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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나 Aug 20. 2024

한 번쯤은 내 삶을 주도하며 살아보고 싶다.

내 삶을 전략적으로 주도하며 이끌어 본 적이 있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고, 짝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위해 사는 이러한 정답 같은 삶. ‘평범한’ 사람들은 자의지로 이런 삶을 이끌어 가고 있는 걸까? 

올해 초부터 퇴사를 고민하며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고, 독서를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가 원하는 삶의 기준에서 볼 때,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요구되는 사회적 절차들은 나에게 정답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지만,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큰 변화는 회사를 그만둔 것이며, 그로 인한 파장 역시 회사와 관련된 부분이 가장 크다. 왜 회사에 다닐까 생각해 보면, 나의 기준에서는 안정적인 고소득과 결혼 시장에서의 사회적 위치 점수라는 두 가지 이유뿐이다. 


첫째, 돈.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다. 노후 준비는 안 하냐고? 6~70대가 되어도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아니, 그때가 되면 회사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 불안해하며 빌붙어있어야 할 판이다. 또, 그때까지 살 수 있다고는 누가 보장하는가? 돈이 많아도 사기를 당하거나 투자를 잘못해서 없어질 수 있다. 그리고 또 자연재해, 기후위기, 전염병, 감염병으로 노출될 위험이 너무 크다. 따라 돈은 결코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거지처럼 살겠다는 건 아니고, 내 기준에 맞게 돈을 벌고 저축하며 내 생활을 즐기며 살고 싶다. 돈이 있으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나도 안다. 


둘째, 결혼 시장에서의 사회적 위치점수….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내 인생에서 ‘결혼’이 가장 큰 업적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심지어 20대 때부터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다. 어렸을 때는 그저 아이들이 싫어서, 출산으로 인해 내 몸이 망가지는 것이 싫어서였는데 이제 드는 가장 큰 생각은 부모님이 나를 키우느라 희생한 노력만큼 나 자신을 희생해서 내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미래를 단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아이를 낳지 못할 것이다. 시민의식이 천박해져 가고 출산율이 멸종위기인 나라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그건 내 아이에게 고문이다. 


미디어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행복이 찾아온다고 한다. 여기서 나의 행복을 위해 아이를 낳는 게 맞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고, 그 기회비용과 시간들로 인해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이 없어지진 않을까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내 인생에 동반자는 한 명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늙어서 혼자 늙어 죽거나 아프면 간병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반문하고 싶다. 그런 대가를 바라고 동반자를 찾는 것이 과연 맞는 선택이냐고. 

여러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 암 환자는 96.7%가 배우자의 간병을 받으며, 이는 다른 간병 선택지보다 월등히 높다. 반면, 여성 암 환자는 36.9%가 스스로 간병하며, 그다음으로 배우자, 자녀, 친정, 간병인 순으로 도움을 받는다. 여성 암환자는 약 30% 이내의 확률로 배우자의 도움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통계적 결과가 있음에도 그러한 역할을 기대하며 동반자를 선택하는 것이 맞을까?

이런 생각들을 말하면 아무것도 모를 때 결혼해서 애 낳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지금 이러한 주제에 대해 나의 주관이 뚜렷한 것이 아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쉽게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나는 더 이상 남들 사는 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회사를 다니며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그저 욕망만을 채우기 위해 쇼핑, 맛집, 운동 등 취미에 돈과 시간을 소비하는, 많은 이들이 선택하는 그저 그런 삶. 그것이 바로 내가 피하고 싶은 삶이다. 나는 20대 초중반에는 또래와는 다르게 다양한 국제 경험을 쌓았고,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는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후회 없이 모든 것을 경험해 본 덕에 이제 진정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 아닐까? 


이십춘기, 삼십춘기, 심지어 사십춘기라는 말이 있다. 각 나이대의 사람들은 진로 고민, 정체성 혼란, 가치관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겪으며 삶의 목표를 재정립하거나 새로운 목표를 찾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나에게도 삼십춘기가 찾아온 것 같다. 이런 고뇌가 오히려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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