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문화, 보이지 않는 힘

2025년 9월 3일과 5년 전 오늘

by 세템브리니

직장에서 조직문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중요한지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문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사팀에서 일하며 문화가 조직 구성원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어떤 회사에서는 회의가 끝날 때 외쳐는 구호 한마디가 함께 일할 동료를 결정했고, 또 어떤 회사에서는 주인이 바뀔 때마다 일상의 리듬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문화는 책상 위 선언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의사결정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중 두 가지 사례를 통해 조직문화가 가진 보이지 않는 힘을 이야기하려 한다.


“받을 돈은 빠르게, 줄 돈은 최대한 늦게”

주간 회의가 끝날 때마다 외치는 구호는 언제 들어도 낯설었다. 회사 자금 흐름을 유리하게 하자는 뜻이었지만, 노골적으로 돈을 강조하는 모습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매출과 성장이 똑같이 중요했던 직전 회사에서는 이만큼 적나라하게 직원들을 닦달하지 않았다. 반면 이곳에서는 조직도 피라미드 맨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돈, 돈, 돈”이라는 구호가 조직 전체의 분위기를 건조하고 냉랭하게 만들었다.


그곳은 내가 7년 동안 몸담았던 독일계 회사를 떠나 새로 옮긴 직장이었다. 미국 제조업의 상징과도 같은 회사로부터 매력적인 제안을 받은 것이다. 성과가 좋아도 나이나 직급에 막혀 승진이 어려운 문화에 지쳐 있었던 터라, 파격적인 보상은 더욱 끌렸다. 나를 알아주지 않던 직전 회사에 일종의 복수라도 하듯, 나는 주저 없이 이직을 택했다. 아직 젊었고, 야망도 컸다. 성과에 따른 확실한 보상을 약속한 미국 회사는 내게 평생직장처럼 보였다.


회사가 내세우는 가치는 직전 회사와 비슷했다. 두 곳 모두 ‘지속가능성’과 ‘윤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본 철학은 달랐다. 직전 회사는 “지속 가능한 화학”이라는 목표 아래 핵심 가치와 글로벌 기준을 바탕으로 책임 있는 활동을 전개했다. 반면 새 회사는 기술 혁신과 성과 중심의 민첩한 구조를 중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였지만, 밑바탕에 깔린 철학은 전혀 달랐다. 그 차이는 곧 조직문화의 차이로 드러났다. 처음에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새 회사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직전 회사의 경영철학이 내 가치관에 더 깊이 공명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 회사의 철학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했다. 사업부에서 한 제품을 맡을 영업사원을 채용하는 자리였는데, 지원자 중에는 내가 직전 회사에서 같은 포지션으로 뽑았던 동료가 있었다. 그는 성실하고 똑똑해 이미 성과와 역량을 인정받은 인재였다. 당시 면접을 보고 ‘잘 뽑았다’고 만족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이직을 결심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면접관으로서 이번에도 그에게 좋은 평가를 남겼다. 함께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평가에 자신이 있었고, 다시 동료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기쁘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유가 궁금해 그를 떨어뜨린 면접관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John, 그는 영업사원임에도 결과를 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하기보다는,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성과를 내겠다고 했어.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영업사원에게 중요한 건 오늘의 실적이야. 여기는 너의 직전 회사가 아니야. 그래서 불합격이야.”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맞는 말이었다. 내가 현재 몸담은 회사는 직전 회사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런 기본적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지원자에게 “지금처럼 준비하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던 나의 조언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었다. 문화의 차이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그날의 사건은 내가 이곳에서 오래 버티기 어렵겠다는 불안을 남겼다. 나의 가치관으로는 이 회사가 요구하는 방식에 맞춰 유능한 HR로 성장하기 힘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회사로 상징되는 미국계 기업은 더 이상 기회의 직장이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는 비인간적인 조직이라는 인식이 내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변화가 덮친 자리에서

내가 마지막에 다닌 회사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였다. 그룹은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겨지던 사업부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그 결과 회사는 새로운 투자자를 주인으로 삼아 막 출발한 상태였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매각 이전의 문화가 여전히 짙게 남아 있었다. 외국계 기업에서 경력을 쌓아 온 내게 그 분위기는 낯설고 무겁게 다가왔다.


이 회사의 새로운 주인(지주사)은 사모펀드였다. 사모펀드는 재무적 투자자다. 그들의 관심은 기업이 어떤 장기적 비전을 실현하는가가 아니다. 제한된 기간 안에 얼마나 빠르게 가치를 높여 수익을 실현하느냐에 있다. 이런 성격은 조직문화에 분명한 한계를 만든다.


이에 반해 기존 그룹사와 같은 전략적 투자자는 본업과의 시너지를 위해 회사를 인수한다. 기술 확보, 시장 확대, 장기적 파트너십을 목적으로 하기에 조직문화 또한 그 연속성을 지켜내려 한다. 직원들은 “이 회사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그림을 공유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찾는다. 문화는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머무를 이유가 된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들어오면 기업은 철저히 자산으로 취급된다. 목표는 5~7년 안에 매각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적 제약은 조직문화의 지속성을 허용하지 않는다. 직원들은 “언제 다시 팔릴지 모른다"라는 불안 속에서 회사를 경력의 경유지로만 바라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주사의 압박은 더욱 거세졌다. 단기 매출, 비용 절감, EBITDA 개선 같은 지표가 문화의 중심에 놓였다. 신뢰와 가치 공유는 뒷전으로 밀렸고, 장기적 혁신이나 인재 육성보다 당장의 성과가 중요해졌다. 결국 문화는 숫자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급격한 변화도 불안감을 키웠다. 사모펀드는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 인력 감축, 비용 효율화를 단기간에 밀어붙였다. 남은 직원들은 “이곳의 규범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회사와의 정서적 유대는 끊어졌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개인주의로 기울었다.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가치 또한 희석되었다. 전략적 투자자가 본업의 평판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해 문화에 책임과 윤리를 포함한다면, 사모펀드는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직원들이 자부심을 느낄 기반은 약해졌고, 사람은 자본의 부속물로 다뤄졌다.


결국 사모펀드 매수한 우리 회사의 문화는 단기 성과에 매몰되었고, 소속감은 약화되었으며, 불안정성이 커졌다. 신뢰와 가치 공유는 후퇴했고, 사회적 책임도 희미해졌다. 이런 한계는 재무 지표에 드러나지 않지만, 회사 안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 현실 속에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문화를 일구어야 하는 HR 부서의 역할은 극도로 어려웠다. 솔직히 말해, 사모펀드 체제에서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 회사에서 부딪힌 첫 번째 난관이었다.


사모펀드 시기를 거친 뒤 회사는 다시 전략적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이번에는 영국에 본사를 둔 화학 기업이 새 주인이었다. 겉으로는 안정된 소유 구조를 되찾은 듯했지만, 다른 차원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 회사의 문화는 지금까지 경험한 어떤 문화와도 달랐다. 국내 대기업의 정체성 위에 사모펀드 시절의 구조조정과 땜질식 처방이 남아 있었고, 그 결과 조직문화는 이미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외국계 회사의 문화가 덧씌워지자 혼란은 피할 수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언어였다. 영어 사용이 일상 업무의 기본 전제가 되었다. 보고서 작성, 회의, 심지어 짧은 이메일조차 영어를 요구했다. 외국계 기업에서 경험을 쌓아온 나에게는 그다지 낯설지 않았지만, 국내 대기업 문화에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직원들에게는 벅찬 장벽이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언어에 막히자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직원은 매주 반복되는 영어 화상회의를 앞두고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결국 전출을 요청하기도 했다.


소통 방식에서도 문제가 이어졌다. 한국의 조직문화에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자제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위의 뜻에 맞추고,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것이‘성숙한 태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영국계 회사에서는 달랐다.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회의 자리에서 침묵은 무능으로 간주되었다.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으면 기여하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되었다.


이 차이는 특히 오래 근무한 직원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국내 대기업 문화에 길들여진 그들은 낯선 방식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거나, 적극적으로 외면했다.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지금까지 잘해왔는데 왜 바뀌어야 하느냐"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불만은 곧 사내 분위기를 거칠게 만들었고,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회사를 적으로 간주했다.


HR의 수장으로서 나는 그 한가운데 있었다. 외국계 기업의 방식은 경험 덕분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힘겨운 표정과 불만을 매일 마주해야 했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말했다.

“회의만 다녀오면 하루 종일 기운이 빠집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영어로 떠드는 게 부끄럽기만 해요.”

그의 말은 단순한 개인의 푸념이 아니었다. 많은 직원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그 문제는 하나의 집단적 무력감으로 번지고 있었다.


이 두 번째는 변화는 첫 번째와 달랐다. 이직으로 낯선 문화를 겪었던 때와 달리, 이번에는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데 변화가 나를 덮쳤다. 회사의 이름이 바뀌고 주인이 달라지는 과정 속에서 직원들은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기를 주저했다. 끝내 그 벽 앞에서 무너지는 이들이 속출했다. 처음부터 그 모습을 지켜본 나는, 조직문화가 단순한 제도나 규율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서와 일상의 호흡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문화, 이론과 현실의 차이와 공통점

며칠 전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서 오래전에 남겨둔 글을 다시 읽었다. 조직문화에 관한 책을 읽고 짧게 적어 둔 단상이었는데, 그 문장이 내 기억을 불러냈다. 독일과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 사이에서 겪었던 차이, 사모펀드와 영국계 기업을 거치며 한자리에서 경험한 변화가 차례로 떠올랐다.


“조직 변화란 새로운 무언가를 얻으려면, 사람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온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현대 기업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M&A 환경에서 과연 사람들은 그 포기를 기꺼이 선택할 수 있을까. 자발적 변화를 이끌어낼 강력한 동기가 없다면, 이 말은 이상일뿐 현실에서는 좀처럼 실현되기 어렵다.


또 다른 문장은 이렇게 말한다.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은 그 과정에 대해 충분한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내가 몸담았던 회사에서의 경험은 달랐다. 영국계 사모펀드가 회사를 다시 전략적 투자자에게 매각한 뒤, 국내 영업 조직을 합병하는 절차가 진행되었다. HR 수장으로서 그 과정을 맡았지만 지역 본부와 영국 본사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나는 최전선에 있었으나 충분한 권한을 갖지 못했다. 현장의 반발은 거셌다. 통제력이 부족한 채 추진되는 변화는 사람과 비용, 모든 자원을 소진시켰다. HR 업무를 하며 겪은 가장 힘겨운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때는 그저 일상의 일부라 여겼던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니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었다. 구호 하나가 채용을 갈라놓았고, 언어와 소통 방식의 변화가 사람의 자신감을 무너뜨렸다. 조직문화는 선언문이 아니라 매일의 표정과 목소리, 그리고 말하지 못한 침묵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돌아보면 나는 조직문화의 급박한 변화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배워 갔다. HR로서 무력감을 느낀 순간도 있었지만, 동시에 문화가 왜 중요한지 몸으로 깨달았다. 성과와 구조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은 문화적 토양에서 비롯된다. 그 깨달음은 지금도 내 경험 속에 가장 분명한 진실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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