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메이커가 알려주는 10km 1시간, 하프 2시간 이내에 들어오는 법
지난 2주 동안 흥미로운 체험을 했다. 매주 일요일 서울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에 연달아 출전했다. 두 번 모두 2시간 이내 기록으로 들어왔음에도 달리는 내내의 체감은 완전히 달랐다. 한 대회에서는 10km를 넘어서며 체력의 벽에 부딪혔고, 15km 이후부터는 ‘이쯤에서 걸을까’라는 생각과 수없이 타협하며 끝까지 버텨야 했다. 반면 다른 대회에서는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아직 10km는 더 달릴 수 있겠다’는 다소 허세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씨나 코스의 미세한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같은 거리를 달리고 이렇게 상반된 경험을 했다는 건 분석해 볼 만한 일이었다.
우선 10km를 1시간, 하프를 2시간 이내에 들어오려면 기본적인 체력 조건이 필요하다. 달리기를 거의 해본 적이 없거나 평소 5km 이상 달리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10km 이상을 완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예외는 있다. 신체 조건이 뛰어나거나 다른 운동으로 이미 심폐지구력이 길러진 경우다. 실제로 나는 한 번도 10km 이상 달려본 적이 없던 사람이 풀코스 마라톤에서 3시간 초반의 기록으로 들어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지만 그의 이력을 확인하니 이유가 분명했다. 그는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일주일에 세 번은 꾸준히 달려온 사람이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운동을 지속해 온 터라 가능한 기록이었다. 같은 조건이 아닌 이상, 나 같은 평범한 러너라면 감히 흉내도 내기 어려운 결과였다.
10km 1시간 완주를 위한 기본 조건
먼저 10km를 1시간 이내에 완주하기 위한 조건을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월간 러닝 거리다. 나는 최소 60km를 기준으로 본다. 주 2~3회, 한 번에 6~10km 정도를 달리는 패턴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최소 조건일 뿐이며, 월 100km 이상을 달릴 때 비로소 안정적인 기록을 기대할 수 있다. 꾸준히 그 정도 거리를 달린다면 1시간 완주는 무리가 아니다.
다음은 유지 가능한 페이스와 거리다. 10km를 한 시간에 완주하려면 평균 6분/km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훈련에서 이 페이스로 10km를 달리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대회뽕’이라 불리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평소 훈련에서는 힘들더라도, 대회에서는 이상하게 기록이 잘 나오는 현상이다. 많은 인원이 함께 달리며 생기는 응집력, 도로 양옆의 응원과 환호, 경쟁심과 기록을 남긴다는 긴장감이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그 덕분에 대회에서는 보통 훈련 때보다 더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한다. 그러나 이 힘을 과신해 초반에 오버 페이스를 하면 후반에 크게 무너질 수 있다. 결국 충분한 연습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인터벌 훈련도 도움이 되지만, 10km 1시간 완주 수준에서는 필수는 아니다. 기본기를 갖춘 러너라면 인터벌 없이도 기록 달성이 가능하다.
장거리 지속주 경험은 확실히 효과적이다. 주 1회 12~15km를 여유 페이스(6분 30초~7분)로 달려보면 좋다. 평소에 10km 이상을 경험해 두면 대회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 ‘내가 이미 13km도 달렸는데, 10km 1시간 완주가 못 할 일이겠어?’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나아가 하프 마라톤으로 거리를 넓히는 데에도 큰 밑거름이 된다.
마지막으로 체중과 체력 관리다. 체중이 과하다면 달리기 전 무릎 보강 운동이 필요하다. 자칫 부상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체중이 적정 수준이라 해도 주 2회의 보강 운동은 유익하다. 스쿼트, 플랭크, 코어 운동은 하체와 체간을 강화해 페이스 유지에 도움을 준다. 기록 개선에도 긍정적이다.
하프 2시간 완주를 위한 기본 조건
하프 마라톤을 2시간 이내에 완주하려면 10km보다 한 단계 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단순히 페이스 감각만으로는 버티기 어렵고, 거리 경험과 보급 습관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첫째, 월간 러닝 거리다. 최소 100km 이상을 권장한다. 주 3회 이상 달리기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평소 10km만 달려본 사람이라면 하프에서는 15km 이후에 체력 고비를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훈련에서 월간 120~150km 정도를 달린다면 안정적으로 2시간 완주를 노려볼 수 있다.
둘째, 장거리 지속주 경험이다. 주 1회는 반드시 15~18km를 여유 페이스(6분 30초~7분/km)로 달려야 한다. 하프의 핵심은 15km 이후 체력 저하 구간을 어떻게 버티느냐다. 평소에 긴 거리를 경험해 두면 ‘내가 이미 18km를 달려봤는데 21km는 해볼 만하다’는 심리적 자신감을 얻는다.
셋째, 페이스 감각이다. 하프 2시간 완주의 기준은 평균 5분 40~50초/km이다. 이 속도를 훈련에서 10~12km 이상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훈련에서는 목표보다 약간 느린 페이스로 달리더라도, 대회에서는 ‘대회뽕’의 힘으로 기록이 당겨진다. 중요한 것은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15km 이후를 대비하는 전략적 페이스 배분이다.
넷째, 보급 습관이다. 하프는 10km와 달리 보급이 필수다. 5km마다 물을 조금씩 마시고, 8~12km 지점에서는 에너지 젤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대회 당일에 처음 시도하지 말고, 훈련에서 미리 보급을 테스트해야 한다. 위에 맞지 않는 젤이나 음료는 오히려 독이 된다.
마지막으로 체력과 부상 관리다. 장거리를 버티려면 코어와 하체 보강이 필수다. 주 2회 스쿼트, 런지, 플랭크 같은 기본 운동을 병행하면 후반 페이스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체중 관리 역시 하프 이상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무게가 조금만 늘어나도 20km를 넘어서면 차이가 크게 드러난다.
10km, 하프 레이스 당일 전략
레이스 당일의 전략은 기록 달성을 좌우한다. 평소 훈련에서 쌓아온 체력이 있다면, 대회에서는 그것을 어디서 아끼고 어디서 쓸지가 중요하다. 같은 조건의 러너라도 레이스 운영에 따라 완주 경험은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먼저 10km 레이스다. 목표가 1시간이라면 평균 페이스는 6분/km다. 출발 직후 1~2km는 철저히 워밍업 구간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흥분을 다스리는 일이다. 마라톤 15년 차인 나도 여전히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다. 초반에는 몸이 가볍게 느껴져 속도를 내고 싶고, 주변 러너들이 치고 나가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나 이때 페이스를 오버하면 후반에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따라서 6분 10초에서 6분 20초 정도로 여유 있게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명심할 점은 처음 2km까지는 워밍업이라는 사실이다. 다만 다른 방법도 있다. 대회장에 일찍 도착해 미리 1~2km를 달리며 몸을 풀면, 출발 직후부터 곧바로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할 수 있다.
이어지는 3~7km는 중반 구간이다. 목표 페이스로 진입한다. 1km를 5분 55초에서 6분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달려야 한다. 이때 호흡은 조금 가쁘지만 대화가 가능한 정도가 적당하다. 리드를 찾고, 일정한 보폭과 빈도를 유지한다. 이후 7~9km는 후반 구간이다. 페이스를 끌어올려 5분 45초에서 5분 55초로 조금 올려보자. 체력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며 결승선을 준비하는 구간이다. 마지막 9km 이후 지점에서는 남은 힘을 모두 쏟아야 한다. 5분 30초에서 5분 40초로 끌어올리며, 남은 힘을 전부 사용한다. 시야를 멀리 두고 팔과 무릎을 크게 쓰면 자연스럽게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자.
하프 마라톤은 전략이 조금 다르다. 목표가 2시간 이내라면 평균 페이스는 5분 40~50초/km다. 출발 후 1~3km는 몸을 풀면서 5분 55초에서 6분 정도로 달린다. 대회 초반의 아드레날린을 누르고 호흡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역시나 미리 몸을 풀면 전체적인 기록 단축이 가능하다.) 본격적인 중반 구간인 4~15km에서는 목표 페이스인 5분 40~50초를 유지해야 한다. 이때부터 보급이 중요하다. 5km마다 물을 한두 모금씩 마시고, 8~12km에서는 젤을 섭취해야 후반 체력 고비를 넘길 수 있다. 16~18km는 하프의 진짜 시험대다. 다리가 무겁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구간이다. 여기서는 가능하다면 5분 35초에서 5분 45초로 소폭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리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19~21.1km는 정신력으로 밀어붙이는 피니시 구간이다. 남은 힘을 모두 끌어내며 5분 20~30초까지 올려 달린다면, 2시간 이내 완주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리하자면, 10km는 “6분 10초로 시작해 6분에 맞춰 달리다가 5분 30초로 마무리” 하는 흐름이고, 하프는 “6분으로 출발해 5분 40초에 맞추고 마지막 5분 20초로 끌어올리는” 흐름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초반의 절제, 중반의 리듬, 후반의 극복, 마지막의 집중이다. 훈련에서 만들어 둔 체력은 이렇게 분배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나는 달리기를 취미로 한다. 기록보다는 재미가 우선이고, 남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어제의 나보다 만족하면 충분하다. 물론 개인 기록을 조금씩 줄이고 싶은 욕심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 내 몸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의 이야기다. 그래서 누군가의 기록과 비교해 급을 나누는 방식에는 관심도, 동조할 마음도 없다.
신체 건강한 일반인이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세우는 목표는 아마도 10km를 1시간 이내, 하프 마라톤을 2시간 전후에 완주하는 일일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은 꾸준한 훈련이 뒷받침된다면 무리 없이 도달할 수 있고, 건강을 지켜주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페이스에서 페이스메이커를 맡을 때 특히 많은 러너들이 나를 따라오는 경험을 한다.
나의 하프 마라톤 개인 최고 기록은 1시간 40분대 초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대회에서는 초반에 흥분을 억누르지 못해 무리한 속도로 달려 나갔다가, 결국 15km를 지나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겨우 걷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반대로 페이스메이커로서 초반부터 차분히 리듬을 지킨 대회에서는, 내 옆에서 달리던 이들이 후반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지난주 나를 보는 듯해 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기를 글쓰기와 비슷한 것으로 비유한다. 매일 쌓이는 훈련이 결국 기록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나 역시 달리기를 통해 체력과 기록 이상의 것을 얻는다. 꾸준히 땀을 흘린 하루가 쌓일 때,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돌아보면, 달리기의 기록은 언젠가 잊히더라도 그 과정을 통해 얻는 뿌듯함은 오래 남는다.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단단해지고, 일상의 리듬이 정돈되는 경험은 달리기를 시작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보상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록과는 별개로, 달리기를 통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