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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양을 품은 별 Sep 06. 2024

단테의 별 - 1권 1부 17화

빛의 출현(出玄)-빛을 품다/풋사랑인가? - (2)

문승협이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었다. 머리맡에 독후감노트가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독후감은 오후가 되어서야 완성됐다. 집안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자연스레 전화기로 시선이 갔다. 외웠던 최선경의 집전화번호를 확인하고 전화기 앞에 앉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화기자물쇠를 다이얼 1과 2 사이에 채워놓아 어디에도 전화를 못했었다. 최근 고모들의 불평으로 시외전화만 못하게 9와 0 사이로 옮겨 채워 전화번호에 0만 안 들어가면 시내전화는 가능하였다.

문승협은 전화비를 아끼려는 할머니심정을 이해했으나, 여전히 엄마에게 전화를 못하는 건 불만이었다. 지금은 최선경에게 전화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듯 무릎 꿇고 수화기를 들었다. 다이얼을 돌릴까 망설이다 내려놓았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다시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돌리다 또 내려놓았다. 최선경어머니가 받으면 뭐라 말해야 할지, 최선경이 받으면 첫마디를 뭐라 해야 할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였다. 결국 받는 사람에 따라 뭐라고 말할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드디어 심호흡을 하고 다이얼을 돌렸다. 신호가 세 번 가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오, 죽교동이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최선경의 친구 문승협입니다, 최선경 있어요?”

“누구라우? 그런 사람 없어라, 잘못 걸었는갑소.”

“네? 아, 죄송합니다.”

뜻밖의 남자목소리에 긴장했다가 잘못 걸었다는 말에 수화기를 얼른 내려놓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돌렸던 다이얼을 재연해 보았다. 너무 떨려서 마지막 번호 다이얼을 끝까지 돌리지 않은 것 같았다.

다시 전화할 때는 한번 해봐서 그런지 조금 진정되었다. 다이얼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돌렸다. 신호가 가는 동안 목청까지 가다듬는 여유도 생겼으나 전화받는 소리에 다시 경직되었다.

“여보세요, 항동입니다.”

“안녕하세요, 선경이 집 맞습니까?”

“네, 누구세요?”

“저는 선경이 친구 문승협입니다, 선경이 있어요?”

“그래, 잠시만 기다려라.”

친절한 목소리의 남자였다. 수화기너머 들리는 최선경을 부르는 소리에 최선경아버지로 추측되었다. 처음 듣는 최선경의 전화목소리를 상상하며 들뜬 마음으로 기다렸다.

“여보세요.”

“최선경, 나야 문승협.”

“응? 내일 전화하라고 했는데?”

“아, 시험 삼아서 했는데, 끊을까?”

전화받은 최선경목소리가 잠겨있었다. 반가워하기보다는 타박하는 듯하여 문승협이 의기소침했다.

“호호호, 삐졌어? 삐졌구나.”

“아니야, 삐지긴 뭘.”

“호호호, 귀여워. 점심 먹고 쉬다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나서 받은 거라 그래.”

“아, 그랬구나. 목소리가 잠겨서 아픈가 했어.”

“그렇다고 시험 삼아가 뭐야? 보고 싶어서라든가,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든가, 듣기 좋은 말도 많은데.”

“그래, 목소리 들으려고 했어.”

“으이그, 엎드려 절 받았네. 집이야?”

“응.”

“독후감은?”

“방금 마쳤어.”

“우리 아빠가 너보고, 나이 어린 군인인 줄 알았대.”

“왜?”

“집 맞습니까, 문승협입니다, 그랬다면서?”

“응, 좀 긴장했거든.”

“오늘은 내가 일이 있어서 안되고, 내일 11시에 그 분식집으로 올래?”

“알았어.”

“그 책 들고 와, 심심하면 읽게.”

“응, 그럴게.”

“그럼 내일 보자.”

“응 그래, 먼저 끊어.”

“네가 전화했으니까, 네가 먼저 끊어.”

“아냐 괜찮아, 네가 먼저 끊어.”

“호호, 알았어, 내일 봐.”

문승협이 전화 끊는 소리를 확인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안도감에 벌렁 누워 천장을 보았다. 어제처럼 새초롬하게 째려보는 얼굴, 투정하는 얼굴, 똘망똘망 쳐다보는 얼굴, 환하게 웃는 얼굴들로 최선경의 환영이 보였다. 잠에서 깬 최선경얼굴을 상상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비록 짧은 통화였지만 가슴이 콩닥거리면서 스릴 있고 짜릿한 기분이었다.


문승협은 분식집으로 들어오는 최선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익숙하게 봐왔던 바지 입은 최선경모습이 아니었다. 무릎 밑 장딴지가 보이는 치마에 블라우스를 입었다. 머리를 양갈래로 따서 더 예뻐 보였다. TV에 나오는 아역배우 같았다.

“뚫어지겠다, 그리 빤히 보면 부끄럽잖아. 이상해?”

“아냐, 예뻐.”

“정말? 어색하긴 한데, 한번 해봤어.”

“넌 처음 봤을 때부터 늘 예뻤어. 오늘 도 그 많은 날 중에 하루야.”

“정말?”

“응, 나 빈말 못하는 거 알잖아.”

“다행이다, 치마도 오랜만에 입은 건데.”

“선경아, 불편하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내가 좋아하는 건, 있는 그대로 네 모습과 행동, 말투야.”

“피, 내 맘도 모르면서.”

“아, 미안. 그런 뜻이 아니라, 네가 애쓰다 지칠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그래, 너무 애썼더니 지치고 배고프다.”

최선경은 어디선가 들었던 ‘좋아하는 사람이 불쑥 들어오면, 사랑도 불쑥 커진다’는 말에 공감되었다. 책에서 읽었던 ‘사랑의 시작은 서로의 삶을 간섭하거나, 간섭받고 또 교감하고 싶어지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났다. 문승협에게 내가 지금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최선경은 그런 자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문승협이 야속했다. 해맑게 순대를 주문하며 간도 많이 달라는 모습조차 얄미웠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서 좋은 기분이 몽실몽실 댔다.

“이러다가, 우리 만날 때마다 순대하고 간만 먹는 건 아니겠지?”

“하하, 라면하고 떡볶이도 주문할 거야. 근데 짜고 매운 건 피하라고 했던 거 같은데, 괜찮을까? ”

“언젠 불편하면 억지로 하지 마라며? 난 있는 그대로 먹을 거야.”

“맘 상했어? 너의 건강에 중요한 거라 물어본 건데.”

“사랑도 건강만큼 중요합니다요.”

최선경은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문승협에게 서운함이 남아있어 무의식 중에 투정했다. 전혀 의도치 않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불쑥 튀어나와 당황하였다.

“사랑?”

“별뜻 없어. 책에서 본 건데, 나도 모르게 나왔네.”

최선경은 얼렁뚱땅 둘러대며 문승협표정을 훔쳐봤다. 모른 척하는 것인지 둔감한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아 잘 넘어갔다 싶어 안도하면서도, 오히려 그런 문승협태도가 이상하게 서운하였다. 문승협과 눈이 마주치자 얼른 시선을 돌렸다.

“선경아, 너 아픈 거 어떤 상태인지 물어봐도 돼?”

“응, 괜찮아. 아프면 이야기할게, 나 믿지?”

최선경은 심술을 거두었다. 걱정하는 문승협마음을 이해하기에 본연모습으로 돌아가 다정하게 말했다.

문승협이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접시에 덜고 떡볶이 국물을 세 숟가락 떠 얹어 섞었다. 최선경에게 먹어보라며 내밀었다.

“어때?”

“음, 맛있어.”

“전에 가병수랑 먹을 때, 이렇게 해서 먹어봤더니 맛있더라고.”

“비빔국수 같기도 하고, 이렇게는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다.”

“라면떡볶이나 떡볶이라면이라고 해서, 메뉴 하나 추가하시라 했는데, 아직인가 보네?”

“떡국 넣은 라면을 떡라면이라고 줄여 부르는 것처럼, 라볶이로 하면 재미있겠다, 호호호.”

“하하, 그러게. 순대도 찍어 먹어봐, 맛있을 거 같아.”

“음, 이것도 별미인데. 맛있어, 아이디어 굿.

둘은 요리연구가처럼 이렇게 저렇게 조합하여 주문한 음식에 재미를 곁들여 먹고 분식집을 나왔다.

최선경이 학교동산에 가자고 하였다. 문승협이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더니 선뜻 앞장서갔다. 나뭇잎 사이로 햇볕이 보일 듯 말듯하면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목적지를 정해 놓은 것처럼 망설임 없이 걷다가 멈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벤치를 끌고 왔다.

최선경은 익숙하게 위치를 선정하고 벤치를 가져다 놓는 문승협을 지켜보았다. 아프기 바로 전 동산에서 만났던 소사아저씨말이 떠올랐다. 계절과 시간에 따라 옮겨 다니며 앉았었던 제일 좋은 장소를 소사아저씨가 가르쳐준 줄로만 알았었다. 문승협이 먼저 찾아다니며 앉았었던 곳이라고 소사아저씨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동안 최선경이 앉았던 자리들을 먼저 찾았다는 아이, 울거나 멍하니 있을 때 이유를 물어도 늘 그냥이라고만 했다는 슬픔이 있는 아이, 참 착하다는 아이, 소사아저씨가 말한 그 아이가 바로 문승협이었다.

문승협이 최선경에게 벤치에 앉으라고 손짓하였다. 최선경이 손수건을 꺼내 문승협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려 했다. 문승협이 몸을 살짝 뒤로 빼면서 손수건을 받아 챘다.

“내 내가 닦을게.”

“그러시든가 말든가.”

최선경은 피해버린 문승협에게 다시 심통이 나 삐딱하게 말했다. 문승협은 쑥스러워서 손수건을 왼손에 받아 들고 오른손등으로 땀을 훔친 후 바지 엉덩이 춤에 닦았다.

“그게 뭐야, 손수건으로 닦지 않고.”

“너도 땀나니 닦아야지, 난 이렇게 닦아도 괜찮아.”

“어휴, 누가 네 속을 알까? 그런데, 여기는 또 언제 왔었어, 시원하고 좋네.”

“언젠가 이맘때겠지, 정확히는 기억 안 나.”

“문승협이 기억 못 하는 것도 있네?”

“이 장소는 좀 특별해.”

“왜?”

“여기는 등뒤에 다섯 그루 큰 나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촘촘히 서있으면서도, 남쪽으로 적당히 기울어 있어서 햇볕을 적당히 가려줘, 주위가 터져있어 시야도 좋고 바람도 잘 통해. 이 동산에서 계절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제일 좋은 장소야. 내가 답답할 때, 학교에서는 가장 자주 왔던 곳이기도 하고. 그래서, 언제 처음 왔는지 기억이 잘 안나.”

“그럼, 학교 말고 자주 가는 장소가 또 있어?”

“응? 응, 있어.”

“어딘데?”

“나중 기회 되면 데려갈게, 지금은 궁금해도 참아.”

“피, 참으라는데 별 수없지 뭐. 하지만, 내가 인내심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건 알아둬. 그런데 말이야, 너 자꾸 나를 떼쓰게 하는 거 같아서 좀 얄미워.”

“내가? 미안, 그럴 의도는 없었어.”

최선경은 오늘만큼은 문승협마음을 열어보려고 하였다. 어떤 슬픔이 있고 가슴에 무엇이 있어서 동산을 이리저리 거닐었는지 꼭 알고 싶었다. 그러나 나중으로 미뤄야 했다.

소사아저씨가 두 사람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뭔가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를 손에 들고 있었다.

“낼모레가 개학인디, 바람 쐬러 왔냐?”

“안녕하셨어요 아저씨.”

“오메, 인자 인사도 이구동성으로 하네잉.”

“하하, 그러게요.”

“이거 복숭아인디, 마누라가 느그 갖다 주라고 씻어주드라. 한 개씩 묵어봐라, 달아야.”

“네, 감사합니다.”

“선경이는 인자 괜찬하냐?”

“네, 아저씨 덕분이에요.”

“뭔 소리여, 내가 그때 괜하게 승협이를 말했는갑다 했어야. 내가 말 안 했으믄, 니가 안 내려갔을 것이고, 안 아팠을 거 아니냐.”

“아니에요 아저씨,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니어야, 내가 미안하단께는.”

“아니라니까요 아저씨, 아저씨 덕분에 승협이랑도 이렇게 친해졌잖아요.”

“그리 생각해 주믄 내가 고맙제. 그래도,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끼리 또 만난 갑서, 허허.”

“네? 승협이는 그렇게 착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잉? 승협이가 선경이를 괴롭히는갑네?”

“네, 자꾸 떼쓰게 해요, 아주 못됐어요.”

“원래 남녀관계는 그런 것이 좀 있어야 써, 안 글믄 영 싱거워서 오래 못가야.”

“호호, 오래 가려다 속은 다 썩겠어요.”

“허허허, 속 썩은 내 마누라 얼굴하고 비교하믄, 선경이는 너무 좋아 보인디?”

“치, 아저씨는 제 편인 줄 알았더니.”

“허허, 여그는 승협이가 자주 오는 곳인디. 이 의자가 여그에 있으믄, 다른 아그들이 자리 잡을까 비, 내가 항시 저만치 갔다 놨어야.”

“어, 그건 특혜인데요?”

“아따 그라믄, 내 생명의 은인인디 이 정도도 못 한다냐? 이 정도는 약소하제. 더 해줄 능력이 없어서 그라제, 내 맘 같아서는 맨날 업고라도 다니겄다.”

“아저씨, 이제 그런 말씀 그만하세요. 언제 적 이야기인데 그러세요, 제가 다 부끄러워요.”

“아따 내 맘이 그렇단 말이어, 말도 못 하냐. 그라믄 나 갈란께, 쉬었다들 가그라.”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저씨.”

소사아저씨가 바구니를 털며 내려갔다. 최선경이 손끝으로 들고 있는 복숭아를 문승협에게 내밀었다.

“이것도 좀 먹어줘.”

“너 먹어, 난 방금 먹었어.”

“나 복숭아알레르기 있어. 만지거나 먹으면, 몸에 뭔가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거 같고, 긁으면 피부가 빨개져. 다행히 주변에 복숭아만 있어도 가려운, 그 정도로 심하진 않아.”

“진짠지 궁금한데?”

“뭣이라? 궁금하다는 건, 나보고 먹어보라는 뜻? 어이 상실.”

“하하, 농담이야, 내가 먹을게.”

“아냐, 내가 먹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진실을 한번 보여주지.”

“아냐 믿어, 믿을게, 이리 줘.”

최선경이 문승협만류에도 복숭아를 덥석 한입 깨물어 오물거렸다. 남은 복숭아를 문승협에게 건넸다.

문승협이 불안한 표정으로 최선경을 살폈다. 별다른 반응이 나타나지 않아 남은 복숭아를 먹어 치웠다.

최선경이 아무렇지 않은 듯 문승협에게 웃어 보이며 가져온 책을 펼쳤다. 문승협도 책을 펼쳤다. 최선경이 문승협어깨를 톡톡 치더니 자신의 얼굴과 팔을 가리키며 해맑게 웃었다. 최선경의 이마와 볼 그리고 팔도 군데군데 분홍빛으로 변했다.

“봤지, 나의 진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문승협에게 나의 진실을 밝히노라.”

“어? 미안, 괜찮아?”

“호호, 놀라긴. 괜찮아, 조금 있으면 없어져.”

“근데, 화장한 것처럼 더 예뻐 보이는데?”

“못 말려 진짜, 예쁜 건 알아가지고.”

“정말 괜찮은 거지?”

최선경이 괜찮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걱정하는 문승협을 바라보면서 ‘사랑하면 다 예뻐 보인다는데, 문승협이 지금 그런 건가? 요즘 들어 내가 왜 이렇게 사랑타령인지 모르겠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순간 뜬금없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웃겨 혼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배시시 웃었다.

최선경의 그런 생각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자신의 이마와 볼을 바라보는 문승협의 눈동자에서 맑고 찬란히 빛나는 광채를 포착했기 때문이었다.

문승협은 집중해서 책을 읽지 못하고 드문드문 최선경을 쳐다보았다. 최선경도 눈이 책에 머물러 있을 뿐 마찬가지였다. 초점이 비산 되어 검은 건 글씨요 흰 것은 종이였다. 간간히 자신을 쳐다보는 문승협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승협이 한참 동안 책장을 넘기지 않는 최선경에게 하늘을 보라며 손짓하였다.

“저거 봐, 새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너무 예쁘다.”

“와, 진짜.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물에, 목화 솜이 떠있는 거 같다.”

“우리 누워서 볼래?”

“그럴까.”

문승협과 최선경은 덮은 책을 벤치의자 가운데에 나란히 붙여놓고 베개 삼아 누웠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누워 그렇게 한참을 하늘을 보았다. 최선경이 침묵을 깼다.

“승협아, 무슨 생각해?”

“…….”

“승협아, 자?”

“엄마.”

문승협이 최선경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이름을 부르며 대답을 채근하자 망설임 끝에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최선경은 부모와 떨어져 사는 문승협상황을 알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을 몰라 늘 궁금했고 알고 싶었으나, 스스로 말하기 전까진 묻지 않으려 했었다.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왜냐고 물어봐도 돼?”

“…….”

최선경이 문승협의 묵묵부답에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주위를 환기시키려 말을 돌렸다.

“너는 이 순간에도 아기처럼 엄마생각이냐? 구름을 보면 양 떼도 떠오르고, 하물며 옆에 나도 있는데.”

“엄마 본 지가 오래됐거든, 전화 통화한 지도 오래됐고. 어릴 적 외갓집 대청마루에 누워서 본 하늘이, 저 하늘이랑 비슷했어. 오늘처럼 눈이 부셔 시릴 정도였고, 그때 엄마무릎을 베고 있었어.”

“…….”

“이런 기분 오랜만이야, 너랑 같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라. 그렇게 엄마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 그냥 평화로웠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때를 생각하면 행복한 기분이 들어.”

“…….”

“파리가 와서 귀찮게 하고 내가 더워 보이면, 엄마가 부채를 부쳐줬어, 난 그 부채바람에 잠들곤 했지.”

문승협은 눈꼬리를 타고 흐르는 눈물을 내버려 뒀다. 설사 최선경에게 들키더라도 그냥 있을 참이었다.

최선경은 미세하게 떨리는 문승협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멘 듯한 숨소리에서 울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일어나 눈물을 닦아주며 꼭 안아주고 싶었지만, 비록 슬픔일지언정 문승협의 감정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누워있었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최선경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승협아,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그래, 고마워. 나중에 기회 되면, 그때 말할게.”

문승협은 최선경만의 배려로 잠시 무너진 감정을 추슬렀다. 뭔지 모를 상쾌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근디 승협씨, 기회 되믄 나한테 갚을 게 겁나 많네요잉. 데려갈 곳도 있고, 말할 것도 있고, 맞지라?”

“알았어라우.”

최선경이 분위기를 바꾸려고 어설픈 사투리로 약속을 거듭 확인했다. 문승협도 따라서 사투리로 확답하였다. 둘은 그렇게 누운 채로 하늘에 떠오른 서로의 웃는 얼굴을 마주 보며 활짝 웃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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