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가 없고 주변이 조용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8년 전 오늘, 태어나 30년을 고향처럼 살던 은평구를 떠나 남양주 도농동으로 이사를 하며 페북에 남긴 글이다. 유년시절부터 결혼 전까지 살던 정든 동네를 떠나게 된 건, 엄마와의 대화에서 느낀 갑갑함 때문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온 식구가 살고 있는 그곳에서 벗어나 장남의 의무나 무게감 따위는 집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내면적 요청이 나를 남양주로 이끌었다.
그땐 단지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언가에 묶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된 관계가 갑갑했고,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웠다. 무엇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기대에 반응하며 살아가는 삶이 힘들었다. 정든 동네였지만, 내 삶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익숙함은 안정을 주었지만 동시에 나를 고정시키는 족쇄 같았고, 낯선 곳에 대한 불안보다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더 컸다. 어쩌면 그건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을지 모른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방식의 삶을 향한 막연한 기대였던 것도 같다.
당시 남양주 도농동은 나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공간이었다. 내가 선택한 그곳은 다소 외진 지역이었다. 근처에는 지인 하나 없었고, 회사가 있는 서울역까지는 출퇴근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그러나 그 조용함과 낯섦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신 도서관이 가까웠고, 아파트 뒤에는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황금산 산책길이 있었다. 무엇보다 강원도와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웠다. 나는 그 시절 강원도로 자주 떠났다. 여름이면 산과 바다, 겨울이면 스키장을 찾았다. 그러기엔 강원도 진출입이 용이한 남양주만큼 ‘떠남’이 수월한 거주지도 드물었다.
이사를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사소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결정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집을 옮긴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배치를 바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유목민적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해외 파견이나 지방 공장 근무를 자원한 적도 있었다. 비록 뜻대로 되진 않았지만,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노마드적 삶’이라는 감각에 서서히 기울고 있었다. 도농동으로의 이동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삶으로부터의 작은 탈주였고, 익숙함에 맞선 물리적 반란이었다. 삶의 터전을 옮기며 내가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부여한, 노마드적인 자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 질 들뢰즈의 '노마드'라는 개념이 나를 붙잡은 건 당연한 수순일지 모른다. 그는 '노마드적 주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정된 자아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는 사람을 하나의 본질이나 사회적 역할로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는 끊임없이 바뀌고, 새로운 환경이나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들뢰즈에게 중요한 건 '나는 누구인가' 같은 정체성의 질문이 아니다. 대신 그는 '나는 지금 어디와 연결되고 있는가', '나는 어떤 흐름 안에 놓여 있는가'를 묻는다. 즉, 자아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삶의 조건과 만남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노마드적 주체는 유목민처럼 살아간다. 하지만 여기서의 유목은 물리적 이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중심에서 벗어나, 기존의 경계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접속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들뢰즈는 유목민과 정착민을 비교하며 이 차이를 설명한다. 정착민은 공간을 점유하고 구획을 나누며 자신을 위치시킨다. 반면 유목민은 궤적을 그린다. 그들은 경계 안에 머무르지 않고,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흐름은 예측 불가능하고, 반복 속에서도 동일한 궤적을 밟지 않는다.
이진경은 『철학과 굴뚝청소부』에서 들뢰즈의 유목민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착민은 삶을 지도 위의 점으로 이해하지만, 유목민은 점과 점 사이를 잇는 선으로 이해한다. 그 선은 고정된 목적지가 아닌, 흐름과 생성의 과정을 가리킨다." 또 그는 “탈주란 기존의 배치 안에서 정해진 것, 고정된 것, 강제되는 것에서 벗어나 달리는 것이고, 새로운 가치나 방법을 창안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불현듯 도농동에서의 내 삶이 떠올랐다. 출퇴근 시간은 길어졌다. 가끔은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었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더 자주 걸었으며, 내 시공간을 다르게 구성했다. 그곳에서의 삶은 마치 이전의 삶에서 ‘탈주’한 나를 다시 배열해 보는 실험 같았다.
남양주에 정착하며 나는 하나의 자아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들의 조합으로서의 '나'를 느낄 수 있었다. 도농동은 나에게 새로운 접속점을 제공했다. 도시의 소음이 아닌 새소리와 바람 소리, 익숙한 친구들 대신 도서관의 침묵과 책장 넘기는 소리, 그리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지리적 거리감. 그것들은 모두 나에게 더 넓고 다양한 '삶의 리듬'을 선물해 주었다. 들뢰즈의 말처럼, 나는 고정된 정체성을 가진 자아가 아니라, 접속의 방향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는 흐름의 한 형태였던 것이다.
그러한 변형은 내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사실 과거에 나는 “나는 누구인가”와 같이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하듯 살아가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장남', '직장인', '서울 사람' 같은 몇 개의 단어로 나를 설명하려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난 시도는, 이제는 그렇게 단순화할 수 없는 무엇으로 나를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나의 정체성은 고정된 단어나 개념이 아니라, 내가 머무는 동네, 만나는 사람들, 읽은 책, 겪는 사건들 속에서 천천히 변화하는 살아 있는 무엇처럼 다가왔다.
현실에서 인사 업무를 하는 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성과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일에 익숙하다.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누군가를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회사의 기준으로 그의 전부를 판단하려는 마음이 앞선다. 조직 내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 보면, 결국 판단과 선별, 서열화가 업무의 일부가 된다. 이런 현실은 내가 믿고 싶은 인간에 대한 태도와 종종 충돌한다. 성과 중심의 구조 안에서 사람을 도구적으로 보게 되는 경향과, 누구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철학 사이에서 나는 괴리감을 느낀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회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또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연계해서 판단하지 않으려 애쓴다. 지금 보이는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누구나 자기만의 세상과 접속하는 방식이 있으며, 누구의 궤적도 타인의 지도 위에서 완전히 해석될 수 없다는 사실을 들뢰즈의 사유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들뢰즈를 접한 지금의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나는 어디로 연결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삶과 접속하고 있는가'를 더 자주 묻는다. 이 질문은 나를 불안하게 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유롭게 한다.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고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나. 그것이 들뢰즈가 말한 노마드적 주체이고, 내가 앞으로의 삶의 방향성에 반영하고 싶은 가치이기도 하다.
그 선택의 출발은 이사에서 비롯됐지만, 단지 이동으로 치부할 수 있는 내면의 결정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다시 그려보려는 시도였고, 익숙함으로부터 탈주하려는 몸짓이었다. 나는 그때 내가 어떤 철학에 접속하고 있었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게 됐다. 그건 멀어짐이 아니라 연결이었고, 이탈이 아니라 새로운 생성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어디론가 흐르고 있다. 새로운 접속점들을 향해, 나라는 존재를 다시 배열하려는 시도 속으로.
남양주로 이사하고 2년이 지나 다시 마포구로 옮겼고, 그로부터 다시 2년 후에는 지금의 인덕원 근처로 다시 이동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여러 지역에서 삶을 꾸려가며 깨달은 게 있다. 어디에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것이며, 어떤 흐름 속에서 나를 다시 구성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껍질을 깨고 옮긴 도농동은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나의 사유와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해 준 한적한 진원지였다. 이사라는 이동을 계기로 노마드적인 삶을 이야기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는 물리적으로 고정된 장소에 머문다 하더라도 나는 나를 가두는 이름이 아닌, 나를 흐르게 하는 배치를 선택하고자 한다. 그것이 들뢰즈가 내게 알려준 삶의 방식이자 내가 이어가고 싶은 철학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