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낸 관계들

by 세템브리니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은 누구인가요?

가장 조심스러운 주제입니다.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들이 과거의 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제 삶에서 관계를 끝내야 했던 대상은 대부분 가족이나 연인처럼 저와 가까이 맞닿아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학교나 회사에서 만난 사회적 관계에서는 누군가를 떠나보냈다고 느낀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럴 권한도 없었고, 애초에 그런 위치에 서 있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제 삶에서 가장 내밀한 고백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결혼 전, 제 삶에는 세 번의 굵직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스치듯 지나간 호감들을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세 사람은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각각 5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저는 제법 진지한 연애를 해온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의 아내와는 만난 지 고작 7개월 만에 결혼을 했습니다. 사랑의 지속 기간과 결합의 속도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제 삶이 증명해 버린 셈입니다. 이제 저는 ‘인연이 있다’는 말을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삶의 톱니바퀴가 맞아떨어지는 냉정한 이치처럼 받아들입니다.

첫 번째 연인은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동갑내기였습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건물부터 엄격히 분리된 학교였기에 교실에서는 얼굴을 마주칠 일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방과 후, 공부보다 당구장과 노래방의 분위기에 더 익숙했던 ‘노는 애들’의 무리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었습니다. 철없던 시절의 방황이 우리를 묶어준 셈이었습니다.

방황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녀와의 관계도 그해 여름방학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서로의 가족까지 속속들이 아는 사이였고, 당시의 우리는 우리가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돌아보면,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불안한 사춘기를 함께 건너던 두 청소년의 절박한 동행에 가까웠습니다. 미성숙한 감정이 만들어낸 커다란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인연은 세 번째 수능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그녀는 단정한 여대생이었고, 저는 인생에서 가장 가난한 밑바닥을 지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실직 상태였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버티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넉넉한 집안의 외동딸이었지만, 자신의 배경이 제게 짐이 되지 않도록 늘 조심스럽게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제 안의 자격지심은 독초처럼 자라났습니다. 대학 입학과 편입, 졸업까지의 긴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입대를 앞두자 현실의 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역하면 서른을 바라보게 되는 나이였습니다. 불확실한 제 미래를 그녀에게 떠맡길 자신도, 그 책임을 감당할 그릇도 제게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비겁하게도 입대를 핑계 삼아 그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마지막 연인은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 시절, 록 페스티벌이라는 공통분모로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살 어린 그녀는 록 음악과 문학을 사랑하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종로의 작은 선술집에서 정종을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 밤, 저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사회에 진출하고 적응하지 못해 퇴사를 반복할 때도 그녀는 묵묵히 제 정서의 닻이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인과 학생이라는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균열을 만들었습니다. 5년이 흐르자 우리는 서로에게 지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들과 떠난 제주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비겁한 고백이지만, 저는 이미 기울어가던 관계를 끝낼 용기를 다른 만남 이후에야 냈습니다. 공식적인 관계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폐허가 된 상태였습니다. 아내와의 만남을 시작하기 직전, 저는 그녀에게 뒤늦은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사람을 떠나보냈다기보다, 제 삶의 한 시절을 통과하며 관계를 놓아버린 쪽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때마다 상대에게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고, 충분히 정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떠나보낸 사람들을 떠올리면 늘 미안함이 먼저 따라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관계들이 모두 지금의 저를 만들어온 시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들을 잃으면서도 저 자신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되었고, 결국 그 시간들을 지나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보낸 사람들은 끝난 인연이면서도, 지금의 제 삶을 이루는 과정의 일부로 남아 있습니다.


그 관계는 왜 이어질 수 없었나요?

세 번의 연애는 모두 제 삶이 크게 흔들리던 시기와 겹쳐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전의 자리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안정도 없었고, 분명한 정체성도 갖추지 못한 때였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에는 주인공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 삶도 그와 비슷했습니다. 막 알을 깨기 직전의 불안과 흔들림이 일상이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태의 제가 관계 한가운데 서 있었으니, 그 관계들이 끝내 이어지지 못했던 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삶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물질적인 여유는 물론이고, 정신적인 여유도 부족했습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만남을 시작했지만,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만큼의 여유는 제게 없었습니다. 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남다른 조건과 사연을 안고 인생에 뛰어든 만큼, 성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상대 역시 저와 비슷한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능한 시간에만 잠시 만날 수 있어야 했고, 저만큼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지극히 이기적인 태도였습니다. 저는 관계보다 늘 제 앞날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연애는 너무 이른 시기에 시작됐습니다. 청소년기에 만났으니 그 시절에는 당장의 감정이 전부였습니다. 사춘기가 저물고 철이 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 다른 미래를 바라보게 됐습니다. 두 번째로 만난 연인은 저만큼 절박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인생 역전에 사활을 걸었던 저와는 간절함의 밀도가 달랐습니다. 저는 그녀가 바라는 방식으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연인은 저와 결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했고, 저는 직장에서 인정받고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내향적인 성향으로 둘만의 관계를 중시했지만, 저는 사교적이었고 챙겨야 할 관계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편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관계는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저는 안정적인 삶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면 불확실하고 격변하는 삶을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연인들 역시 처음에는 그런 저의 진취적인 태도를 매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미래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자, 이제는 안정을 찾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반면 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세상이 넓었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누군가 그런 저에게 서운함을 드러내는 순간, 저는 그 관계가 오래가기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한 연인은 이제는 그만 나서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답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이별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에도 냉소적이었습니다. 한 사람만 죽을 때까지 사랑하라는 요구는 제게 비현실적인 족쇄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에는 매력적인 이성이 많았고, 그런 약속을 끝까지 지켜낼 자신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돌아보면, 당시의 생각은 결국 사람과 타이밍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듭니다. 부모님을 포함해 주변에서 여러 번의 파경을 지켜보며 자란 영향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저와 같은 회의론을 품고 살던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7개월 만에, 그때까지는 불가능해 보이던 약속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2년째,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관계는 지금 어떤 의미로 남나요?

결혼을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12년 차에 불과하지만, 아내와 함께 만들어온 삶은 제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결혼 이후 제 삶은 이전보다 더 또렷해졌고, 더 윤택해졌습니다. 제가 아내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가 저를 선택해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 역시 아내를 인생의 반려자로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불과 3개월 남짓한 시간 안에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그 판단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그동안 떠나보낸 관계들을 통해 알게 된 제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연인으로 만나며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관계를 시작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마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저는 상대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어야 관계도 지속된다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 자신을 아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연애를 자기 탐색의 수단으로 삼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저는 저를 조금 더 또렷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관계에서 저는 편안해지는 사람인지, 어떤 관계에서는 반복해서 어긋나는 사람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를 만나면서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저만의 관계 기준이 분명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편안함을 느끼는 상대는 의존적이지 않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지점은 제가 오랫동안 보아온 어머니의 모습과도 대비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의미에서 단단한 사람입니다. 주변에서 아내를 ‘대장부’라고 부를 만큼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과거의 관계들에서 막연히 맞지 않는다고 느꼈던 부분들이, 아내를 만나면서 비로소 구체적인 언어를 얻게 됐습니다. 그것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다듬어진 저의 관계 감각이었습니다.

어떤 관계에서 저는 편안해지는 사람인지, 어떤 관계에서는 반복해서 어긋나는 사람인지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연애를 하고 헤어질 때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고, 결국 놓아주는 과정을 반복하며 제 인격 역시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나 동생들에게 기회가 있다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데에는 결국 자신을 가장 또렷하게 비추는 타인과의 관계가 큰 역할을 한다고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보낸 관계들은 단순히 끝난 인연이 아니라, 지금의 저를 향해 이어져 온 과정이었습니다. 아내를 만난 일도, 지금의 제가 존재하는 일도 그 시간들을 통과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성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슷하게 처음 다가간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아내에게 끌렸던 이유 중 하나는, 연애와 인간관계에 대한 경험이 충분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결혼 이후의 관계에서도 언제 힘을 주고 언제 한발 물러서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험에서 생겨난 판단이자, 관계 속에서 길러진 지혜일 것입니다.

이 글을 혹시라도 과거의 연인들이 읽는다면 불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 관계 속에서 제가 보였던 서투른 태도와 판단에 대해서 사과하고 싶습니다. 저는 미숙했고, 때로는 경솔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삶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지난 연인들에도 같은 마음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는 결국 각자의 삶을 스쳐 간 모든 인연의 흔적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 16화잊히지 않는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