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내게 남긴 것

by 세템브리니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요?

제 삶에서 일은 선택이라기보다 늘 먼저 놓여 있던 조건에 가까웠습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족이나 친가 친척 가운데 일을 안정적으로 이어온 남자 어른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직업’이라 부를 만한 일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오락실 사업을 하다 실패한 아버지 대신, 대형병원 장례식장 식당에서 정년퇴임까지 일하셨던 어머니의 모습만이 유일하게 또렷합니다. 그 기억 속에서 일은 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가질 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고민할 여유는 없었습니다. 적성이나 소명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이제는 나를 돌봐야 할 나이라는 자각이었습니다. 어떤 일이든 직업이 필요했고, 생존을 감당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던 중, 학창 시절 기업 인사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경험 덕분에 인사팀 신입사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돌아보면, 적성에 잘 맞는 선택이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으로 선택한 분야에는 예상보다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사물보다 사람에 관심이 많고,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 제게 인사 업무는 만족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가끔 노골적인 욕망과 이기심을 마주할 때면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는 제가 선택한 일에 애정이 생겼고, 이 일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심도 자라났습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그 무렵부터 시작됐습니다.

인사 업무는 흔히 전문직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분명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였습니다. 회사마다 다른 채용, 평가, 보상 체계를 이해해야 했고, 노동법이라는 현실적인 기준도 숙지해야 했습니다. 제도와 규정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 역시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인사 업무는 단순히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롭게 판단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제대로 해내는 일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일을 더 이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 자신을 시험하고 확장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일을 접하기 전 제가 막연히 떠올리던 ‘직업’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그렇게 15년 넘게 인사 분야에서 일하며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저에게 일이란 절차와 과정, 그리고 결과를 통과하며 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생계를 유지하는 측면에서 일의 중요성은 여전히 큽니다. 하지만 일을 통해, 그리고 일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제가 얻은 가장 큰 것은 저 자신에 대한 이해였습니다. 일은 저를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저를 계속 바꾸는 매개였습니다. 그렇게 일은 제 삶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이자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 저는 줄곧 해오던 인사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있습니다. 일을 통해 얻은 생각과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내놓는 일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선택 역시 이전의 일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온 일과 완전히 결별하고 싶은 마음은 아닙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저는 충분한 만족과 자부심을 느꼈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일은, 어느새 제 삶에서 자아를 실현하는 통로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 변화 자체가 일이 제게 남긴 가장 분명한 흔적입니다.


가장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서, 비교적 잘하게 되었다고 느끼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누군가 그것들을 어떻게 잘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오랜 경험과 좋은 사람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힌 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보다 앞서 그런 일을 좋아하는 저라는 사람의 성향이 먼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본성을 오래 거스르면서까지 잘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복잡한 상황을 말과 구조로 정리하는 일입니다. 저는 마주한 일이 잘 갖춰진 상태에서 출발해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온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뒤늦게 출발해 이른바 ‘지각 인생’을 따라잡아야 했습니다. 물론 그 대부분은 제가 자초한 어려움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런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태도가 하나 있습니다. 뒤엉킨 상태를 그대로 두지 않고, 어떻게든 말과 맥락으로 정리하려는 습관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직의 이해관계, 제도의 모순, 개인의 책임, 사람의 감정이 한 덩어리로 얽혀 있는 지점에서 저는 자주 그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문장과 구조로 풀어내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과정에서 어떤 혼란이든 설명 가능한 상태로 만들고, 이후에는 그것을 하나의 의미로 정리하는 절차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런 성향 덕분에 인수합병처럼 변화가 큰 국면이나, 오래된 관행을 바꾸고 전체 구성원을 설득해야 하는 자리에 자주 놓이게 됐습니다. 결국 그 경험들은 쌓여, 삶과 일을 글로 정리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지금의 작업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둘째는 사람을 한순간의 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 일입니다. 인사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사람을 볼 때 현재의 태도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자주 배우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유난히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그 뒤에는 오래 쌓인 불안이 있었고, 누군가는 냉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두려운 사람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그 순간만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든 상황과 시간까지 함께 보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이 태도는 직업적으로도 도움이 됐지만, 결국 제 삶의 성향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당장의 언행으로만 재단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배경과 사정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떠올리는 일입니다. 물론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먼저 앞설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며 제가 비교적 잘하게 된 일 가운데 하나는, 사람을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인사 일을 하며 얻은 가장 값진 능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은 지나온 시간을 사유로 전환하는 일입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게 된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또래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해왔고, 생각도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지나온 순간들을 유독 선명하게 기억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장면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하나의 실처럼 이어져 이야기를 만든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그것은 결핍을 미화하거나, 고통을 교훈으로 급히 바꾸려는 태도와는 다릅니다.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기억과 감정을 다시 꺼내 사유하는 일입니다. 결국 저 자신과 삶을 이해하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나를 만든 첫 장면을 떠올리고, 성격을 형성한 순간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보며, 떠나보낸 관계와 잊히지 않는 상처로부터 배우고 자라왔습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을 사유로 바꾸는 과정 속에서 지금의 저와 앞으로 제가 바라는 모습을 함께 그리게 됩니다. 돌아보면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은, 결국 저 자신과 삶을 오래 바라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을 통해 나는 변하는 사람인가요?

일을 하면 돈을 받는 이유가, 나를 일에 맞추는 대가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대개는 자신의 적성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일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이 요구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는 데에는 늘 적지 않은 노력이 따릅니다. 한동안 저는 그 노력의 대가로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직장생활을 버텼습니다. 욱하는 성격을 가진 저에게 인사 업무는 저를 적지 않게 다듬도록 요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보존의 성향도 강한 편이어서 그 과정은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인사 분야에서 피할 수 없는 노동조합 대응 업무는, 제 성향이 가장 선명하게 시험받았던 자리였습니다.

노동조합 대응은 흔히 노사관리 업무라고 불립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회사에서는 임금과 단체협약을 둘러싼 협상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과정에서 회사와 노동조합은 필연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드러냅니다. 사측과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마주 앉아 각자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일이 곧 업무의 본질입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도 관계는 날카로워집니다. 하물며 집단과 집단이, 그것도 임금과 복리후생처럼 가장 민감한 문제를 두고 맞서는 상황에서는 충돌이 일상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역할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리테일 회사에서의 경험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는 이미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포한 상태였습니다. 파업은 여러 차례의 협상이 실패한 뒤 갈등이 정면으로 드러난 국면을 뜻합니다. 노동조합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고, 현장을 관리하던 제게 거친 말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중에는 인격적 모독에 가까운 표현도 적지 않았습니다. 다혈질에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던 제 성향으로는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회사를 대표해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제조업 회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국내 대기업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매각된 뒤 조직 전체가 변화의 불편함을 겪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무렵 결성된 신생 노동조합은 기존 대기업의 관행을 기준으로, 일반적인 협상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사 책임자를 넘어 대표이사로부터 위임받은 협상 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매년 반복되는 협상 과정에서 강한 이미지로 요구를 밀어붙이는 노동조합과 수차례 첨예하게 맞섰습니다. 저 역시 소리를 지를 줄도 화를 낼 줄도 알았지만, 그 방식은 제게 허용된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하며 저는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과 감정을 다루는 일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전의 저는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 앞에서 감정을 먼저 드러내는 편이었습니다. 말투가 거칠어지기도 했고, 상대의 태도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노사관리 업무에서는 그런 방식이 오히려 일을 망치기 쉬웠습니다. 제가 화를 내는 순간 상대도 더 강하게 반응했고, 그럴수록 문제는 해결에서 멀어졌습니다. 분노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그때 처음 절실하게 알게 됐습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모든 경험은 제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당시에는 서로를 잡아먹을 듯 대립했지만, 이제는 그 순간들 역시 제 삶의 중요한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얽힘의 강도가 클수록 그때는 그 경험이 남길 가치를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성향과는 전혀 다른 역할을 요구받으며 그 시간을 통과하고 나니, 어쩌면 제 삶에 가장 필요했던 능력이 그때 보완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조합 업무를 맡고 노동쟁의와 노사협상을 수차례 이끌며, 저는 다혈질이던 성격에서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 갔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선배가 가끔 “네가 그 일을 했다는 게 참 신기하다. 나라면 절대 못했을 일이다”라고 말할 때면, 저도 제 안에서 작지만 분명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일을 하며 사람이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은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그 본질이 드러나는 방식을 분명히 바꿔놓습니다. 어떤 일은 내 안의 거친 면을 그대로 강화하기도 하고, 어떤 일은 그것을 다듬고 조절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제게 일은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일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참게 되었고, 더 늦게 판단하게 되었고, 더 넓게 보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일을 하며 사회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조금 더 어른에 가까워졌습니다. 물론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일은 한동안 저를 생계의 자리로 밀어 넣었지만, 결국에는 저를 바꾸고 다듬는 자리이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뜻에서 저는 일을 통해 변해 온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전 17화떠나보낸 관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