷸런스까지 왔다. 학생이 선생을 때렸다며 난리 났다. 급기야 누군가에게 신고받은 경찰이 학교에 들이닥쳤다. 이달순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간 형사사건으로 확대되었다. 시내중심가에서 큰 규모로 시계보석점을 경영하는 이달순의 아버지가 급히 나섰다. 이리저리 인맥을 총동원해 반나절 만에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발 빠른 학교재단의 대처도 한몫하였다. 혹여라도 기사화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면 책임을 묻는 목포교육청긴급감사가 당연지사라, 교내에서 처리하려고 축소은폐에 급급했다. 다행히 머리를 다친 선생도 뇌진탕으로 잠시 기절하였을 뿐 다른 내상이나 이상소견이 없었다. 이달순은 경찰서에서 풀려나 다음날 정상 등교했다.

학생부선생들은 체벌 없이 다시 진상조사를 이어갔다. 2반 학생들이 모르쇠로 일관해 답보상태에 빠졌다. 커닝을 모의하면서 배신자응징을 다짐하였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혼연일체 된 이해타산도 있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대입내신성적 때문에 고민하긴 했으나, 커닝 한 번으로 전체등수가 영향받지 않는다는 계산이 있었다. 중위권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올라서 좋았다. 무엇보다 모두 담임선생에게 매를 맞기 싫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생각에 담합이 성사됐다. 대입고교내신제도가 갓도입되어 이해도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 가능하였다. 대학입시고교내신제가 내신성적반영비율확대와 교과성적내신등급세분화까지 거론되는 혼란한 시기였다. 81학년도는 고등학교3학년성적만을 대상으로 했었다. 82학년도는 고등학교 2∙3학년 2개 학년, 83학년도는 반영대상학년을 3개 학년으로 확대하는 등이었다.

조사결과 이상한 점은 2반 학생들 답변이 ‘안 했다’가 아니라 ‘모른다’였다. 학생부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 주동으로 확신하였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주도했는 소문이 암암리 퍼졌다. 학교 측은 심증만 있고 자백이 없어 처벌이 곤란하였다. 그렇다고 전교생시선이 커닝사건에 모여있는데 아무런 조처 없이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재시험을 치르자는 의견이 나왔다. 시험문제를 다시 출제해야 하는 선생들의 귀찮음은 숨긴 채, 다른 반 학생들에게 피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가로 결정했다. 2반에게 강요하다시피 동의를 얻어 2반만 7월 월말고사의 영어와 수학성적을 6월 월말고사성적에 반영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갔다.

“야 달순아, 도대체 어떻게 커닝한 거여?”

“부일아, 울아부지가 피같이 번 돈 주고 과외했어야.”

“과외금지인디?”

“아야, 사인코사인탄젠트도 모르는 달순이가 알겄냐?”

“아니, 니 말고 느그반 말이어?”

“시험지에 답을 표시해서 돌리기, 절대비밀이다잉?”

“근디, 니 경찰서에서는 금방 풀려났드라?”

“울아부지가 소싯적 잘 나가는 운동선수출신이어서 여그저그 다 통하제, 목포유지여 유지.”

“염병, 이 와중에도 즈그 아부지 파워 자랑하네.”

“누가 주도했대?”

“누구라고 말은 못 해도 공부 잘한 놈이어, 느그도 알믄 깜짝 놀랄 것이다.”

학교 측은 매 맞는 것이 두려운 성적하위자가 강압적으로 꾸몄다고 판단하였으나, 커닝을 제안하고 거부감 없이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려면 공부를 잘하면서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했다. 오히려 성적상위자가 주범이었다는 것은 선생들 편견을 깬 반전이었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폭력적이라는 부정적인 시각, 커닝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독점이라는 인식, 불상사에는 항상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선입관이 문제였다. 학생을 위한 학교인지, 선생을 위한 학교인지, 아니면 학교를 위한 학교인지, 학교는 어떤 반성이나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였다. 그저 학교이미지실추와 관리감독책임을 물은 상급기관평가만 중요하고 이해득실따지기에만 바빴다.

커닝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어 가는 듯했다. 학교는 커닝원인을 제공한 2반 담임선생과 폭력을 행사한 학생부선생들을 탓하지 않았다. 성적 때문에 차별받고 폭력을 당한 학생들불만을 외면하였다.

선생들은 이달순이 대들어 교권이 무너졌다는 부분에만 집착했다. 무너진 교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일치단결하였다. 수업시간에 조금 떠들거나 산만하면 대가리박기 같은 원산폭격과 의자 들고 있기 등 단체기합을 줬다. 교련과 체육 시간에는 선착순 달리기와 오리걸음 등으로 얼차려를 주었다. 폭력이 아닌 신체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학생들 원성을 무시했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도 일제잔재인 복도통행 시 좌측통행과 발뒤꿈치를 들지 않았다며 기합주기 일수였다. 수시로 교실과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잘못한 점을 찾아내 벌로써 휴지 줍기와 청소를 시켰다. 다시는 학생이 선생에게 대들지 못하게 하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직접폭력대신 간접체벌을 이용해 자존심 걸린 교권을 회복하겠다는 표출이었다.

학생들은 일거수일투족 감시받고 학대받는 느낌이었다. 주로 선생들에게 눈엣가시인 2학년이 당하였다.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인식이 2학년 사이에 급속히 퍼졌다. 내재됐던 교권과 학생권 갈등이 점점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비폭력 같은 폭력이 행해진 3일째 되는 날, 분풀이식 폭력을 일삼아 커닝의 빌미를 제공했던 2반 담임선생이 청소불량을 이유로 또 매를 들었다. 무자비하게 맞은 2반 학생들이 분개하였다. 마침내 일과수업이 끝난 저녁식사시간에 2학년 반장부반장들이 모였다. 문과 4반 반장 강원종과 이과 8반 반장 임창열이 주도하여 현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2학년 학급대표들이 원인과 해법을 앞다퉈 내놓았다. 하나하나 합의하며 내용을 정리했다. 1단계로 2학년학생과장선생에게 건의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2단계 농성에 들어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우리나라는 진즉 해방됐는디, 우리는 아직 해방되지 않은 거 같다. 해방을 준비하고 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해방이 와,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됐던 것처럼 말이어. 정말 따분한 말인디, 준비와 노력은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단어들인갑다.”

임창열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자 한 말이었다. 학급대표들을 비장한 각오로 뭉치게 하였다. 요구사항은 월요일아침에 임창열과 강원종이 전달키로 했다. 답이 없거나 관철되지 않을 경우 실력행사에 들어가는 세부사항까지 마련하였다. 혹시라도 생각이 다른 학생이 있더라도 책임을 묻거나 탓하지 않기로 했다. 자발적 참여에 방점을 찍었다. 2학년 학급대표들이 각자 반으로 돌아가 학급에 알렸다. 월요일아침까지 비밀유지를 신신당부하였다. 만에 하나 농성까지 가는 사태가 발생되면 일치단결동참을 부탁했다. 어떤 반에서는 걱정하며 반대하는 잡음도 있었지만 대부분 대세에 따랐다.

문승협은 4반 부반장입장에서 참여하고 전달하였다. 친구들이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친구들 모습이 한층 성숙되어 보였다. 뭔지 모를 정의감에 심장이 뛰었다. 불타오르는 열정을 주체하려 애썼다.

야자시간에 공부하면서 그동안 뒤쳐졌던 국영수진도를 따라잡았다. 떨어졌던 성적도 회복해 만족하였다. 불현듯 윙스멤버들이 마음에 걸렸다. 탈퇴를 받아들였으나 여전히 삐딱한 태도가 신경 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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