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후기_『희박한 공기 속으로』존 크라카우어

by 세템브리니

2018년 5월 혜진이랑 나는 바스프 산악회에서 히말라야 랑탕계곡에 다녀왔다. 랑탕계곡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쪽으로 약 70~80km 떨어진 곳에 있는 계곡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루트 중 하나로 유명하다. “히말라야의 숨은 보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리는 카트만두에서 차를 타고 7시간에 걸쳐 랑탕트레킹 시작 포인트인 샤브루베시로 이동해 나흘간 하루에 짧으면 7시간 길면 11시간에 걸으며 해발 4,984m인 체르고리 정상에 올랐다.


나는 결혼 전부터 산을 좋아해 회사 산악회에서 활동하며 국내 명산은 웬만큼 다 다녀봤다. 혜진이는 결혼 후에야 산을 타기 시작했기에, 그곳에 갔을 때만 해도 사실상 초보였다. 나흘 동안의 여정 가운데 본격적인 등반은 셋째 날 연습 삼아 올랐던 강진리(해발 4,400m)와 마지막 날 최종 목적지였던 체르고리였다. 하지만 둘째 날, 해발 3,000m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숨이 차거나 소화가 안 되는 등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에는 혜진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마침 마법이 시작되는 시기였지만, “여기까지 와서 정상에 오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는 굳은 의지로 끝내 정상에 올랐다. 그 순간의 혜진이가 참으로 대견했고, 지금도 그 모습이 존경스럽게 남아 있다.


히말라야 체르고리 봉우리에 올랐던 경험은 특별하게 남았다. 살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과 마주하면 히말라야에도 다녀왔는데 이까짓 것도 못하겠느냐는 오기가 생기는 긍정적인 영향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우리는 심신을 달련할 수 있는 등산이나 걷기 같은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는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산악인 존 크라우카구어의 대표작이다. 1996년 봄, 저자는 잡지 「아웃사이드」의 의뢰를 받아 에베레스트 상업 원정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등반에 참여한다. 당시 에베레스트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원정대들로 붐볐고, 거액을 지불한 일반인 등반객들이 전문 가이드의 인솔을 받아 정상에 오르는 구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크라우카우어는 뉴질랜드 출신 가이드 롭 홀이 이끄는 원정대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등반 초반부터 위험의 징조는 드러났다. 인원이 지나치게 많아 협곡과 빙벽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했고, 로프 설치가 지연되면서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늦게 정상 공격이 시작되었다. 5월 10일, 여러 원정대가 동시에 정상에 몰리며 혼잡은 극에 달했다. 크라우카우어와 동료들은 마침내 정상에 올랐지만, 해가 기울 무렵이었고 체력과 산소는 크게 고갈된 상태였다.


하산 도중 갑작스러운 폭풍이 몰아쳤다. 시야는 사라지고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면서 등반객들은 길을 잃거나 탈진해 쓰러졌다. 가이드 롭 홀과 스콧 피셔는 끝내 하산하지 못했고, 수많은 등반객이 고산병과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크라우카우어는 가까스로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지만, 자신이 동료들을 충분히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이 책은 단순한 산악 체험기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오만, 그리고 상업주의에 의해 왜곡된 에베레스트 등반의 현실을 고발하는 기록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7년 전 다녀왔던 히말라야 랑탕계곡을 떠올렸다. 해발 8,000미터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극심한 날씨와 고산병으로 인한 육체적 한계를 마주하며 삶을 긍정했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다. 아마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왜 사람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상의 천장에 오르려 하는지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산 도중 폭풍우를 만나 생사의 기로에 선 동료들을 외면하고 정상에 올랐던 일본인 등반팀을 저자는 뒤에 인터뷰한다. 그들은 “8,000m가 넘는 곳에서는 도덕적 원칙을 지킬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들의 태도를 떠올리며, 나였다면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과연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잠시 자문하게 된다. 그리고 죽은 동료들을 남기고 왔다는 죄책감으로 오랫동안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한 저자처럼, 나 역시 그렇게 행동했을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여름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가 내일이지만, 폭염으로 섬 전체가 달아오른 제주도의 한 카페에 앉아 책을 완독했다. 영하 50도의 강추위 속에서 생사의 경계를 오간 저자의 체험을 읽는 동안만큼은 오히려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평화롭고 편안한 일상이 당연함을 넘어 지루하게 느껴질 때, 지금 누리는 안락함에 감사한 마음을 되새기고 싶을 때 읽어볼 만한 책이다.

tempImageGhFUGb.heic
tempImagezZcfXI.heic
tempImageW64ah1.heic
tempImageC10clB.heic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대 철학에서 찾은 회사가 나아갈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